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
작년 어느 날, 저녁 약속이 있어 서둘러 빌라 단지를 나오는데 앞동 할머니가 붙잡는다. 한 달 전 만난 나이 든 분이다. 그때 그분은 자기 집 앞 화분에 심어 놓은 꽃나무가 죽어 뽑으려고 안간힘을 쓰시고 계셨다. 내가 얼른 달려가 썩은 나무를 뽑아 주었다. 새 꽃나무를 심을 요량이란다. 매년 새 나무며 꽃들을 본인이 사서 심는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그 화분 앞을 지나다 보면 아무런 새 나무가 심어져 있지 않아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얼마 전 몇 십 년을 같이 산 여든의 건강한 남편이 등산 중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나이 차이가 7살이 나고 2남 1녀의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너무 훌륭한 남편으로 평상 말다툼 해본 적이 없는 분이었단다. 서로가 늘 존대말만 했다고 한다. 자식들이 공부를 다 잘해 성공하여 더할 나위 없이 지냈다고 한다. 자식들이 아버지 입원 후 양말도 손대지 말라고 할 정도로 아버지 자취를 소중히 여길 정도란다.
그런 남편이 병중에 있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병원비는 건강보험으로 되는데 1일 15만 원 간병인 경비는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럴 법도 하다. 월 5백은 드니 말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이라 마음의 준비가 안된 듯하다. 평상 그리 잘 지낼 줄 알았다고 한다. 내가 우리 부부는 가끔 말다툼도 하고 지낸다고 하니 평생 그런 적 없어 자신도 그랬으면 이렇게 상실감이 크지 않을 것 이라고까지 했다. 부부 금실이 무척 좋았던 모양이다. 남편이 진짜 훌륭했을지 싶다.
어차피 우린 헤어져야 한다. '죽음을 생각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생각난다. 죽음이 느닷없이 오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분의 잡은 손을 놓고 총총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20년 후 내 모습이다. 어쩜 그 이전일 수도 있다. 남은 하루하루 잘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 '인생의 잔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아직 세상의 끈을 놓지 못한 내 모습이 버스 창유리에 어른 어른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