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치 시장

세모의 엄마 모습

by 동남아 사랑꾼

구정을 앞둔 자갈치 시장에서, 나는 50년도 더 전의 엄마를 보았다.


새해 결심 하나로 숲 해설 과정을 시작했다. 토요일도 반납하고 초량역 근처 부산경남숲해설협회로 나왔다. 점심시간은 고작 한 시간. 멀지 않은 초량역에서 전철을 타고 자갈치로 향했다.


현대식 횟센터도 있지만, 발길은 자연스레 난전으로 갔다. 생선 냄새와 사람 냄새가 뒤섞인 그곳에서 부산 아지매들이 손짓으로 손님을 부른다.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는 구애에, 또래쯤 되어 보이는 60대 중반의 아줌마들이 난전 앞에 서서 가격을 흥정한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50년 전 이곳에 섰을 엄마의 모습이 겹쳐졌다.



초등학교 유학 시절, 엄마는 구정이면 시골 고향 황간으로 갈 생선을 사러 부산에 왔을 것이다. 부산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몇 시간을 가야 닿는 고향. 눈이 많이 오면 어린 나도 50리 넘는 길을 걸어가야 했던 곳이다. 엄마의 등짐에는 마른 생선과 설빔 선물이 가득했을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반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다. 요리대를 둘러싼 대중식당에는 일본인 가족과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오봉에 담긴 정식을 먹고 있었다. 나도 하나 시켰다. 아홉 가지 반찬에 자갈치에서 막 구운 생선 두 토막, 청국장까지. 가격은 만 원. 엄마 밥상을 맛있게 먹고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부산어묵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지나쳤다. 그랬더니 바로 전통 팥죽집이 나타났다. 배는 불렀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 그릇 시켜 먹으니 너무 묽지도, 너무 되지도 않은 고슬고슬한 팥죽. 딱 이맘때 엄마가 끓여주던 옛날식 그대로였다.


부산에 오면 늘 현대식 건물 안의 횟집만 찾았는데, 진짜 자갈치는 난전이고, 식당도 이런 단출한 정식이 으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0여 년 전, 엄마도 구정 설빔을 사러 왔다가 이런 식당에서 허기를 달랬을 것이다.


유난히 저 세상에 계신 엄마가 생각나는, 세모의 자갈치 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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