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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힘

책과 작가를 완전히 가지고 노는 독자가 되는 허황된 꿈

by 동남아 사랑꾼


우리가 10대 세계 경제대국이면서 1년에 책 한 권도 온전히 읽지 않는 국민들도 많다고 하고, 젊은 층 중에는 SNS에 익숙해 짧은 글이나 오디오와 비디오 영상물에만 열광한다는 얘기도 있다.


키신저외 공저인 "AI 이후의 세계"를 읽었다. 2023.11.25자 매경의 장은수의 "독서의 목적" 칼럼을 읽으면서 독서를 왜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 키신저 책의 얘기가 공감 간다. 그의 글 중 일부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정보> 지식(정보+맥락)>지혜(지식+소신/성찰의 시간 필요) 과정이다.


'정보'에 맥락이 더해질 때 '지식'이 된다.


그리고 지식에 '소신'이 더해지면 '지혜'가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소신이 생기려면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홀로 생각할 시간이 줄면 '용기'가 위축된다. 용기는 소신을 기르고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며 특히 새로운 길, 그래서 대체로 외로운 길을 걸을 때 중요하다.


인간은 소신과 지혜를 가질 때만 새로운 지평을 탐색할 수 있다."


장은수는 다음과 같이 독서를 얘기한다.


"독서는 '진실'에 이르기 위한 '수양 행위'에 가깝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지식과 정보'를 얻을 뿐 아니라 '사고를 훈련'하고 '감수성을 단련'함으로써 '진실'을 찾아가는 '내적 여행'을 한다.


사물과 사건을 '깊이 생각'하고 '넓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인간과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 넉넉히 대하는 법'을 학습한다.


독서의 기쁨은 대부분 내용의 파악이 아니라 우리를 성숙한 인간으로 이끄는 '내적 성장의 체험'에 달려 있다. 이러한 체험 없이 어떤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독서는 생각의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힘은 내가 오롯이 책을 보면서도, 홀로 산책을 하면서도, 멍 때리기를 하면서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AI 시대에 이러한 생각의 힘은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헤르만 헷세는 그의 책 '책 읽기와 글쓰기'에서 세 가지 유형의 독자를 소개한다(책은 곧 읽을 예정이고, plagerism 예방차원에서 2025. 2.1자 매경 신간 소개 기사만 보고 요약했음을 밝혀 둔다).


첫째, 순진한 독자다.


말과 마부 관계다. 책이 이끌면 독자는 그 책을 추종하며 따라간다.


둘째, 책에 능숙한 독자 중에는 "짐승의 발자국을 쫓는 사냥꾼처럼" 작가와 작품을 바라보는 존재들이 있다.


흔히 작가는 한 세계를 자유롭게 창조하는 절대자로 비치는데, 사실 창작 과정을 보면 작가들이야말로 자신이 만든 세상과 그 내부의 소재에 꼼짝없이 휘둘릴 때가 많다. 때로 작가들이 "그렇게 쓸 수밖에 없다"라고 호소하는 이유다.


따라서 세심한 독자는 작가의 '수동성'을 발견하며 즐거워한다.


셋째, 하지만 더 높은 차원의 독자가 있으니, 책과 작가를 완전히 "가지고 노는" 독자들이다.


그들은 책 사이를 걷고 뛰어다닌다.


나는 2025년 1월 1일 브런치글에서 새해 결심의 하나로 '알차게 독서하기'를 꼽았고, 유치하게도 초딩 때하던 류의 책 100권 읽기 목표치를 내심 세웠다. 하지만 난 내가 헤르만 헷세의 독자 부류 중 아직도 첫 번째 유형인 '순진한 독자'에 머물고 있음을 발견한다.


당신은 이 세 유형 중 어디에 속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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