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아들의 불의의 사고를 접하며
"각자의 인생은 다름 아닌 희극과 비극의 교차입니다." '완전한 인간'(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중 '시간을 분배할 줄 아는 사람'에 나오는 말입니다.
대우주 자연도 늘 변화하며 그 속에서 우린 따뜻하고 덥고 시원하고 춥고, 파도가 끊임없이 오고 가고, 주위의 꽃이 피고 지는 우주의 주기적 교차 변화가 수억 급 동안 반복되어 왔습니다.
소우주의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 탄생의 신비와 기쁨, 그리고 미운 7살과 반항기 10대와 방황하는 청춘기 20대 그리고 몇십 년간의 영혼을 파는 직장기를 우린 모두 겪으며, 인생은 희극도 비극도 아닌 양 극단을 오가는 것을 미처 모르고, 행복할 땐 모르다가 불행이 닥쳐오만 자기에게만 오는 양 절망하곤 합니다. 사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누구에게나 행복과 불행은 다 같이 찾아오지만 이를 대하는 삶의 자세에 따라 우린 한걸음 앞으로 또는 나락으로 추락하곤 합니다.
얼마 전 오랜 직장 동료는 아들이 미국 출장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자식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안 되겠지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는 어제 미국 현지에서 장례를 치르고 팩북에 부모로서 상실감에 복받치는 글을 올리면서 머지않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부분에선 그의 절절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은 늘 우리 주위에서 함께 있지만 우린 죽음에 익숙해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애써 외면하며 지금의 삶이 계속되고, 죽음이란 나를 피해나가는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나 또한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유엔군들이 묻힌 유엔기념공원에서 삶과 죽음을 남들보다 더 많이 느끼며 살고 지낸다고 하지만, 저에게 죽음은 지금의 내 삶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양 느끼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우리 인생이 행복과 불행, 희극과 비극의 교차하며 우리에게 오고 간다고 추상적이고 사변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가슴 한가운데에선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습니다.
젊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자식을 먼저 보낸 지인의 상실감과 아픔을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