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의회 앞 성공회 성당 부지 내 '카페 그레이스'의 한 탈북민과 인연이 4년이 넘었다. 2019년이다. 다니던 직장의 별도 일을 맡아 새문안 교회 맞은편 오피시아에 사무실을 다녔다. 출근 모닝커피는 늘 그곳 카페에서 했다. 이름이 '은총'의 그레이스라서 늘 아침이면 축복을 받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분이 북한 사투리를 많이 해 금방 탈북민인 줄 알았다. 어느 아침이었다. 젊은 여성이 다자 고자 들어와 엄마 뻘 되는 탈북민에게 삿대질하며 이런 사람 부리는 카페 주인(지금 생각해 보니 성공회가 운영해 쉽게 해고는 안 할지 싶다)에게 당장 해고 시키겠다고 한다. 탈북민이 만들어 준 테이크 아웃 커피잔 뚜껑이 잘 안 닫혀 옷에 커피가 묻었다며 기리기리 날 뛰었다. 이 여성 탈북민은 어렵게 얻은 직장인데 혹시 잘못될까 봐 연신 굽신굽신 하며 미안하다고 한다.
이 젊은이가 탈북민이 아닌 여느 한국인이었어도 이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참 못된 젊은 여성이었다. 끼어들까 생각하다가 봉변당할까 침묵했다. 미안한 마음에 그 한 성질 하는 버릇없는 젊은이가 가고 난 후 "북한에서 오셨어요"하며 말을 건넸고, 몇 년 전 두 아들을 북에 두고 탈북했다고 한다. 돈 벌어 아들 데리고 와야 한다며 놀란 가슴 쓰려 내리고 있었다. 그 이후 단골 고객으로 이런저런 얘기하며 지냈다. 물론 내 소개도 하고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며 명함도 건넸다. 물론 연락은 받지 못했다. 내가 받아 받자 뭐 뽀쪽한 도움은 줄 수도 없지만 말이다.
이제 시간이 흘러 4년 만에 그 탈북민을 아침에 다시 만났다. 내가 공직을 떠나 다니는 새직장의 출근 버스 도착 시간이 남아 혹시나 하고 그 카페에 갔더니 8시에 여는 카페는 문이 잠겨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누가 보여 무심코 그냥 목인사를 가볍게 했더니 그 탈북 여성이 문을 열고 맞으며, 커피 한잔 하라고 한다. 오픈전 커피 한 잔을 하며 북에 있는 두 아들과 연락하냐고 물었더니 안 한다고 한다. 탈북시킬 돈을 아직 못 마련했는데 희망 고문이 될 까봐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 1인당 탈북시킬 때 중개인에게 얼마 주느냐고 물었더니 서울까지 5천만 원이고 중국 연길까지는 3천만 원이라고 한다. 북한 단속도 단속이지만 연길 와서 중국 공안에 잡혀 강제 북한 송환될 우려도 크다고 한다. 탈북 중개인 수수료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고 한다.
지난 정부시 코로나가 겹친 데다가 이래 저래 탈북민 수가 많이 줄었고 이제 다시 탈북민 수가 늘어날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내가 동남아에서 일할 때 탈북민들을 많이 만난 적이 있어서 그들의 탈북 어려움을 안다. 길게는 중국 농촌에서 10년 이상 전전하다가 동남아를 거쳐 어렵게 어렵게 한국에 온다. 이렇게 찾아온 한국이지만 그들의 서울 삶은 팍팍하다. 우리는 지금 어느 방송 프로그램의 '이만갑(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통한 탈북민 무용담 정도로 탈북민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방송용 치장된 그 이상의 고난 속에서 살다가 자유 한국에 왔다.
최근 어느 신문에서 굴지 기업 회장이 고향 동창생 한 명당 1억 원씩 주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문득 이 회장님이 100억 원만 쾌척하면 200명 탈북민들이 올 수 있을 텐데 그럼 카페의 탈북민 두 아들도 수혜 대상이 될 수도 있지는 않을까 하는 공상에 가까운 바람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카페를 나왔다. 물론 그 회장님도 돈 버는라고 고생 고생하셨겠지만 말이다.
나는 이번에도 은퇴 후 적을 둔 곳 명함을 건네며 연락하라고 했다. 뭐 해줄 수도 없으면서 말이다. 4년 만에 만난 그 탈북민의 얼굴에 살이 통통하게 붙었고 북한 사투리도 눈에 띄지 않아 한국 생활이 나아지고 있구나 생각하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 이후 그 카페를 가는 게 왠지 줄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일지 모른다. 올해는 뭔가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은 여전히 희망 섞어 생각하고 있다. 혹시 NGO단체와 카페 탈북민을 연결이나 해주면 어떨까 등등이다.
그분의 하루 빠른 가족 재회를 기대해 본다. 또 희망 고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