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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 외박

2024. 2. 23.

by 김경윤

매주 금요일은 나의 휴일이다. 금요일 오전에 줌수업이 잡혀있어서 매표소에 취직하면서 금요일날 고정적으로 쉬기로 했다. 오전 수업을 마치면 12시 즈음이 된다. (무릇 모든 수업은 끝나는 시간이 왔다리갔다리 한다. 대략 루스타임은 15분 안팎이다.)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간단히 먹고 가파도에서 1시 20분 배를 타고 모슬포로 나간다. 오후 시간에 도서관 가고, 장 보고, 기타 외부에서 해야 할 일을 마치고 4시 막배로 들어와야 하니 시간이 빠듯하다. 쉬는 날이 오히려 더 바쁘다. 그런데 오늘은 기상악화로 막배가 3시에 끝난단다. 나가자마자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다. 중대결심(?)을 한다. 오늘은 외박이닷!


다음날 첫배로 들어가기로 하고, 느긋하게 일정을 잡는다. 내일 아침 9시까지 스무 시간 남짓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푸근해진다. 그래, 밖에서 하룻밤 자는 거다. 그럼 뭐부터 할까?


하나, 머리를 깎기로 한다. 지저분하게 자란 머리를 상큼하게, 깨끗하게, 짧게 자르자. 머리 감기도 편하고 봄맞이 단장이라고 생각하고 거금 1만 2천 원을 들여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다. 나이가 4~5살은 젊어 보인다.^^

둘, 다이소에 들러 고양이 캔을 듬뿍 사자. 마당에 들락거리는 고양이들이 많아졌으니 캔 하나로는 부족하다. 비록 주말에만 주는 특식이지만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까주자. 거금 1만 원을 들여 갠을 10개나 산다. 배낭이 무거워졌다.

셋. 늦기 전에 숙소를 잡자. 모슬포 호텔은 가파도 주민에게 1박에 현금 3만 원을 받는다. 비록 바닥 난방은 안 되지만 넓고 무엇보다 따뜻한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다. 그동안 충분히 하지 못했던 온수 샤워를 실컷 해보자. 방에 들어가 난방 히터의 온도를 충분히 올리고, 샤워실로 직행하여 몸이 노곤노골해질 때까지 온수를 만끽한다.(아, 가파도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호사로다. 천국이 따로 없다.)

넷. 맛있는 거 사 먹기. 점심은 내 최애메뉴 감자수제비를, 간식은 롯데리아 한우불고기버거 세트를! 평소에는 잘 사 먹지도 않았던 햄버거와 콜라가 왜 이리도 당기는지. (편의점 하나 없는 가파도 효과라고 해 두자!)

다섯, 느긋하게 독서하기. 호텔 근처 한적한 숲길 벤치를 찾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친구가 보내준 《발견의 책읽기》를 야금야금 파먹듯이 읽는다. 책을 소개해주는 책이라 교양이 두 배 쌓이는 듯하다. 책의 교양 + 책을 소개하는 저자의 교양까지. 역시 이권우는 찰지게 글을 잘 쓰는 도서평론가다.

여섯, 지인에게 연락하여 헤비하지 않게 한 잔 하기. 얼마 전 퇴사한 회사 홍보팀장에게 전화하여 7시에 한 잔 하기로 한다. 대정읍에 처음 도착했을 때 먹은 접짝뼈해장국집을 찾아가 모둠 안주를 시키고 소주를 각 2병씩 먹기로 하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의 인생역정 이야기를 펼치다, 장소를 바꿔 입가심으로 맥주 한 잔을 마시니 어느덧 신데렐라 타임이 가까워진다. (신데렐라는 12시가 지나면 거지꼴이 되지만, 술꾼들은 개가 된다. 그러니 12시를 넘기지 말고 귀가하기.) 아쉽지만 이제 안녕!

하느님도 여섯째 날까지 창조를 마치시고 쉬셨다 했으니, 나도 하루에 여섯 가지 일을 마쳤으니 이제 그만 쉬자.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홍마트에 들러 일주일치 식량을 구입하고, 9시 첫배를 타고 가파도로 가야 하니. Go to Hotel. Go to 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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