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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운전 중입니다

때늦은 아빠 연습

by 동남아 사랑꾼


몇십 년 운전 면허증은 갖고 있었으나, 소위 장롱 면허다. 은퇴 후 이제 '초보 운전' 딱지를 차 뒷유리 좌측 상단에 붙이고 운전을 시작합니다.


해외 생활 중에는 운전할 일이 거의 없었고, 서울에 있을 때는 소위 BMW(Bus, Metro, Walking)로 불리는 대중교통으로 다녔다. 지방 갈 때는 고속버스나 기차 차창 밖의 철 따라 바뀌는 풍경을 실컷 보았다. 부수적 효과도 있었다. 차 없다는 핑계로 골프도 안치고 그 대신에 북한산 타고, 가급적 걸어 튼튼한 다리가 되었다. 차 없이 사는 데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는 아니고, 굳이 실용적 이유를 꼽자면, 해외 살다가 한국에 오면 한국만큼 '싸고 편리하고 안전한' 대중교통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데 있다. 내가 그간 살았던 외국은 하나같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자동차가 필요했다.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는 대중교통이 '싸지만 편리하지도 안전하지도 않고', 멕시코는 '싸지만 위험'하고, 미국은 '비싸고 위험'하고, 이태리는 '비싸기만' 하며, 호주는 '안전은 하지만 비싸고 불편'하고, 일본은 '안전하지만 비싸'다.


그러나 은퇴 후 서울과 여주를 번갈아 살면서 여주 시내와 집 사이 거리가 5~6킬로는 되고, 30분마다 오는 버스와 한번 나갈 때마다 13000원의 택시비를 때문에 필요할 때 차를 몬다. 여주와 서도 해외에서 사 온 자전거를 타고, 1시간 정도 걸어서 시내에 나가지만 겨울철엔 춥고 여름철엔 덥다. 또 그 길은 어릴 적 코스모스 핀 시골 논두렁 길도 아니고, 동남아처럼 보행로가 없는 차들만 편리하게 쌩쌩 달리는 아스팔트 국도다.


나는 외국에서 살면서 두 아들이 학교 다닐 때 제대로 된 픽업 한번 못했다. 올 들어 여주에서 경강선으로 판교로 출퇴근하는 아들을 위해 난 때늦은 아빠 연습한다. 나는 '초보 운전'의 딱지를 붙이고 아들 퇴근 시간에 맞춰 여주역으로 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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