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사는 세상
봄을 알리는 해운대 훈풍이 분다. 작년에 태어나 이제 겨우 여섯 달 된 손녀가 처음 보는 바다다. 은빛 비늘처럼 반짝이는 파도를 보며 실눈을 뜨고, 콧속으로 스며드는 바람을 느끼며 환하게 웃는다. 세상은 처음 보는 것투성이지만, 아이는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먼저다. 그 표정을 보며 나는 문득 묻는다. 이 평화로운 일상이 이 아이가 사는 세상에도 이어질까.
2월의 주말, 해운대는 한층 고요하다. 교회 청년회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나즈막한 찬송을 부르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잠시 걸음을 멈춘다. 세상 걱정을 내려놓고 평화와 은총을 상상하는 듯한 표정들. 바다와 노래와 바람이 섞인 풍경 속에서 나는 손녀의 작은 손을 잡고 서 있다.
하지만 세상을 읽는 경세가들의 전망은 그리 장밋빛이 아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 보고서는 2030년을 향한 네 가지 위험을 말한다. 첫째, 세계 권력의 다중화다. 미국 중심 질서가 흔들리고, 여러 나라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주도권을 갖는 다층적 세계가 온다. 이는 내가 오랫동안 읽어 온 아차라야 교수의 ‘멀티플렉스 세계질서’와 닮아 있다. 강대국만이 아니라 중견국과 도시, 기업과 시민사회가 동시에 움직이는 세계다.
둘째는 민주주의의 정당성 위기다. 과정보다 성과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규칙보다 힘이 우선되는 세상, 숫자로 평가되는 정치가 늘어난다. 외교 현장에서 만난 동남아 친구들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체제”를 더 신뢰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
셋째는 통화 시스템의 파편화다. 달러 중심 질서는 계속되겠지만 디지털 화폐와 지역 통화가 고개를 든다. 금융 질서가 흔들리면 작은 나라들이 먼저 흔들린다. 내가 ASEAN 회의장에서 보았던 환율 위기의 공포가 다시 떠오른다.
넷째는 기술에 대한 반발이다. AI는 지식 노동뿐 아니라 육체 노동까지 바꾸고 있다. AI를 읽는 능력이 새로운 문해력이 되고, 기술 격차가 소득 격차를 낳는다. 손녀가 대학에 갈 무렵, 직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여기에 기후 변화가 있다. 2015년 파리협정이 약속한 2050년 탄소제로 목표가 흔들리고, 바다는 조금씩 더 뜨거워진다. 언젠가 손녀가 이곳을 다시 찾을 때, 해운대의 바람은 지금보다 더 덥고 거칠어질까.
그러나 나는 비관만을 믿지 않는다. 동남아에서 만난 친구들이 그랬듯, 세상은 늘 위기 속에서도 길을 찾았다. 전쟁의 폐허 위에 세워진 이 도시 부산도 그 증거다.
손녀가 바라보는 바다는 오늘도 반짝인다. 아이의 눈에는 국경도, 패권도, 보고서도 없다. 그저 바람과 햇빛과 파도뿐이다.
나는 그 손을 꼭 잡고 속으로 다짐한다.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공정하도록, 우리가 할 일을 미루지 말자고.
해운대의 훈풍이 다시 불어온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고, 아이는 웃는다. 세상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희망도 그만큼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