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섬에 번지는 봄의 윤슬

손녀를 기다리며

by 동남아 사랑꾼


구정 연휴 아침, 아파트 창 너머로 본 해운대 바다에 봄빛 윤슬(潤瑟)이 은은히 번지고 있었다. 겨울 끝자락인데도 공기는 부드러웠고, 바다는 새해를 맞이하듯 잔잔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 동백섬 산책길에 들어섰다.


섬길 초입에는 붉은 동백꽃이 막 피어 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길가의 먼나무에는 작은 빨간 열매가 구슬처럼 매달려 있었다. 겨울의 마지막과 봄의 시작이 한 나무 위에서 조용히 인사를 나누는 듯했다. 꽃과 열매 사이로 스며든 햇빛이 바다의 윤슬을 떠올리게 했다. 멀리서는 물결이 반짝이고, 가까이서는 산책길이 그 빛을 품은 채 따뜻했다.


구정을 즐기려는 가족들이 삼삼오오 섬길을 걸었다. 아이들은 풍선을 들고 앞서 뛰어가고, 어른들은 사진을 찍으며 웃었다. 낯선 이들의 웃음이 섬을 더 환하게 만들었다. 그 틈에서 집을 떠난 고양이들도 사람을 반기듯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누군가 떨어뜨린 과자 부스러기를 찾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조금은 짠하기도 했다.


고양이를 유독 좋아하는 우리 집 강아지 히꼬는 그 모습에 눈을 반짝였다. 꼬리를 세우고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더니 갑자기 달려가 고양이를 쫓았다. 놀란 고양이는 숲 가장자리로 사라지고, 히꼬는 멀리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사람과 동물과 바다가 함께 만든 작은 소동, 그마저도 새해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섬길 끝에서 다시 바다를 보았다. 윤슬은 여전히 잔잔히 번지고 있었고, 붉은 동백과 먼나무 열매는 햇빛 속에서 더 깊은 색을 띠고 있었다. 구정 연휴의 웃음과 바다의 숨결, 히꼬의 발자국이 한 장면으로 겹쳤다. 새해는 거창한 다짐보다 이런 소소한 풍경 속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번 구정 연휴 마지막 날, 서울에서 태어난 우리 손녀가 처음으로 부산에 온다. 아직 세상빛도 낯설 어린 아이에게 이 동백섬을 꼭 보여주고 싶다. 바다 위에 번지는 윤슬과 붉은 동백꽃, 먼나무 열매의 작은 불빛, 히꼬가 쫓아가던 고양이의 발자국까지… 이 모든 풍경이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내려앉기를 바란다.


며느리 모르게 올렸는데 혹시 보면 자기 딸 초상권 운운할까 걱정인 손녀 사진


세월이 흘러 아이가 자라 이곳을 다시 찾을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같이 걸었던 봄날의 바다”가

윤슬처럼 반짝이며 떠오르면 좋겠다.


동백섬의 겨울 끝, 봄의 시작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 가족의 시간 속에도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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