본능에 충실한 그를 보며
히꼬는 본능에 충실해 산다.
그래서 가끔은, 아니 솔직히 말하면 꽤 자주
히꼬 같은 개팔자가 부러워진다.
해운대 바다의 어둠이 아직 완전히 가시기 전,
아파트 저층의 작은 야외 소공원으로 내려간다.
히꼬는 기다렸다는 듯이 소변을 시원하게 본다.
밤새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참을 내보낸다.
그 다음은 똥이다.
좋은 사료의 위력을 보여주듯
길쭉하고 굵고 색깔도 고운 변이
가래떡 나오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보는 사람까지 속이 시원해진다.
배변 봉지에 담긴 똥은 아직 따뜻하다.
물론 냄새야 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역겹지는 않다.
‘아, 잘 먹고 잘 싸는 게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괜한 깨달음이 스친다.
볼일을 다 본 히꼬는 갑자기 속도를 낸다. 태곳적 양몰이 DNA가 나오는 모양이다.
엘리베이터로 이어진 긴 복도를
혹시라도 누가 깰까 걱정될 만큼 질주한다.
몸이 비워지니 가벼워진 모양이다.
한때는 아침마다 공놀이를 시켰는데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와 그만두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히꼬는 집사람부터 찾는다.
그사이 혹시 할머니(우린 나이든 엄마와 아빠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호칭을 쓴다)가 어디라도 간 건 아닐까 걱정되는 눈치다.
가끔 집사람이 일부러 방 안에 숨어 있으면
히꼬는 집 안 이곳저곳을 진지하게 수색한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하는 순간,
몇 년 만에 옛 연인을 만난 사람처럼
짧은 두 다리로 점프하며 반가움을 폭발시킨다.
안심이 되면 물을 마시고,
아침밥을 먹고,
곁에 있던 고무공을 굴려
아침 책을 읽고 있는 내 앞에 슬그머니 놓는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놀아주자.”
한참을 공놀이하다가 지치면
아침부터 뱃대지를 허옇게 드러내고 잔다.
사는 게 단순해서 좋다.
잠은 언제나 집사람과 둘이 잔다.
내가 다가가면 문 입구에서부터 으르렁거린다.
그래도 하루 네 번 중 세 번은 내가 소대변을 해결해 주고 공놀이도 해주니 물지는 않는다.
아니, 어쩌면 물고 싶어도 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입에 뭔가를 물고
집사람 곁을 지킨다.
작년 성묘 갔을 때였다.
히꼬와 달리기를 하던 나를 보며
어른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개랑 시합해서
지면 개만도 못한 놈이고,
비기면 개 같은 놈이고,
이기면 개한테 이긴 놈이지.”
웃자고 한 말인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가끔 히꼬와 나를 이래저래 비교한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인생의 목표는
히꼬에게 지지도, 이기지도 않는
딱 비기는 존재가 되는 게 아닐까.
본능에 충실한 개와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 사이에서
그쯤이면,
괜찮은 팔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