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일본+중국 혼합 문화
아시아나가 대한항공에 합병돼 마일리지가 소멸된다 하여 아까워 지난주 집사람과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대만을 다녀왔다.
생필품 물가가 동남아보단 비싸지만 일본과 한국의 반 정도이고, 한국에서 갈 때 2시간 반, 올 때는 바람 때문에 2시간이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훌쩍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안성맞춤이다.
짧은 기간이고 첫 방문이지만 대만이 '동남아에 있는 미니 일본'이고 여기에 중국색이 혼합된 문화의 나라라는 느낌이었다.
동남아 요소는 더운 기후, 파인애플. 포멜로, 패션 프롯, 바나나 등 열대과일, 동남아 화교의 숍하우스인데 현대판으로 1층 가게, 2층이상 고층도 가게이지만, 햇빛과 소낙비를 피하는 회랑 조성은 동남아 화교의 숍 하우스와 같은 컨셉이다.오토바이도 많다.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가 연상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만 작장인들의 임금이 낮아 대중 교통비 부담도 동남아 국민들의 처지와 비슷할지 싶다.
일본의 50년간 식민지(1895~1945)였음에도 곳곳이 일본 영향력이 남아 있고, 대만 국민들의 친일 감정이 놀라울 정도였다. 공항 입국 시부터 일본인, 미국인, 싱가폴인은 특별 통로가 있을 정도다. 그 이유로 당시 청나라가 대만을 방기한 반면, 일본은 대만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고 36년의 한국 지배나 3년 반의 동남아 지배만큼 가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만 지하철은 일본처럼 깊지 않았고 건물도 지진에 대비해 견고하게 지어진 것처럼 보였다. 반면 귀국해 공항에서 직행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하차해 올라올 때 지하 7층의 깊은 땅굴에서 올라와야 했다. 지진이 없다고 하지만 서울은 소위 '과잉도시'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장개석이 1949년 모택동과의 싸움에서 져 대만(과거 이름은 Formosa)으로 쫓겨올 때 보물이란 보물은 다 가져와 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중국본토는 자금성 등 껍데기만 안고 진품은 대만에 있어 중국 문화를 알려면 대만 방문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장개석 기념관의 실물 집무실과 활동 사진, 유물을 보며 장개석의 미완의 꿈을 느꼈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왔을 때 모택동 등 공산당 지도부가 자금성에 집결한 당시, 대만 공군참모총장이 공습을 제안했으나 중국의 자랑인 자금성이 폭파되고 폭파는 비겁하다며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장개석이 비행기를 다 가져와 본토에 비행기가 없어 나름 매우 현실적 제안이었으나 그는 보다 본질적이며 인간 내심 한편에 있는 정의에 기대어 현실적 옵션을 거절했다. 이를 통해 그의 리더다운 자질을 보았으나, 그가 공습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하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최근 대만인과 만나 이 비화를 소개하며 진위 여부를 문의했는데 그는 대만의 전투기가 그당시 공중급유가 없는 상황에서 본토 공습이 기술적으로 어려웠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런 장개석이 75년 병사까지 28년간 5번 총통 연임 독재하고, 부패가 만연했고, 자식들에게 총통세습까지 했는데 그건 왜 그랬을까 모르겠다. 역시 냉전하 중국 공산주의자 대결 상황에소 일반 국민들은 독재가 공산주의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동서고금을 통해 권력 앞에 속절없는 인간 본성인가 싶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옛날 직장 동료 부부랑 늦게까지 저녁하고 산책하며 정다운 시간을 보냈다. 6년 전 내가 추천한 대머리약을 먹고 머리가 청년처럼 나서 청년이 된 그를 보며 나의 오지랖에 뿌듯함을 느끼는 시간도 되었다. 집사람이 버스를 타고 야외 자연풍경을 보러 가는 사이에 한국에 있던 외국인 지인과도 오찬을 하며 트럼프발 관세 전쟁과 대만 및 동남아에 관해 솔직하고 유익한 대화를 나눈 것도 나름 좋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집사람의 야유를 받기에는 호재였다.
돌아오는 비행기 창문 밖으로 미중 지정학적 경쟁의 동아시아 3대 안보 이슈인 대만해협, 남중국해, 한반도가 보인다. 대만해협 위기가 발생하면 싫든 좋든 주한 미군이 연루되고 우리도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으며, 이 틈을 이용해 40~50여 개 핵탄두의 비대칭적 무기로 우리의 평화와 자유를 위협하는 북한발 안보 위협이 실존적 위기로 다가왔다.
6.3 이후 출범할 차기 정부가 이러한 복합외교 도전을 잘 다룰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글을 읽고 후배 지인이 보내온 컴멘트다.
"2차 세계 대전 때 이태리에 상륙한 미군은 1500년된 베네딕토 수도원에 숨어든 나치군과 치열하게 장기 대치하다 결국 항공 폭격으로 수도원 날렸었는데요. 그 수도원 다시 지었습니다.
장개석은 자국 문화재 자금성에 큰 애착가졌던 듯 하지만 그때 다른 선택했다면 정말 역사가 바뀔 뻔 했네요.
절대절명 순간 냉철하게 독하게 선택할 줄 아는게 지도자 능력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