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상태'를 '고딜락 균형'이라고 한다.
밖의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 한기가 오래된 서울 집으로 스며든다. 난방 온도를 잔뜩 높이고, 에어컨 난방도 가동하고, 여기에 전기장판까지 동원하자 집안에 온기가 돈다. 바깥 유리창은 격자 모양의 살얼음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휴, 이제 살 것 같다"하는 순간 정전이다. 두꺼비 집에 가보니 몇 개가 내려와 있다. 다시 스위치를 올려도 금방 내려온다. 에어컨 난방과 전기장판을 끄니 이제야 스위치가 올라간다. 지나침은 모자람 보다 못하다. 과부하다.
요사이 생성형 AI가 구석구석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문맹이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읽고 쓰기도 못하는 문맹을 대체하고 있다. 이로 인한 불편함을 넘어 이제 디지털이 만사형통이자 미래이고, 아날로그는 저만치 뒤떨어진 과거로만 치부한다. 이어령 선생이 생전 '디지로그(digilog)', 즉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가 오히려 더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한다. 아무리 AI가 똑똑해도 그는 우리 내면의 대화를 듣지도 못하고, 몇 십 년 전의 그리운 사람과 떠나버린 엄마의 그 따뜻한 온기를 줄 수 없다. AI 시대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하지만 우린 우리만의 따스함을 간직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건 변치 않을 것이다.
'워라밸'은 참 어렵지만 이제 대세다. 또 '라때'냐고 할지 모르나, 베이비 부머 세대인 내가 젊은 시절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대체로 정말 회사, 일 밖에 몰랐다. 어린 두 아들이 일어나기 전에 일터로 나가 애들이 자고 나면 집에 오고, 주말은 늦잠 자다가 못 보고 그런 생활 패턴이었다.
이제 은퇴 후 여유가 있어 같이 놀자고 하니 바쁘다고 한다. 어릴 적 함께했던 추억이 거의 없다. 지내 놓고 보니 왜 그랬냐 싶다. 완벽한 워라밸은 아니지만 7 vs 3 정도라도 일과 가정을 함께 했었으면 좋았을 걸 생각하지만 때 늦은 후회다.
나는 여주에서 딴살림 차려 주말 부부로 살고 있는 집사람과 우리 집 귀염둥이 '히꼬'(멕시코에서 데려온 웰시 코기)를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고딜락 균형'을 생각하며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