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맞이
오늘 4.18 유엔 묘지의 명물 곁벚꽃 오픈하는 날이다. 2월 부산에서 제일 먼저 피는 유엔 묘지의 홍매화 오픈 행사에 이어 두 번째 행사다.
추모명비가 뒤쪽으로 보인다
며칠 전부터 손님맞이를 위해 현장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 그간 포토라인을 설치해 방문객들의 접근 가능한 지역을 꼼꼼히 살피고, 안전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이번엔 포토라인을 재조정했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유엔 추모명비'(한국전 유엔군 전사자 4.1만 명의 이름이 새겨진 곳)를 뒷배경으로 두고 서있는 곁벚꽃 나무 군락은 너무도 예쁘지만, 더 이쁘게 나오려고 난간에 앉는 것은 물론, 아찔하게도 난간 위에 서서 사진을 찍는 연인들이 많아 위험하다고 이곳서 오래 일한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또 내가 며칠 전 지나가다 보니 몰래 난간에 서서 사진을 찍는 분들을 실제로 보았다. 1.5미터는 족히 되는 아래로 떨어지면 큰 사고가 날지도 싶다.
그래도 뭔가 아쉬워 근처 곁벚꽃 나무 군락을 몇 차례 둘러보고 고민하다가 그곳도 낙차가 있지만 포토라인에 '추락주의' 푯말을 붙이고, 직원들이 현장에 교대로 안전 지킴이를 하는 조건으로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곁벚꽃 군락을 오픈하기로 하고, 막 준비 중이었다. 포토라인을 설치하는 직원들의 분주함과 수고가 보인다. 그때 엄마아빠 손을 잡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꼬맹이에게 특혜를 주었다. 그의 환한 미소가 보인다. 오픈 첫 손님맞이다.
올해 처음 오픈한 곁벚꽃
해외에서 오래 일하다가 국내에 들어오면 우리가 너무 안전 불감증에 젖어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큰 사고가 나도 그 순간만 넘기면 언제 그런 일이 있느냐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안전 불감증이 도진다. 나는 서울 오면 비상구가 없는 동승동 지하 연극 극장에 가지 않는다. 또 사람 많은 곳에는 왠만하면 얼씬대지 않는다. 물론 이태원도 안 간다.
내가 유엔 묘지에 와서 제일 먼저 한 게 안전 펜스 설치이고, 얼마 전엔 보기가 싫지만 작은 균열이 난 추모명비의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일부 지역에 임시로 출입금지 간판을 세웠다.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최우선으로 수리하려고 한다.
누가 보면 안전에 오버한다고 하지만 안전할 수 있는데 예방 조치를 하지 못해 인명 피해가 나면 보험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죽은 사람을 관리하는 곳에서 산사람이 다치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일까 싶은 생각이다.
이번 곁벚꽃을 구경하러 오는 손님맞이를 하며 인니에서 일할 때 무슬림들이 동트고 나서 해 질 녘 까지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금식하는 한 달간의 '라마단(Ramadan)'을 지내고, 다 같이 축제를 하는 '이둘 피트리(Idul Fitri)' 기간 중 대통령을 비롯해 고관대작이 오픈 하우스를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음식을 나누며 손님 맞이 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물론 그땐 난 손님이었고, 지금은 입장이 달라져 손님맞이를 하고, 곁벚꽃 오픈 행사의 주메뉴가 이둘 피트리의 음식이 아니고, 그 대신 그간 놓여있던 '잔디 진입금지' 푯말을 치우고 잔디밭에 있는 화사한 연분홍의 곁벚꽃이지만, 마음만은 무슬림들의 오픈 하우스 때 손님맞이와 다를 게 없을지 싶다.
앞으로 2주간 곁벚꽃 오픈 기간에 참배객들이 봄맞이 화사한 겹벚꽃을 행복하게 구경하고 가길 바란다.
또 다른 바람이 있다면 참배객들이 유엔 묘지(2001년부터 과거 유엔묘지에서 재한유엔기념공원으로 명칭 변경)가 한국전 참전 유엔군 전사자 2300분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한 분들이 잠든 '추모의 공간'이자, 한국전쟁을 잊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교육의 공간'이라는 점을 기억해 묘지도 한번 둘러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 계기로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결성된 유엔사령부(전쟁 후 평택 미군 부대에 본부, 18개 유엔사 소속 국가들이 주로 정전 업무를 맡고 있지만, 한반도 유사시 병력 제공국으로서 본국과 연락 창구)가 1951년 전쟁 중 조성해 1959년 유엔산하기관인 유엔한국부흥단(UNCURK, 언커크, 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한국전쟁 이후 경제 재건과 평화 회복 목적)가 출범할 때 관리 책임을 넘길 때까지 8년간 유엔묘지를 책임 맡고 있었다. 지금도 참전용사 안장식이 있으면, 유엔사 대표가 참석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유엔묘지는 1974년 언커크가 해체되고, 1974년부터 미국, 영국, 호주, 튀르키예, 화란 등 11개 안장국 한국 주재 대사들이 관리위원회(일종의 대기업 이사회)를 구성해 중요 사안을 결정하고 있으며, 유엔사령부처럼 유엔으로부터 정식 명칭만 받고 별도 통제 없이 독자 운영(유엔묘지는 더 이상 유엔기구가 아니라 한국 내 설치된 최초 국제기구 지위)되고 있다.
하지만 유엔묘지의 첫 인연이 유엔사령부이기 때문에, 또 그들의 유엔군이 잠든 곳이기 때문에, 안장국 입장에선 자기 영웅들이 묻혀있는 곳이기에, 유엔묘지는 그냥 묘지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유엔묘지는 만약 한반도 유사시 그네들의 조상묘를 잘 지켜 주고 성심껏 관리하는 대한민국을 도와줄 연결 고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하다.
여기 안장된 젊은 영혼들도 '진분홍빛의 몽글몽글한 꽃송이'가 특징인 곁벚꽃이 피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고, 곁벚꽃 구경온 젊은 우리 세대가 자신들이 잠든 묘지를 지나며 묘비를 보다가 '어, 이분은 우리보다 어린 나이에 돌아갔네' 여기에 기특하게 한마디 더 보태며 '이 분들이 없었다면, 우린 지금 꽃구경을 못하겠지'라는 말을 들을 때, 내심 이역만리 떨어진 이름도 모르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자신들의 희생을 뿌듯하게 여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