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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시집가는 날

가족 성묘

by 동남아 사랑꾼


4월 13일 일요일, 부산 해운대엔 비가 내리고 바다엔 안개가 덮어 있다. 아침 6시 부산 사촌 동생 내외 차로 할머님, 부모님 그리고 작은 아버님 내외가 묻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시골 성묘 가는 길이다.


경부 고속도로~상주 화서 고속도로로 냈다 달리니 3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초급장교의 산실인 삼 사관학교가 있는 영천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에 경주빵을 먹은 시간을 빼면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상춘객이 많지 않아 고속도로는 한가했다.


양 도로변엔 연두색 새순을 띄운 나무 잎이며 청색 나무 잎으로 뒤덮인 산들이 휘 ~익~지나간다. 얼마 전 산불이 여기까지 혹시 왔나 싶었는데 화마의 흔적이 없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만에 오는 길인데 내가 시골서 부산 유학 갈 당시 1970~73년엔 경부 상주 화북~황간~부산 길이 너무너무 멀었다. 구정 설과 추석에 고향 올 때 화북~황간까지 뜨문뜨문 있는 완행버스를 2시간 타고, 황간역에서 부산진역까지 완행열차인 비둘기호를 타고 5시간이나 걸렸다. 웬 터널이 그렇게나 많았든지 몰랐다. 가도 가도 터널 끝이 안 나와 1서부터 100은 세어야 터널의 밝은 빛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비둘기호~통일호~

무궁화호~새마을호 순으로 고급 열차였다. 없던 시절 비둘기 입석도 감지덕지였다.


지금은 비둘기호와 통일호는 없어졌고 대신 새마을호 다음 우리 모두가 아는 KTX/SRT가 있다. 우리 아들 부부가 어제 처음 SRT 타고 부산온 그 고급 열차다. 우리 아들이 30살이 훌쩍 넘었는데 부산이 처음이라고 한다. 내가 몰래 집을 나오려는데 아들 부부가 눈곱도 안 떼고 나와 잘 다녀오라고 한다.


산소 가는 길에 있는 멀리 보이는 산, 백두대간의 백화산(933m) 봉우리에 눈이 쌓여있고, 산소에 도착하니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잡초 뽑고 음식을 채려 제사를 지내고 나니 진눈깨비가 내린다.


산소 앞 복숭아나무와 사과나무 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변덕스러운 봄 날씨 때문에 냉해를 입어 올해 과실에 문제가 있다고 귀농한 동생이 걱정한다. 자연에 기대어 사는 같은 농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미친 봄날씨로 암술 검게 죽어 배꽃 99% 불임'이라는 기사(4.16자)를 나중에 읽었는데 탄소 감축도 중요하지만 기후 이상으로 오락 가락히는 기후 적응도 중요하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눈여겨 들어야 할지 싶다.


진눈깨비 내려 성해 걱정인 복숭아 나무


사과나무도 성해 걱정


성묘를 마치고 읍내 3일 장이 서든 화령장터 '돼지 식당'에서 시골밥상 차림으로 멋있게 먹었다. 우리 아들 형제 3명, 작은집 형제 3명 그리고 자녀들 포함 서울, 부산, 대구, 경주서 뿔뿔이 사는 형제와 그의 가족 13명이 식당 전세 내다시피 해 웃고 떠들며 점심을 했다. 36년 같이산 우리 집사람은 내가 오자고도 안했지만, 빠졌다. 자기 부모님 성묘도 안가는 그이기에 공평하긴 하다. 마음으로 그리운 사람을 기억하면 되지 왜 힘들게 성묘가느냐며 MZ 세대인 우리 두아들이나 하는 생각을 한다. 어쩜 우린 서울 여자와 촌 남자의 어긋난 인연은 이리 이어가나 보다.


머위(경상도 사투리로 머구). 땅두릅, 화살나무 홑잎, 산다래, 미나리, 고들빼기에 향긋한 쑥국, 봄냄새 훔뿍나는 냉이를 넣은 돼지고기 불고기로 시골 맛, 자연 맛에

어릴 적 엄마가 해 주던 엄마표 음식이 갑자기 떠올라 더 맛있었다. 엄마 맛을 느끼게 해 준 주인장 시니어는 몇 달 있으면 식당을 그만한다고 해 고마움과 내년에 다시 올 수 없는 아쉬움에, 내가 농을 건네며 나이를 물으니 72살이라고 한다. 그럼, 내가 오빠라고 하자 그녀가 재밌다며 늙은 소녀처럼 깔깔 웃는다. 추억 삼아 젊은 오빠랑 사진 한 장 찍 자고 하니 흔쾌히 응해 그녀의 식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박았다. 소주 2잔 깃들인 탓에 난 홍조 빛 얼굴을 한 채다. 정멀 젊은 오빠 모습이다.



오랫동안 해외 생활 때문에 성묘도 못 와 늘 미안하고 송구했는데 이렇게 성묘도 오고 사촌들과 조카들을 보니 세상 사는 맛이 난다.


밥을 다 먹고 나니 햇빛이 쨍쨍 난다. 비~진눈깨비~눈~ 햇빛을 하루 만에 롤러코스트 날씨를 보며, '아. 오늘이 색다른 종류의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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