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을 찾아
숲 해설가 수업이 있는 날이면 부산 초량역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그날도 수업 전 혼밥하던 식당을 다시 찾아볼 생각으로 골목을 배회하고 있었다. 일꾼 몇이 말없이 골목 안으로 들어가기에 무심코 따라 들어갔더니, 작은 식당 문 앞까지 사람들이 빼곡했다. 안은 이미 만석. 문턱에 겨우 한 자리 비어 있어 몸을 비집고 앉았다.
냄새가 좋았다.
메뉴판을 굳이 오래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청국장을 시켰다. 9천 원.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가 나오고, 옆에는 비빔밥 그릇이 놓였다.
청국장 냄새는 늘 두 가지로 갈린다. 누군가에겐 신발장 냄새처럼 꼬릿하고, 누군가에겐 겨울 안방에서 띄우던 정겨운 숨결이다. 나에게는 후자다. 시골 겨울, 따뜻한 아랫목, 엄마가 장독에서 퍼오던 장 냄새. 그 구수함이 내 코와 혀에는 더 익숙하다.
서울 여자 집사람이 가끔 인심 써서 경상도 촌놈 취향을 겨냥해 청국장을 끓이면, 선진국에서 태어나고 오랜기간 해외에서 자란 두 아들은 코부터 막는다.
“아빠,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나는 웃는다. 옛 것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그 시절의 내가 좋아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둘 다 좋다. 고향의 맛이고, 엄마의 손맛이니까.
후덕한 인상의 여주인에게 “맛있다”고 하며 점심에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줄 서야 돼요” 하며 은근히 맛집 자랑을 한다. 다음에 오면 동태탕을 꼭 먹어보란다. 식당을 나서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음 메뉴는 동태탕이다.’
해외에서 오래 살았다. 낯선 도시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늘 ‘동네 한 바퀴’다.
어느 방송에서 보았던 동네 산책 프로그램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몇 년을 살 곳을 탐사하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믿었다. 운 좋게도 비교적 잘 사는 동네에 머문 적이 많았다. 현지 지도층과 대화를 나눌 때 동네를 걸으며 본 장면들을 세세히 이야기하면 그들이 더 반가워했다. 정작 그들은 고급차를 타고 집과 사무실만 오가느라 동네의 골목과 시장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그 습관은 남았다. 집 근처부터 시작해 점점 반경을 넓혀 전통시장까지 걷곤 했다.
부산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청국장도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초량역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큰길 건너편에 네온사인이 보였다. 초량전통시장.
들어가 보니 구정을 앞둔 시장치고는 썰렁했다. 예전 같으면 설빔 준비로 왁자지껄했을 텐데, 조용했다. 택시 기사가 “요즘 경기가 IMF 때보다 더 안 좋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경기 탓도 있겠지만, 요즘은 집에 앉아 휴대폰으로 주문하면 다음 날 문 앞에 물건이 도착한다. 굳이 시장을 찾을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일까. 명절이면 대통령과 장관들이 전통시장을 찾아 오뎅을 먹고 물건을 사는 모습이 뉴스에 나오지만, 그 장면을 보며 ‘오죽했으면’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럼에도 전통시장에는 대형마트나 온라인이 줄 수 없는 것이 있다.
참기름 짜는 고소한 냄새, 기분 좋으면 덤 하나 얹어주는 인심, 오뎅 국물 한 컵에 순대 몇 점 집어먹는 여유.
모든 것이 ‘빨리빨리’ 돌아가고, 반짝반짝 세련됨이 대세인 시대에, 조금은 느리고 투박한 옛맛과 옛멋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아들들에게 말해보면 아마 “아빠, 그런 데 왜 가요?” 하고 웃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어쩌면 그들도 언젠가 이런 골목을 다시 찾지 않을까. 냄새 하나에, 소리 하나에 멈춰 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시장을 나서며 다시 초량역 쪽을 바라봤다.
부산역에서 조금만 걸어도 닿는 곳, 전철로는 한 정거장. 1번 출구로 나서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할머니와 엄마의 맛을 만날 수 있다. 청국장 한 그릇에, 동태탕 한 뚝배기에, 그리고 오래된 시장의 숨결에.
동네 한 바퀴는 늘 그런 선물을 준다.
그 도시의 속살을 보여주고, 내 기억의 막을 슬며시 걷어 올린다.
초량에서 나는 옛 것을 찾았고, 결국은 나를 조금 더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