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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다

'죽음은 없다'

by 동남아 사랑꾼


검붉은 빨간색 꽃, 흰색 꽃, 그 사이에 덜 빨간색 꽃, 주황색 꽃, 핑크색 꽃, 노란색 꽃, 같은 꽃에도 색조를 달리하는 꽃들, 5월의 여왕 장미다.



꽃송이가 얼마나 큰지 주먹 2개 정도고, 자세히 보니 꽃잎(petal)도 10~11겹 층층으로 빼곡하다.


오월 바람에 살랑이며 못 견딘 꽃잎은 휘날리며 주위에 흩어진다.


외국인 참배객들의 사진 촬영 모습


등짝이 따끈해지는 햇빛을 받은 장미 초록잎들이 '마치 니스 칠을 한 듯'(헤르만 헷세의 "정원에서 여름목련나무와 난쟁이 분재" 중 인용) 보내는 시간 중 반짝린다.


지나가는 참배객들이 한결같이 감탄한다. "어찌 이런 형형 색깔이 나와"라며 탄성을 자아낸다. 이 글을 공원 의자에 앉아 찍고 있는데 "이쁘다, 아주 이쁘다" 하는 소리가 들려 장미가 이쁘긴 한 모양이다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동네 외국인 엄마와 아이가 있다. 그 아가를 보고 하는 말이다. 장미보다 아가가 이쁜 건 맞다.


장미덩굴이 길게는 몇십 년이 되었다. 실제 밑둥이를 보니 오래된 티가 난다.


장미 덩쿨 뿌리가 연식이 오래된 듯 굵다(85년 입사한 직원이 자신도 정확한 시기는 모르나 85년에 장미가 심어져 있었으므로 최소 40년 이상되었고, 유엔위령탑 근처 장미는 90년 식재했다고 한다.)


공원에는 5월 장미가 피고 10월 말 유엔데이와 11.11 턴투워드부산(Turn Toward Busan, 11.11 11시 전 세계가 부산을 향해 1년간 묵념) 행사에 또 한 번 핀다. 두 번째 개화를 위해 45일 전 가지치기를 한다.


향기가 바람을 타고 참배객의 마음까지 닿는다. 물론 여기 잠들어 있는 용사들에게도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잠기고 있는데 해외에서 오랜 생활 후 인생 2막을 문화해설사로 보내는 나이가 있으신 분이 다가와 자기는 매일 출근하면 공원 한 바퀴 도는 게 행복이라고 한다. 공감이 간다. 그러면서 얼마 전 박목월 시인 동우회팀들이 참배 와서 유엔기념공원(구 유엔묘지)에 대해 어느 시인이 지은 시를 소개했다고 하면서 나에게 보여준다. 그 시는 이렇다.


"유엔묘지에 잠들어있는 용사들은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살아있는 나는 나의 죽음을 모른다.


고로 죽음은 없다."


장미 때문인지, 연중 아름답게 피는 꽃들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로 죽음은 없다'는 결론은 동의 할 수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을 뿐, 죽은 것이다.


오월 바람이 점점 강해진다. 장미꽃잎이 일찍 질까 걱정이다.


바람아, 멈추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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