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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유엔 묘지의 낙화

by 동남아 사랑꾼


어제 쨍쨍이 나던 봄빛이 오늘은 우중충한 잿빛 하늘로부터 비를 재촉하는 바람이 세게 분다. 풍성한 개화를 앞둔 유엔 묘지의 곁벚꽃이 심술궂은 바람에 놀라 이리저리 꽃비가 날린다.


내주 초 꽃맞이 올 참배객들을 위해 포토 라인 봉을 준비하는 직원들의 손길이 바쁘다.


안 그래도 곁벚꽃 개화 절정 시기가 짧아 아쉬운데 기후변화로 춥고 덥고 오락가락 비가 오고 바람까지 부니 더 짧아질까 걱정하는 담당 직원의 아쉬운 탄식 소리도 들린다.


나도 이번 주말 사촌 동생 부부를 개인적으로 곁벚꽃 맞이에 오라고 했는데 주말 비소식이 있어 조바심이 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몇 개월 전 심은 영산홍 나무가 기존 영산홍보다 더 빨리 화사하게 피어 오가는 이를 즐겁게 하고, 이를 지켜보는 나 또한 뿌듯하다. 봄견학을 꼬맹이 단체 손님들도 주황색 영산홍이 이쁘다고 한다.


내친김에 주한 영국대사에게 영국 묘역에 집중적으로 심은 영산홍 사진을 보내주며 자랑질을 했더니 "beautiful" 하며 영국인답게 짧게 답신이 왔다. 그간 따른 묘역의 영산홍은 잘 자라 꽃을 피웠다는데 영국 묘역만 영산홍이 고사돼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에 새로 심은 영산홍이 화사하게 피어 다행이다.


유엔 묘지 영국 묘역의 영산홍

이번 달 4.22 캐나다 참전용사와 4.30 네덜란드 참전용사 안장식이 있는데 멀리서 오는 유가족들도 영산홍 꽃과 그때까지 피어있을 곁벚꽃이 그들에게는 떠나보내는 자에게 위로의 선물일 것이다.


또 메인 보행길 난간에 새로 설치한 걸이식 화분에 빨간색, 흰색 데이지 꽃을 피우며 나란히 걸려 있다. 지나가는 방문객들이 연신 사진을 찍길래 나도 한방 박았다.


새로 설치한 난간 화분속 데이지 꽃


바람 불고 비가 올 조짐이지만 영산홍과 데이지('위대한 게츠비'의 여주인공 이름이 데이지)가 심란한 내 마음을 달래 준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냉해로 과실 열매가 맺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농부의 마음을 헤아리면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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