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1주기를 기억하며
영동군 황간 월류봉이 운무에 쌓인 아침이다.
저 멀리 안개에 쌓인 월류봉의 아침 모습
내가 신선이 살법한 곳이라며 2,000평의 집에 잔디를 깎고 있는 50년 초딩 친구에게 웅웅 되는 제초기 너머로 말을 건네니 3년 지나면 이런 집도 아무런 감흥이 없고, 뽑아도 뽑아도 올라오는 풀이 고역이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나도 알지 싶다. 해외에서 있을 때 직장에서 제공해 준 잔디와 각가지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는 집에 산적이 있다. 그때 일하는 분들이 매일 아침저녁 풀을 뽑는 모습을 보고, 나도 좀 따라 해 보았더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이 친구는 시골서 함께 자라 객지에 나와 자동차 머플러를 생산하는 대기업 1차 하청업체의 대표로서 자수성가한 어엿한 기업인이 되었다.
2017년 산 좋고 공기 좋은 원류봉이 올려 보이고 그 아래 물 맑은 초강천이 굽어 흐르는 명당에 큰집 짓고 산다. 마누라와 아이는 그래도 시골집일 뿐이라고 여겼는지 김천 아파트에서 별도로 살며 가끔씩 온다고 한다.
멋진 소나무, 영산홍, 목련, 라일락, 개나리, 복숭아 봄 꽃이란 봄 꽃은 여기저기 다 있다.
꽃잔디
해당화
소나무
노송
압권은 분홍색, 흰색의 꽃잔디다. 꽃잔디가 5년 전에 담근 된장 장독대 사이로 자연 번식돼 그 향긋한 향기가 된장 장독으로 스며들어 된장 맛의 된장 이상의 풍미를 더해준다며 그 친구가 이야기한다. 그게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순 없으나 작년 연말 그가 부산 집에 놀러 왔을 때 가져온 된장 맛이 그가 해외에 있던 나에게로 보내준 된장과는 다른 맛이었음을 이제 여기에 와 보니 알겠다. 꽃잔디 향기가 스며든 된장이다.
꽃잔디 된장
여기 좋은 풍경을 보니 1년 전 이 세상을 먼저 간 친구 얼굴이 저 운무에 쌓인 원류봉 어디에서 어른 거린다. 그와 나는 5년 전 여기에 같이 왔었고, 그가 얼마 살지 못 산다는 진단을 받은 2년 전엔 그가 집사람과 함께 2주간 여기서 요양을 했다고 한다. 나는"네가 사는 그 세상도 지금이 봄이냐, 잘 지내냐 "며 그의 1주기를 기억한다.
이 글을 찍고 있는데 친구가 잔디 깎기를 마치고 아침 담배를 물고 온다. 옆집 닭은 아침부터 왜 저리 닭이 '꼬기옥, 꼬끼옥'하며 소리 지르냐고 물으니 함께 여기에 온 딴 초딩 친구가 밤새 저렇게 울부졌다고 한다.
내가 시골에 살 땐 아침 닭이 '꼬기옥, 꼬끼옥'하고 연거푸 울면 계란을 놓았으니 가져가라는 신호였다. 따끈따끈한 계란을 톡 깨면 진노란 계란을 입에 틀어 넣으면 목구멍 아래로 스르륵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그땐 내 누나가 노래를 꾀꼬리같이 잘 불러 장래 꿈이 가수였다. 그래서 나 대신 계란 가지러 갔다가 몰래 하나 먹으면 할머니가 계집애가 아침부터 무슨 계란이냐며 핀잔을 주었다. 남녀 차별의 극치다. 그땐 그랬다.
할머니가 그때 구박만 안 했어도 어쩜 가수가 되었을 그녀는, 지금 60대 중반을 넘었지만 아직도 꿈을 못 접고 트롯을 구성지게 노래하는 유튜브를 내게 가끔 보낸다.
