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 나 홀로 출근

2024. 2. 22.

by 김경윤

연이틀 풍랑주의보로 배는 뜨지 않았지만

때 늦은 아점을 먹고

나 홀로 가파도터미널로 출근을 했습니다.


사방이 막힌 좁은 집 안에만 있자니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 같아

바람도 쐴 겸 동네도 한 바퀴 돌 겸

자전거 타고 쌩하니 출근한 것입니다.


바람은 심상치 않게 불고

파도도 종잡을 수 없이 일렁이지만

샌드위치 빵과 땅콩 잼을 챙겨 배낭에 넣고

매표소에서 읽을 두툼한 책도 한 권 챙겨서.


터미널의 매력은

사방이 훤하게 보이는 통창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

하늘의 변화와 바다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아도

갈매기 날고 고양이 걷고

초목이 흔들린다는 것.


나 홀로 출근하여 커피를 따뜻하게 한 잔 만들고

가져온 책을 펼쳐봅니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데

원제를 살펴보니 《이야기하는 원숭이》입니다.

부제는 ' 신화, 거짓말, 유토피아'네요.


500쪽이 넘는 책을 쓴 저자들의 열정이 놀랍기는 합니다.

나는 지금 200쪽을 넘어가고 있는데

동서양을 넘나들고, 고대와 현대를 종횡무진하는

이야깃거리가 넘쳐 납니다.


워낙 많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난삽하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책장의 끝을 넘기는 순간에 찾아오는 성취와 깨달음의 즐거움을 아는 '책중독자'이기에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한 챕터 독서가 끝날 때마다

터미널 밖으로 나가 기지개를 켜고

담배 한 대 물고 불을 붙입니다.

머릿속 칠판에 쓰인 글자들을

음미하면서 지우는 순간입니다.


지워야 채울 수 있습니다.

읽고, 지우고, 읽고, 지우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모래에서 사금을 모으듯

반짝이는 것들만 남게 됩니다.


나 홀로 출근하여

나 홀로 독서하는 시간이

마음을 푼푼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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