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낭을 떠나며
1박 2일 페낭 방문을 마치고 떠나는 AirAsia 게이트 앞이다. 일요일지만 그랩으로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늘이 연휴 마지막 날이라 그렇다고 한다.
올 때 학습 효과가 있어 일찍 서둘러 나온 게 다행이다.
오늘 페낭의 마지막 오전은 Grab(동남아판 우버인데 동남아선 우버가 맥을 못 추는 토종앱, 원래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했는데 본사를 싱가폴로 옮겨 상장)을 불러 타고 어젯밤에 문 닫아 못 보고 온 '쿠 콩씨 사원'으로 갔다. 쿨리들의 아픈 고단함이 서려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확인차 맘먹고 간 곳이다.
결론은 엄청난 heritage 건물이다. 근데 쿨리의 암호는 애써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그네들이 고향에 두고 온 부모 형제에 대한 그리움과 고단함만은 사원 식당에서 밥을 먹는 실물 크기의 밀랍 모습 속에 훤하게 드러난 등짝 여기저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어제 본 대로변 간판이 붙어 있던 건물이 진짜가 아니고 양쪽 건물을 따라 쭉 들어가면 'ㅁ'자 형 건물로 둘러싸인 진짜 건물이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입구 오른쪽 건물에 쿠 콩씨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단에 페낭 후손들이 향을 피우며 sushi며 과일을 올려놓고 정성스레 기원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 나오면 2층 높이의 본 건물이 웅장하게 서있고 석조를 주물러 놓은 듯한 조각상이 겉면과 내부를 빼곡히 장식하고 있다.
본건물을 나와 왼쪽 1층엔 식당에서 밥 먹는 쿨리로 보이는 가사인들의 밥 먹는 모습이 보인다. 만약 그들이 쿨리라면 인력거나 주석 광산에서 노동 착취를 덜 당한 운 좋은 편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 식당을 나왔다. 물론 밀랍 인형의 실물크기 모습에서 보니 그리 좋은 대우는 못 받은 흔적이 보인다.
여기를 나오면 'ㅁ'긋자 건물 중 왼쪽 건물에 현대 그림을 전시한 갤러리가 있다. 오래된 heritage 건물에 현대 작가의 그림이 새로운 운치로 다가왔다.
'ㅁ' 긋자 건물 맞은편, 즉 본 건물 맞은편은 연극 상연을 했을 건물이 떡하니 서있다. 'ㅁ' 공간 내부에 지금은 석재 보도로 되어있지만 초창기엔 혹시 잔디와 꽃이 심어져 있는 내정원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상상에 조미료까지 치며 감상하다가 '쿠 꽁씨 사원' 근처 Lebuh Armenia 거리(어쩜 아르메니인들도 페낭에 온 모양이다. 동남아에 의외로 아르메니아 커뮤니티가 있다)에 있는 곳에 그려져 있는 벽화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길래 나도 따라 하기를 했다.
그리고 난 후에 두리안을 먹으러 갔다. 마누라가 있었으면 내가 당뇨약을 먹고 있는데 달디 단 두리안이냐며 한마디 들었을 테지만, 과일의 왕이라고 불리는 두리안(Durian)(과일의 여왕은 속이 뽀얗고 달콤한 망고스텐)을 내가 좋아하는 냉동고에 있다 나온 자연 코코넛과 함께 점심 대용으로 먹었다.
두리안을 연신 손질하는 인도계 페낭인에게 두리안에 대해 요것조것 물어보았다. 두리안 종류가 200 가지고, 자기네 가게에서는 종류는 겉색깔이 아니고 나무 종류 차이란다.
두리안은 4~12월이 제철이고, 2백 개 종류가 있으나, 이 상점은 오직 Musang King과 Black Thorn이 주종목이라고 한다.
요새 중국인들이 두리안 맛을 알아 수요가 많지 않으냐고 물으니, 가게 주인은 값이 엄청 뛰었다면서도 은근히 좋아하는 표정을 짓는다.
중국이 수입 많이 한다고 좋아할 게 아닌데 속으로 생각했다. 한때 필리핀 바나나도 남중국해 이슈로 필리핀이 중국한테 대들자 수입 전면 금지한 적이 있고, 중국은 필요하다면 뭐든 무기화하는 걸 이 분은 모를 것이다.