이렇게 꼬끼옥에 대한 시답잖은 상상을 하고 있는데 올갱이(다슬기) 해장국 아침 먹으러 가자고 해 조강천을 따라 난 월류봉 둘레길을 걸어 올갱이국 집에 갔다. 입구엔 전국 3대 올갱이집이라는 큼직한 간판이 보인다. 이리 요란하면 실상은 텅 빈 강정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먹어 보니 조미료 없는 천연재료 맛이었고, 경상도 김치는 짜고 매운데 슴슴한 세로로 길 쪽 하게 담은 무김치와 간장에 절인 마늘이 상큼했다.
올갱이국을 먹고 공짜 믹스 커피를 한잔씩 들고 산들이 보이는 베란다에서 마시며 이별 준비를 했다.
떠나기 전 친구 집 앞에 있는 송시열 선생이 정파 싸움에 밀려 한때 낙향해 후학을 가르치던 '한천정사' 학당을 가보았다.
이곳이 그가 머물러 곳인지 후학만 가르친 곳인지, 그 어디에도 확실히 나오자 않았지만, 두 개 방 사이에 툇마루가 있고 자그마한 앞마당이 있는 소담한 기와집이다. 방은 성인이 눕고 안전뱅이 책상만 놓으면 꽉 찰 정도의 크기였지만 창문을 여니 원류봉과 초강천이 내려다 보였다.
조선시대 당파 서론의 영수이자 대학자로서 그 시대를 풍마한 세도가였으나 그도 잠시지만 낙향해선 이런 곳에서 지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사는 게 별 것 아니다고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의미는 알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그 집을 나왔다.
우암 송시열의 한정정사
월류봉은 한천팔경의 하나로 '달이 머무는 봉우리'라는 의미라고 한다.
보름달이 월류봉에 걸린 어느 밤에 여기에 왔을 때 나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원류봉(400.1m)에 달이 떡 걸려있었다.
내 친구의 집터가 조선 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심묘지'가 있던 절터였다고 한다. 근처 유명한 절 '반야서'를 지을 때 스님들이 이 근처에서 지성을 들일 정도로 영험한 곳이라고 한다.
이른 아침 운무에 휩싸인 월류봉을 보니 왜 원류봉이 한천필경 중 하나고 심묘사 절터였는 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 친구에게 집 이름이 있냐고 물었는데 없다고 내 나름 집 이름을 작명해 보았다. '월류제', 내 친구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송시열도 낙향해 후학을 가르치며 이 자연의 아름다음에 취해 세상만사를 잊었을지 싶었다.
내친구가 '3년이 지나면(신선이나 살법한 이곳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고 했는데 그친구에게 내가 곁에 두고 즐겨 읽는 로랑스 드빌레르의 '모든 삶은 흐른다' 에서 바다를 주제로 삶과 철학에 관한 스물네 가지 교훈 중 '바다 소금-가진 것을 새롭게 음미하는 법'의 일부를 소개하려고 한다.
"바다는 아주 짜고,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짠 맛을 못 느끼게 된다. 그 맛을 음미하는 능력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늘 향수를 뿌리고 다니면 더 이상 향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무리 행복해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익숙해진다.
그래서 한때 매력을 느낀 것도 익숙해지면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는다.
(중략) 익숙한 것은 더 이상 탐구하고 새롭게 감상할 수 없게 된다. 무뎌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은 일단 어느 정도 채워지면 순서대로 수그러진다. 그리고 그 대상을 더 이상 욕망하게 되지 않는다. 이미 손에 넣었기에 욕망하지 않는 것이다. (중략) 이미 익숙한 일이라 더 이상 흥분되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권태기가 왔다고 한다.
이외에 우리는 또 다른 안타까운 심리가 있다. 이미 가진 것은 더 이상 원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 것이다. 사물 본연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사 더 이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뿐이다.
(바다의) 짠맛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면 익숙한 것도 새롭게 보이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모든 것에 쾌락을 느끼라는 게 아니다. 하나를 정해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음미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 구절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울림을 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