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바다를 보니 안개가 끼어 있고 구름이 낮게 드리워있다. 바람은 별로 불지 않는다. 기상청 날씨 알리미 앱을 확인하니 파도도 높지 않다. 오늘은 정상적으로 배가 뜨겠구나.
2.
설날 연휴에 계속 근무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제주도 사람들이라 가까운 곳에서 명절을 쇠니, 어차피 집이 멀어 가지도 못하는 내가 근무를 서겠다고 했다. 쉬는 대신 버는 것을 택한 것이다. 어제 아내가 설을 같이 보내지 못해 아쉽다고 울먹였다. 나는 큰 아들 군대 보냈다 생각하고 지내라고 말했다. 별 탈 없이 근무 잘 서고,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돈 잘(?) 버니 얼마나 좋냐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아내의 울먹임이 멈췄다. 생각해 보니 30대 초반 잠시 구치소에 있을 때 빼고는 명절을 따로 보낸 적이 없었다. 결혼하고 두 번째 따로 지내는 명절이다.
3.
아침 일찍 매표소로 와서 불을 켜고 히터를 켰다. 매표소 안으로 우연히 들어왔다가 갇힌 작은 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다닌다. 밤새 굶었을 새를 생각해서 양쪽으로 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잠시 후 새가 밖으로 날아갔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새는 낮게 날아 멀리 갔다. 그래, 작은 날개로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거라. 그것이 새의 숙명이니.
4.
설날인데도, 관광객들이 평소보다 3배는 더 많이 온 것 같다. 제주도로 설을 쇠러 온 김에 관광온 여행객들이리라.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대합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가파도에서 설을 쇠신 어르신들도 친척을 만나러 제주도로 나가신다. 오랜만에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오전 오후로 비가 촐촐 내려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들이 많다. 비가 오면 자전거 대여를 하지 못한다. 이 분들은 어디 가서 식사를 하실까? 명절이라 문 닫은 식당들이 많다. 점심때 확인해 보니 곳곳에 명절 대목이라고 문을 연 식당들이 분주히 장사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다행이다. 관광객이든 가게주인이든.
5.
2월 들어 어제 처음으로 정상 근무를 했다. 오늘도 아마 풀로 근무할 것이다. 비가 오니 많은 분들이 관광 대신 매표소에 모여서 배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매표소가 꽉 찼다.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 봄이 되면 이보다 5배는 더 많은 관광객이 온단다. 아이고, 그때가 되면 정신이 없겠구나. 나가시는 주민들 표도 끊고, 발권받은 관광객들 출항시간도 변경해 드리고, 갑작스러운 비에 우산도 대여해 드려야 하니, 업무가 갑자기 많아져 정신이 없다. 아니 정신이 버쩍 든다.
6.
2시 20분 배가 떠났다. 이제 남은 배는 3시 20분, 4시 10분 두 차례밖에 안 남았다. 파도가 조금 높아지기는 했지만 배가 뜨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설날 이렇게 분주히 일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점심시간에 가족과 영상통화를 했다. 집으로 찾아온 친척들이랑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장모님은 밥 잘 먹으라고 건강하라고 말씀하신다. 걱정 마시라고 잘 챙겨 먹고 있다고 말했다.
7.
평소에는 표 끊어 주고 남는 시간을 독서로 보냈는데, 오늘은 글 한 줄 읽지 못했다. 괜찮다. 이런 날이 많을 것이다. 문자에 대해서도 간헐적 단식이 필요하다는 신호일까?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본다.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8.
나를 아는 분들에게 새해 건강과 안녕을 빌어본다. 내가 아는 분들의 얼굴을 떠 올리면 그들에게도 축복의 기도를 드린다. 부디 건강하시라. 한해 계획하신 일들 잘 되시라.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평안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