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2024. 1. 25

by 김경윤

추냥이가 엄마에게 배우는 것들


엄마는 늘 내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란다.

자동차보다, 길거리 개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란다.

사람이 우리에게 관대할 거라는 생각은 버려라.

그들이 선심을 베풀 땐 다 이유가 있지.

그들은 우리가 한밤중에 우는 것도 재수 없어하고,

집 앞에 쓰레기봉투가 뜯겨 있으면 가장 먼저 우리를 의심한단다.

그러니 사람에게 매달리는 건 도로로 뛰어드는 것보다 위험한 거야.

어차피 삶이란 단독자로 살아가는 거다.

너도 곧 독립을 하게 될 테고.

그러면 이제 너만의 영역을 구축해야 해.

영토가 아니라 영역이란 걸 명심해.

영토의 개념은 부동산 투기에 눈먼 인간들의 개념이니까.

우리는 토지에 대한 소유권 따위는 주장하지 않아.

그건 아무래도 좋고,

다만 중요한 건 생존이야. 살아남는 것.

삶이 어쩌고저쩌고하는 정의는 죽을 때쯤 생각해도 충분해."

하긴 나로서는 아직 엄마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다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말만은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단독자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을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엄마만큼 나이가 들어야겠지요.

그래도 가끔은 형제 무리를 벗어나 먼 곳에 다녀오기도 합니다.

한곳에 머물러 산다는 건 참 따분한 일이니까요.

물론 아직은 너무 멀리 가는 건 위험합니다.

거긴 내 영역이 아니니까요.

지금은 겨울이고, 겨울은 춥고 깁니다.

결정적으로 겨울은 배고픈 계절입니다.

나 같은 길고양이에겐 더더욱

눈보라치고, 칼바람이 불면 컨테이너 아래로 몸을 피했다가

짧은 햇살이라도 비치면 겨우 밖으로 나옵니다.

하필이면 혹독한 겨울에 태어나 이토록 추운 세상을 건너갑니다. (83쪽)


고양이를 다룬 책 중에서는 고양이 일반이나 집고양이를 다룬 책은 많아도, 길고양이를 다룬 책은 별로 없다. 송악도서관에서 빌린 책 중 이용한 작가가 쓴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는 동네 길고양이들을 1년 반 동안 관찰하고 기록했다는 점에서 아주 소중하다. 작가의 이력을 찾아보니 세 권의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자, 10년을 여행작가로 활동했고, 17년을 고양이 작가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와우, 17년이나 고양이 작가로 살았으니 참으로 놀라운 경력이다. 내가 대출한 책은 그가 처음으로 쓴 고양이 책이다. 이후로도 《명랑하라 고양이》와 《나쁜 고양이는 없다》 시리즈를 차례로 출간했으며,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 《어쩌지, 고양이라서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 《인생은 짧고 고양이는 귀엽지》 등 고양이와 관련된 책을 무지 많이 썼다 . 마음 같아서는 다 찾아서 읽고 싶지만, 한 작가에게 파고드는 집중 독서는 잠시 뒤로 미룬다.

이 책은 블로그에 <길고양이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면서 이미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책을 펼치면 동네 길고양이 영역 지도를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거기서 생활하는 20여 마리의 길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며 먹이도 주면서 연대감을 형성하고, 근접촬영과 활동촬영을 통해 현장감 넘치는 사진을 찍어 책에 입체감을 더한다. 때로는 고양이 시점으로, 때로는 작가 시점으로 길고양이들의 기쁨과 슬픔, 고통, 불편한 진실까지, 있는 그대로의 묘생(猫生)을 담았다. 말 그대로 길고양이 보고서다.

카툰 형식으로 그린 길고양이 영역 지도가 친근감을 준다

나도 가파도에서 한달살이 하면서 고양이들과 지냈던 경험을 브런치에 연재하다 브런치 북으로 발간했고, 지금도 가파도 매표소 직원으로 있으면서 가파도 길고양이들을 찍고, 소식을 전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내 글이 길고양이 스케치라면, 이용한 작가의 글은 심층 취재한 르포라 할 수 있다. 나도 이 작가처럼 가파도 고양이 식량보급소 지도를 그리고, 고양이들의 특성을 잘 관찰하여 책으로 엮으면 좋겠구나 생각한다. 가파도야말로 고양이 섬이고, 길냥이들의 생을 잘 관찰하여 길냥이 보호에 대한 관점과 정책을 마련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이에 관심 있는 작가들이나 활동가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겨울에서 시작하여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시간적 서술과, 고양이들의 다양한 특성과 생애를 잘 포착한 주제적 서술이 어우러져 길냥이 백과사전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이 책을 여러분도 애정을 가지고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앞에 인용한 글은 책의 초반부에 어린 고양이의 시점에서 쓴 글이라면, 다음에 인용하는 부분은 글의 말미에 작가의 시점을 잘 정리한 글이라 여기에 인용해 놓는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도 아니고 이 세상이 사람에게만 살아갈 권리를 부여한 것도 아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생존의 권리는 동등하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주범과 환경 파괴의 주범은 인간이고,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짓을 일삼는 것 또한 인간이다. 지구에서 가장 시끄럽고, 가장 이기적이며, 자원을 고갈시키고, 온난화를 앞당겨 지구의 생물종을 무차별 멸종시키고 있는 동물 역시 인간이다.

고양이도 인간과 똑같이 지구의 생명체로 태어나 같은 지층 연대를 살아가고 있다. 고양이는 외계의 생명도 마녀의 동물도 아닌 존재로 그저 우리 곁에 살아갈 뿐이다. 잘못이 있다면 하필 전 세계에서 길고양이가 가장 천대받는 한국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는 것. 한국이란 곳에서 길고양이는 늘 두려움과 불안, 배고픔으로 떨고 있다. 사실 길고양이의 세계를 알기 전까지 나 또한 고양이가 두려움에 떨고 있든 말든 그냥 무관심했었다. 녀석들을 적으로 여기지도, 친구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녀석들이 한국이란 곳에서, 더구나 도심이란 공간에서 얼마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며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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