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주의보로 가파도에서 배가 뜨지 않는다. 고로 나는 쉰다. 12월 1일에 매표소 일을 시작하자마자 쉬더니, 31일 한 달을 마감하는 날도 쉰다. 쉼에서 시작하여 쉼으로 끝나는 한 달이 싫지마는 않다. 쉼이야말로 삶의 핵심이니까.
처음 한 달을 정착기로 정하고, 일에 익숙해지고, 살림살이에 익숙해지고, 주민들과 친해지고, 고양이들과 잘 지내는 달로 삼았다. 무사히 무난히 잘 지낸 것 같다.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하기는 하지만 혹여나 외롭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매표소에서 마주하는 주민들과도 친숙해지고, 매표소 뒤 자전거 대여하시는 분들하고도 커피 한 잔 쉽게 얻어먹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원래 친하게 지냈던 매표소 전 직원과도 가끔 식사를 함께 한다. 정착하면서 느영나영 가게 형님부부가 많이 도와줬고, 집을 얻도록 힘을 써줬다. 나에게 집을 소개한 일찌누나와도 친해져서 가끔 느영나영 가게에 모여 함께 술도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가파초 학부모이자 색공방 직원인 가람이 엄마와도 친해졌다. 함께 모여 회를 나누고, 찌개를 나누고, 온갖 음식을 바리바리 싸와 나눠먹는다. 물론 나도 한몫한다. 냉장고 음식을 털어 재료로 제공한다.
얼마 전 쉬는 날에는 장에 들러 함께 나눌 프라이드치킨을 듬뿍 사서 들고 와 나눴다. 전문 치킨점은 저녁장사라 늦게 문을 여는 탓에 시장 닭 파는 곳에서 튀겼는데, 식기 전에 따뜻하게 가져와서 그런지 맛이 괜찮았다.
한 달의 생활을 정산해 보니 반은 일하고 반은 날씨 탓(?)에 쉰 것 같다. 일하러 왔는데 쉬는 날이 많아 조금은 걱정했지만, 그 또한 내가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이 아니라서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이 올해 마지막 날이다. 결항이라 가파도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인터넷으로 동녘교회 예배를 참석하고,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저녁에 먹을 카레를 만든다.
카레가 끓고 있는 사이 고양이들 밥을 챙기러 마당에 나왔더니 대여섯 마리 고양이들이 기웃대고 있다. 내가 나왔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있는 걸 보니 이제야 내가 밥을 챙겨주는 인간동물인 줄 알았나 보다. 어떤 놈은 내 근처로 다가와 의자 밑에 앉아 있고, 또 어떤 놈은 내 앞에서 몸을 뒤집으며 배를 깐다. 내가 위험한 동물이 아님을 안 것이다. 조만간에 아예 몸에 붙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진다.
바람이 거세게 불지만 햇볕은 따뜻한 오후, 한 해가 이렇게 간다. 아직은 날씨가 쌀쌀하다. 들어가 하루키가 쓴 고양이 소설과 에세이나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