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해운대

동료를 생각하며

by 동남아 사랑꾼


새벽 세 시다.

창문 너머로 가로등 불빛이 스며들고, 그 빛에 검은 바다가 아른거린다. 해운대의 밤은 늘 익숙하지만, 이렇게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마주하는 바다는 조금 다르다. 말이 없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침형 인간에 가깝다. 저녁 여덟 시쯤 잠자리에 들고, 새벽에 일어나는 생활이 몸에 밴 지 오래다. 그래서 오늘이 ‘잠을 못 잔 밤’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다만 눈을 감고도 잠이 들지 않는 이 감각이, 문득 2020년 멕시코에서의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그해 코로나에 걸려 며칠 밤을 하얗게 새웠다. 숨이 가빠 마스크를 쓴 채 중환자실에서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는 딱 한 시간만이라도 깊이 잘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평소 머리만 대면 코를 골며 잠들던 나에게, 잠을 잘 수 없다는 건 생지옥에 가까운 일이었다.


며칠 전, 올해 첫 서울 출장을 갔을 때 오래 함께 일했던 유능한 직원을 만났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요즘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밤 여덟 시가 되면 멜라토닌을 먹고,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책을 펼친다고 했다. 하지만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짠하다.


재작년 12.3 모두를 놀라게 했던 그 비상식적인 사건 발생 때, 그는 실무자로서 상사의 지시에 못이겨 어쩔수 없이 한 일 때문에 지금 처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던 길을 걷다가 갑자기 몰아친 폭풍 앞에서, 그는 지금 잠을 잃은 채 버티고 있었다. 그에게는 생전 처음 겪는 시련이었을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지금 겪고 있을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멕시코에서 코로나로 밤을 새우던 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의 상태를 아주 조금은 짐작해 볼 뿐이다.


위로가 될 만한 말을 찾았지만, 삶에서 주워 모은 어설픈 경험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산책도 하고, 등산도 하면서 몸을 좀 고되게 써 보라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겠지만 가벼운 책과 어려운 책을 섞어 읽고, 평소 듣지 않던 음악도 들어 보라고.

그렇게 조금씩 자신에게 말을 걸다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아무짝에도 소용없어 보이는 말이

어느 순간 정말로 힘이 될지도 모른다고.


대과 없이 35년간 직장을 마치고, 인생 2막을 비교적 헐겁게 살아가며 선택적으로 아침형 인간으로 사는 지금의 내가, 문득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에게는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오늘 밤, 나의 잠 못 이루는 해운대와 그의 잠 못 이루는 서울이 겹쳐진다.

그가 하루빨리 단잠을 되찾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나처럼

‘선택적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기를

조용히 바다를 보며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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