여러 종류의 두리안 감별법을 묻자, 그는 겉모습이 아닌 두리안 나무로 구분한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두리안은 지독한 구린내가 나서 호텔에 반입이 금지되어 있고, 도깨비 망치나 고슴도치 등에 난 까시처럼 생긴 겉이 뽀쪽 뽀쪽한 까시가 박힌 껍질을 까면 속은 노란색의 섬유질이다.
그런데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노란색 섬유질보다 보다 주황색에 가까운 게 더 달고 비싸다고 한다.
두리안을 먹으니 갑자기 97년 IMF 시기에 인니에서 일할 때, 당시 가부장적인 구식 직장 보스와 저녁 먹고 디저트로 두리안을 먹고 난 후 이어진 술자리에서 해프닝이 생각났다. 그가 애주가이기 때문에 난 술이 약하지만 술자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땐 그랬다. 지금이야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가 너무 술을 많이 마시길래 두리안 먹고 술 마시면 두리안의 발효성 때문에 큰일 나 기고하고, 사모님 봐서라도 과음하시면 안 된다고 하니 버럭 화를 냈다.
그분이 제일 싫어하는 금기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술 마시지 말라'이고, 나머지 하나는 '집사람에게 잘해 주라'는 건데, 내가 2가지를 동시에 했다며 역린을 건드린 것이었다.
그 후 그런 그분이 싫어 난 한 달 이상 피해 다녔다. 그분이 은퇴 후 한 번도 못 뵈었는데 언제 한번 만나 식사 모시면서 지금도 제일 싫어하는 2가지가 여전하냐고 묻고 싶다.
직장 후배 중 결혼한 지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는데 인니 근무 때 부인이 두리안을 많이 먹어 외동딸을 얻었다며 두리안 효능을 엄청 치켜세우곤 했다.
믿거나 말거나 두리안이 발효성이 높아 몸을 따뜻하게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혹시 아이를 갖고 싶은 분들은 비싸지만 두리안을 부인께 사드리면 효능이 있을지 모른다. 남자에게 좋은지는 모르겠다.
이제 두리안은 서울 백화점이나 부자 동네 마트에는 물론이고 내가 살고 있는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과일가게서도 살 수 있다. 현지 대비 비싼 게 흠이긴 하다.
두리안을 맛나게 먹고 기념품 가게에 가서 핸드 메이드로 만든 장식용 보자기가 맘에 들어 사려고 했는데 현금만 된다 하여 아쉬움을 남기며, 호텔로 돌아왔다. 혹시 다음에 오면 사자는 마음을 두고 가게를 나온다. 그땐 현금을 꼭 챙겨 와야겠다.
푸젠성 출신 거상이자 신케인 청켕퀴가 지은, 오늘날 페낭의 명물인 120년 된 ‘페라나칸 맨션(Pinang Penenakan Mansion)’과,
강희정 서강대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가 쓴 책 '아편과 깡통의 궁전(이책은 페낭 화인권을 아편의 시대-주석의 시대-고무의 시대로 구분해 쓴 아주 탁월한 책)'과 '인물로 본 동남아시아'에서 감명 깊게 읽은 페낭의 의사인 우롄테가 잠들고 있는 무덤을 보고 가려고 했는데 못 보고 떠나는 아쉬움이다(이하 우롄테 관련 부분은 강희정 교수 책 인용)
"페낭에서 나고 페낭에 묻힌 의사 우롄테(Wu Lien Teh)는 영국여왕 장학금을 받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고, 1910년 만주에서 발병한 폐페스트를 퇴치해 ‘역병의 투사’란 국제적 명성을 쌓은 인물이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돌연 말레이시아로 귀향해 페낭과 이포에서 ‘동네 병원’ 의사로 여생을 보낸 인물이다".
나이가 들어가서인지 해외 방문을 하면 이게 마지막이겠지 한다.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는데 마누라는 어차피 다시 안 볼 거 사진 찍지 말고 심상에 묻어두라고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내가 가본 동남아 중 다시 가보라면 갈 곳은 인니 우붓(Ubut), 라오스 북부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베트남 중부 고원 달랏(Dalat)이었는데 이제 페낭을 추가해야겠다.
이번에 못 봐 아쉬움을 남긴 곳을 마누라 꼬셔 다시 오는 희망을 갖고 AirAsia KL 편에 오른다. 저가 항공 버릇이 나온다. 1시간 지연이다.
혹시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잘 있거라 페낭아, 나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