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궁금한 세 가지 질문들

답은 어디에 있나

by 동남아 사랑꾼

해운대 바다를 내려다보는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잔잔한 파도 위로 햇빛이 부서지고, 커피잔에서는 김이 오른다.


직장 생활 내내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살다 보니, 나는 어쩌면 늘 경계인으로 살아온 셈이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기준은 분명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국익은 언제나 최우선이었다는 것.


공과 사가 애매할 때는 공적으로,

비용이 수반되면 사적으로.


그게 원칙이었고, 그게 나를 지켜준 기준이었다.


그런데 은퇴 후, 인생 2막을 살아가는 지금,

이 낯선 듯 익숙한 도시 부산, 그것도 마린시티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내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세 가지 있다.



1. 왜 한국 아파트는 외국어 이름일까


처음 마린시티에 와서 느낀 것은 이름부터 낯설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이름이 영어, 불어, 때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조합들로 가득하다.


왜일까.


고급스러워 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다르게 보이고 싶은 욕망’일까.


누군가는 농담처럼 말한다.

“시어머니 못 찾아오게 하려고 그런 거 아니냐”고.


웃고 넘길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묘한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


한국말에도 아름답고 깊이 있는 이름이 얼마나 많은가.

굳이 외국어가 아니어도 충분히 품격을 담을 수 있는데,

우리는 왜 스스로의 언어를 밀어내고 있을까.


다만 이곳에 살며 느낀 점도 있다.


단지 안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이웃이 누구인지 몰라도 되는 익명성.


편리함과 프라이버시.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면,

이름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은 아닐까.



2. 왜 우리는 성형에 열광할까


지하철을 타면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수술 전과 후의 얼굴이 극적으로 바뀐다.


솔직히 말해, 누구라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나 역시 거울을 보면 생각한다.

나이 60을 넘기니 얼굴에는 점이 늘고, 눈은 처진다.


두 번 보고 싶은 얼굴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시간의 흔적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아름다운 일은 아닐까.


드라마 속 또래 배우들은 팽팽한 피부로 등장한다.

최소한의 시술은 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대로의 모습이었다면 더 응원하지 않았을까.”


얼마 전, 자카르타에서 함께 근무했던 부부가 부산에 왔다.

예전과 똑같다고 했더니 웃으며 말했다.


“보톡스도 맞고 관리도 했지.”


이유를 물으니,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부모들이 ‘늙어 보이는 모습’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잔주름은 단순한 노화의 흔적이 아니라

경험과 시간의 기록일 수도 있다.


젊음은 아름답지만,

늙음 또한 숭고할 수 있다.


우리는 왜 그 가치를 잊어가고 있을까.



3. 왜 우리는 끊임없이 바꾸며 살까


서울의 한 지인 집을 방문했을 때다.

새 아파트인데도 내부를 다시 꾸미고, 가구도 모두 바꾸었다고 했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다.


내가 사는 곳에서도 멀쩡한 가구들이

재활용으로 쏟아져 나온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둘째 아들이 학교 가던 아침, 조각칼을 찾았다.

아내는 서랍에서 자신이 쓰던 것을 꺼내주었다.


50년도 더 된 조각칼이었다.


그날, 아들은 ‘절약’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을 것이다.


지금 그 아들은 아이를 키우며 중고 육아용품을 산다. 우리 집 지하에는 “ㅇㅇㅇ1-7반”이라 적힌 오래된 실로폰이 있다.


그것을 손녀에게 줄까 고민한다.


아마 좋아할 것이다.


우리는 물건을 오래 쓴다.


경제는 덜 돌아갈지 몰라도

자원과 환경을 생각하면

어쩌면 더 옳은 방식일지도 모른다.



답은 어디에 있나


세 가지 질문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우리는 왜 지금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이름을 바꾸고, 얼굴을 바꾸고, 물건을 바꾸며

끊임없이 ‘더 나은 모습’을 향해 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편리함과 경쟁력을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다움, 자연스러움, 지속가능성은

조금씩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운대 바다를 다시 바라본다.


파도는 변함없이 밀려오고,

빛은 늘 같은 자리에서 반짝인다.


아마 답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그 균형을 찾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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