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로 내려갈 결심을 하니 고양시에서 지내는 남은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해진다. 물론 아예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고양시에서 살았던 20년 넘는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동안 만나 인연을 맺었던 수많은 분들에게 일일이 고마움을 전하는 시간을 마련하지 못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 마주 대한다.
하루에 한 번은 들러 커피를 마시며 독서를 했던 한양문고 앞 골목에도 인사를 한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동네분들이 거리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정담을 나누고, 골목길 한켠에서 채소를 다듬어 파는 노점에도 손님들이 많다. 동네 할머니 중 몇 분은 아예 자리를 차지하고 같이 앉아 채소를 함께 다듬는다. 품삯을 버는 것도 아닌데 채소를 다듬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걱정한다. 부디 건강하시고 평안하시라.
아침에 집에서 들고 나온 감 중 몇 알씩 한양문고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풍성하지는 않지만 익어가는 가을 맛을 보라고. 서로의 것을 소박하게 나누는 전통이 아직 고양에는 남아있다. 이익이 되지 않는 일들도 기꺼이 도우려는 손길이 많아 그동안 고양에서 따뜻하게 보냈다. 나도 손을 뻗어 이익도 되지 않는 일들을 수없이 해왔다. 부디 이 환대의 관계가 앞으로도 지속되길 기원한다.
오늘 하루 몫을 읽고 쓰는 생활은 앞으로도 지속되겠지만 그 장소가 고양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아쉬운 상념에 잠긴다. 처지에 따라 경험과 생각은 변하겠지만 소중한 기억은 쉬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 가파도에 가서도 고양에서 맺었던 인연과 경험은 추억이 되어 나의 밤의 온기가 되리라. 햇볕 따뜻하고 바람 시원한 오늘 하루를 충분히 몸 안에 새기며 살아보자. 남은 생애의 하루를 덜어 지내는 오늘을 충만히 보내야지. 낡은 마음을 잘 갈무리하고 새 마음을 잘 키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