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하며 나는 한 생명을 책임지고 키워 내면서 겪는 고난들을 고스란히 겪어 내야 했다. 고양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도 참을 줄 알아야 했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생겼다. 화가 날 일 또한 생겨나긴 마찬가지였다. 내 밥은 챙겨 먹지 않아도 고양이 밥은 꼬박꼬박 확인하며 줘야 했고 건강도 신경 써야 했다. 혼자라면 신경 쓰지 않아야 할 것들이 고양이 하나로 넘쳐났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였다.
하지만 나는 삶을 배웠다. 아프고 슬플 때 아무 말 없이 그저 곁에 존재하기만 하는 고양이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될 때 내 곁에서 숨 쉬는 고양이를 보자 내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내 숨소리와 고양이의 숨소리가 번갈아 들려왔다. 숨소리와 함께 마음이 오가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존재한다. 살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로서 존재도, 아파도 괜찮다. 고양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위로받듯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고양이는 내게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 주었다. (178~179쪽)
이수연 작가와는 사적 인연이 있어, 그의 책을 읽으면 객관화가 힘들어진다. 우선 이 책의 원고만 해도 같이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서로 돌아가며 읽었던 것들이다. 책을 만드는 데에도 여러 차례 관여했다. 그럼에도 이수연 작가의 글을 읽으면 참 놀랍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자신도 힘들게 살아가는 처지에 고양이들을 돌보는 것도 놀랍고, 우울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주변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도 놀랍고, 정신없이 바쁠 것 같은데도 끊임없이 원고를 쓰고 있는 것도 놀랍다. 이수연 작가는 나에게 경이다.
띠지에 가려 안 보이지만, 공중전화 밑으로도 4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가파도에 있는데 이수연 작가에게서 신작소설이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마지막 마음이 들리는 공중전화》라는 장편소설인데, 이미 종이책으로 나오기 전부터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이번에 종이책이 나왔다며 보내주겠다고 해서, 《고양이 처방전》도 함께 보내달라고 했다. 신작장편소설의 표지도 고양이들이 잔뜩 있다. 이러나저러나 이수연 작가와 고양이는 천생연분인 것 같다.
이미 어려 차례 읽은 에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고양이 처방전》을 읽는데, 읽을수록 새롭고 신선하다. 글이 리듬을 타고 있다. 아, 그래서 우울한 정조가 가려지고 경쾌한 느낌이 들었던 것일까? 문장의 길이도 다양하여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쓰면서 자신의 상태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문장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필자와 호흡을 같이 하게 된다.
나는 가파도에서 길냥이(마당냥이)를 돌보고 있어서, 집냥이를 기르는 사람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은 집안으로까지 고양이를 들이려는 마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 내 살림살이도 엉망인데, 고양이까지 들이면 더 엉망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집냥이와 교감을 나누고 서로를 돌보는 아름다운 글들을 보면, 언젠가는 나도 고양이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때가 되면 본격적인 집사가 되겠지. 아직은 오지 않은 날이지만, 그런 날이 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이수연 작가가 키우는 슈어와 니브. 집냥이라 그런지 고급지게 생겼다.^^
<추신>
이수연 작가, 신작 소설 내느라 수고하셨소. 곧 읽고 독후감이라도 써야지. 그리고 만약에 가파도로 작가가 놀러 온다면 아마도 하루쯤은 이 소설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