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며 비로소 보이는 것들
부산 해운대 아침 바다는 늘 조용하다.
유엔기념공원(UNMCK) 언덕 위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내려오면, 75년 전 먼 나라에서 온 젊은 병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들이 빛난다.
그 앞에 서면 늘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무엇을 알고 살아왔을까.
1. 아는 사람이라 믿고 살았다
세상 살며 나는 늘 ‘아는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작업상 ASEAN 정상회의를 다니고, 각종 국제회의에서 토론하고, 자카르타·마닐라·방콕의 친구들과 밤늦게 정책을 논했다.
회의장에서는 통계와 전략을 말했고, 칼럼에서는 지정학, 교역과 공급망, 각종 아세안 계획들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강의도 했다.
누군가 물으면 설명할 수 있었고, 책을 읽으면 요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은퇴 후 책장을 다시 펼치니 깨달았다.
나는 내 일을 할 만큼만 알았다.
그리고 그만큼만 보았다.
2. 요약본에 길들여진 지식
바쁘다는 핑계로 긴 글보다 요약본을 찾았다.
‘핵심 정리’ ‘10줄 요약’ ‘한 페이지 브리핑’이 익숙했다.
외교 문서도, 책도, 심지어 삶도 그렇게 읽었다.
그러나 고전을 펼치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 고민했던 인간 본성
•공자와 노자가 묻던 도(道)
•부처가 말한 고통과 집착
•인도와 페르시아, 수메르의 성현들이 탐구한 우주와 인간
우리는 물질문명에서는 억만겁의 우상향을 이루었지만, 정신의 질문에서는 과연 얼마나 앞섰는지 확신할 수 없다.
나는 회의에서 말하던 그 많은 문장 속에서 정작 나 자신을 묻지 않았다
3. 밖에서만 답을 찾았다
조직에서 남보다 앞서고 싶었다.
또는 뒤처지지 않으려 애썼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믿었다.
그러나 돌아보니
나는 내면이 아니라 밖에서 답을 찾으며 살았다.
더 큰 직책
더 많은 성과
더 좋은 평가
그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니
남은 것은 나의 왜소함이었다.
유엔기념공원의 묘비 앞에서
20대 청년의 생이 멈춘 나이를 보면
내가 붙들고 있던 것들의 크기가 작아진다.
4. 무지를 아는 순간
고대 성현들은 늘 같은 말을 했다.
“너 자신을 알라.”
나는 이제야 그 문장의 무게를 느낀다.
ASEAN 회의장에서, 워싱턴, 로마, 캔버라, 동경, 방콕 그리고 다시 자카르타, 마지막 멕시코 시티에서, 나는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세계를 이해하기 전에
나를 이해해야 했다.
무지를 아는 순간이 지혜의 시작이라는 것을
60이 넘어서야 배운다.
5. 이제 남은 길
이제 얼마를 더 살지 모른다.
그러나 남은 길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이치를 찾는 일.
숲 해설가 수업에서 나무 나이테를 보며
바다 새벽빛을 보며
묘비 사이 바람을 들으며
한 걸음씩 배우고 싶다.
ASEAN을 분석하던 습관으로
이제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국제질서를 읽던 눈으로
자연의 섭리를 읽고 싶다.
6. 늦었지만 괜찮다
부산 시장 골목에서 청국장을 먹던 날, 엄마 생각이 나 눈시울이 뜨거워졌듯이,
사람은 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늦었다고 헛된 것은 아니다.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젊은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삶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7. 작은 다짐
앞으로는
조금 더 천천히 읽고,
조금 더 오래 생각하고,
조금 더 깊이 묻겠다.
그리고
아는 척하기보다
모른다고 말하겠다.
그것이 나의 남은 공부이고
늦은 참회이며
조용한 기도다.
구정 세모에 부산의 새벽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