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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남아 사랑꾼 Feb 29. 2024

나에게 쓰는 편지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기

오늘도 이른 아침 눈을 떴다.


밤새 화장실 안 가고 소변을 보고, 뒤이어  굵고 적절한 색깔의 쾌변을 본 후 거울을 본다.  흰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보이지만 정수리엔 그 밀도가 낮지만 여전히 머리카락의 숱도 많다. 이마엔 잔주름이 있으나 피부는 아직 노화가 더디게 되고 있다. 왼쪽 팔은 오십견으로 완벽하게  귀에 닿을 정도로 뻗을 순 없지만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다. 아침을 먹은 후 당뇨약을  챙겨 먹어야 하지만 시내까지 1시간 거리는 걸어서 다닐 수 있다. 물론 산을 오를 때 휘청하곤 하는 건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60이 넘도록 평생 쓴 이 몸뚱이가 이 정도 기능을 하니 고맙기 짝이 없다.


가끔 악몽도 꾸지만 많은 날들은 무슨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게 아침을 맞는다. 멕시코에서 코로나 초기 독기가 센 델타에 걸려 중환자실에 10일간 입원하며 1시간만이라도 숙면을 하면 좋겠다고 했던 게 불과 4년이 채 안된 일이다. 그땐 수면제를 먹고도 동트는 아침을 뜬눈으로 맞이했었다. 나이 들면 잠이 안 온다는데 아직 저녁이 되면 졸려 일찍 잠자리에 든다.


또 아침에 일어나 DuoLingo 앱으로 치매 예방차원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언어공부를 하고, 매주 금요일 이코노미스트지 온라인판 중 내가 흥미 있는 동남아 이슈를 집중해서 읽고, 그간 읽었던 동남아 역사책을 다시 꼼꼼히 보고, 교보문고에 가서 그간 쓸데없는 책만 읽다가 못다 읽은 소설책도 읽는다. 이 만큼의 눈시력에 고맙다.


젊은 날 나 아니면 안 될 듯한 착각에 빠져 열정을 핑계로 오버했던 일들,  그러다가 알량한 지식으로 남을 재단하던 어리석음, 남이 나보다 잘 나가면 괜히 시기심도 있었던 나를, 지금 와서 보니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철들어 가는 징후들이다.


이제는 마음 챙김, 내려놓기, 홀로 서기로 남은 시간을 뚜벅뚜벅 걸어가면 되지 싶다. 곁에 늘 잔소리하는 마누라가 있고, 자식들은 제 길을 가는 그러한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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