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의 지혜, 외교와 삶에 대하여
은퇴 후 해외 주식을 시작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여유 자금도, 시간도 없었다. 무엇보다 매년 반복되는 재산신고가 번거로워 주식은 아예 관심 밖이었다. 신문의 주식면은 그저 숫자의 나열처럼 보였다.
은퇴 후, “세상 돌아가는 걸 알려면 주식만 한 게 없다”는 지인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렇게 시작한 해외 주식이, 요즘 말로 하면 ‘서학 개미’의 길이다.
처음에는 남들 하는 대로 했다. 알트코인을 조금씩 사 모았다. 변동성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앞섰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출렁이는 그래프를 보다 보니 마음이 먼저 지쳤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ETF로 분산 투자하라.”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만의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짰다.
코인, 구리·은·석유 같은 자원 관련 주식, 그리고 미래 산업이라 불리는 첨단·양자컴퓨팅 주식을 섞어 조금씩 샀다. 특정 종목 하나에만 몰빵 했을 때는 아침에 눈을 뜨면 늘 마이너스였다. 그런데 이것저것 섞어 두니, 어떤 날은 마이너스, 어떤 날은 플러스가 함께 뜬다. 일방적으로 깨지는 느낌은 덜하다.
물론 냉정하게 보면 아직 전체 수익은 플러스가 아니다. 은행에 넣어 두었다면 적은 이자라도 차곡차곡 쌓였을 텐데, 기회비용만 따지면 손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에 남는 게 하나 있다.
주식을 하면서 국내외 정세를 훨씬 더 세밀하게 보게 됐다. 미국 연준의 금리 결정, 환율의 미세한 움직임, 국제 유가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이전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숫자가 뉴스가 되고, 뉴스가 다시 숫자로 돌아오는 과정을 체감하게 된다. 이건 분명 비금전적 이익이다.
포트폴리오 투자를 하며 몸으로 배운 교훈이 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 놓지 마라.”
증권가의 격언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실감한다.
이 깨달음은 주식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한 나라의 외교도 그렇고, 기업의 전략도 마찬가지다. 외교 다변화, 경제 다변화는 결국 포트폴리오의 문제다. 하나가 흔들리면 모두가 같이 흔들리는 구조는 위험하다. 여러 선택지를 나눠 갖고 있을 때 충격을 흡수할 여지가 생긴다.
특히 지금은 국제질서가 변곡점에 서 있다. 트럼프발 충격으로 상징되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지난 70년간 한미동맹에 거의 올인해 온 우리의 외교와 안보 전략도, 이제는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시점에 와 있다. 동맹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유일한 바구니여서는 곤란하다.
주식 포트폴리오는 아직 미완성이다. 수익률도 썩 자랑할 만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 작은 실험은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 놓았다. 분산의 지혜, 균형의 감각, 그리고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선택의 중요성.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담는 일은, 돈을 굴리는 기술이기 이전에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