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사랑꾼의 역사 산책
주말 아침, 해운대 바다와 동백섬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다.
커피잔 너머로 펼쳐진 바다는 부산에서 마닐라, 자카르타, 방콕으로 이어진다.
직업상 해외근무로 평생 동남아를 오가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지금은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에서 세계를 생각하지만, 내 마음 한쪽엔 늘 동남아가 있다.
동남아 2천 년 역사를 돌아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가 보인다.
이 지역의 역사를 꿰는 실은 정복이 아니라 연결이라는 점이다.
왕조와 종교는 바뀌었지만
바다와 교역, 사람과 문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 흐름을 바꾼 10번의 장면을 차례로 떠올려 본다.
① 인도화(1~6세기)
힌두교와 불교, 산스크리트, 왕의 의식이 바다를 따라 전해졌다.
동남아 정치와 문화의 기본 문법이 이때 만들어졌다.
힘으로 지배하기보다
권위가 퍼져 나가는 방식.
오늘 ASEAN 외교의 느슨한 협력 방식도 이 뿌리에서 나온다.
② 푸난·참파 해상국가(3~8세기)
메콩 델타와 중부 베트남의 항구들이 나라를 만들었다.
바다가 곧 경제였고 권력이었다.
동남아는 처음부터
해양 네트워크 문명이었다.
③ 스리위자야의 부상(7~13세기)
수마트라(인도네시아)중심의 스리위자야는 말라카 해협을 장악했다.
인도양과 중국을 잇는 세계 교역의 중심지였다.
동남아는 이미 천 년 전
세계 물류 허브였다.
④ 앙코르 수리문명(9~14세기)
캄보디아 앙코르는 거대한 저수지와 관개시설을 만들었다.
농업 생산력으로 강력한 국가를 세웠다.
동남아는 바다만의 역사가 아니라
물과 농업의 문명이기도 했다.
⑤ 이슬람의 확산(13~16세기)
정복이 아니라 상인과 결혼을 통해 퍼졌다.
말레이 세계의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동남아에서 종교는
교역로를 따라 이동했다.
⑥ 말라카 술탄국(15세기)
중국인, 인도인, 아랍인, 말레이인이 함께 살았다.
다양성(diversity)이 힘이 되는 항구 도시였다.
오늘날 싱가포르의 모습도
말라카에서 시작됐다.
⑦ 유럽 식민세력의 진입(16~19세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이 항구를 장악했다.
자유로운 해상 네트워크는 식민 교역망으로 바뀌었다.
늘 열려있던 동남아 바다가 처음으로
외부에 통제된 순간이었다.
⑧ 식민 경계의 고착(19~20세기 초)
식민 행정선이 오늘의 국경이 됐다.
유연했던 만달라 세계가 영토국가로 바뀌었다.
지금 동남아 갈등의 뿌리도
이 시기에 생겼다.
⑨ 탈식민과 냉전(1945~1975)
독립의 기쁨 뒤에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베트남 전쟁과 캄보디아 비극이 이어졌다.
강대국 경쟁 속에서
동남아는 늘 균형을 배워야 했다.
⑩ 아세안의 출범(1967~현재)
동남아 국가들은 깨달았다.
싸우지 말고 협력하자.
그래서 만든 것이 ASEAN.
내정불간섭, 합의, 점진성.
느리지만 오래 가는 방식이다.
고대 만달라의 지혜가
현대 외교 제도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동남아 역사의 교훈
동남아의 역사는
“누가 지배했나”보다
“어떻게 연결됐나”의 이야기다.
바다, 교역, 혼합 문화, 느슨한 협력.
이것이 오늘 ASEAN 외교의 뿌리다.
해운대 바다를 다시 바라본다.
저 물길은 부산에서 동남아로 이어진다.
지금 세계는 미중 경쟁으로 시끄럽다.
하지만 동남아는 늘 강대국 사이에서 길을 찾았다.
싸우기보다 연결하고,
지배하기보다 공존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믿는다.
역사의 큰 흐름은 우상향하고 있다는 것을.
부산과 동남아를 잇는 바닷길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또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