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88쪽)
나에게는 월남전쟁에 참가한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랑 줄곧(?) 살았는데 아버지는 월남전쟁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해주지 않았다. 전쟁 후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셨고, 중동 특수시절에는 사우디 아라비아나 리비아 등지를 돌며 해외에서 일하셨다. 그러다가 열사병에 걸리셔서 귀국하셨다. 병원에서는 심장판막증이라고 진단했다. 치료 중 연탄가스를 마시고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무라카미 하루가 아버지에 대한 소설을 썼다. 제목은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이다. 하루키의 소설은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으로 간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렇게 버린 고양이는 집에 돌아와 보니 부자보다 먼저 집에 돌아와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어리둥절했던 얼굴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리둥절해하던 얼굴은 이내 감탄스럽다는 표정으로 변했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소 안도한 듯한 얼굴로 변했다. 그리고 결국 그 고양이를 계속 키우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집으로 돌아왔으니 키우지 않을 수 없겠지, 하는 체념의 심경으로."(15~16쪽)
이 추억에서 시작해 하루키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입대를 3번이나 하면서 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지 않았다면 하루키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기적과 같은 생환의 이면을 뒤지며 하루키는 아버지의 삶을 더듬는다. 아침마다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눈을 감고 열심히 경을 외시는 아버지. 어릴 적 다른 집에 입양되었다가 돌아왔던 아버지.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결혼 이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공부를 멈춘 아버지. 중이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중이 될 뻔했던 아버지. 어린 하루키와 영화도 보고 야구도 했던 아버지. 그러다 결국 자식과 사이가 소원해진 아버지. 여러 모습의 아버지가 하루키의 추억과 조사 속에서 되살아난다. 나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있던가? 곰곰 생각해 보는 하루다.
이 책은 고양이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을 읽어보려고 선택하였지만, 결국 아버지에 대한 추억으로 생각의 머리를 돌리게 되었다. 여기에는 소개하지 않은 다른 고양이 이야기는 찾아서 읽어보기 바란다. 엄청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이야기다. 100쪽도 안 되는 소설이니까 찾기만 하면 금세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 있는 타이완 출신 신예 아티스트 가오 옌이 그린 13컷의 삽화도 따뜻하다. 한 컷만 소개한다.
그러면 하루키는 아버지를 추억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루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을 만난다. 아울러 인용해 둔다.
"내가 이 개인적인 글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은 딱 한 가지뿐이다. 딱 한 가지 당연한 사실이다.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은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면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 해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가기 때문에 더욱이." (9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