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단골집이 된 식당들도 모든 게 완벽하진 않았다. 음식은 맛있지만 서비스가 좀 차갑거나, 음식은 그저 그래도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좋아 단골이 된 곳도 있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모든 점이 만족스러운 친구란 없다. 가끔 마음이 안 드는 구석이 있어도, 그럼에도 함께 있으면 편하기에 오랜 기간 관계를 지속한다. 이러한 태도를 나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을 대할 때 꼭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이유가 없다. 완벽해진 나, 새로운 나를 찾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단점은 단점대로 숨기지 않고 인정하고, 장점은 장점대로 드러내면서 겸손해하는. 이제는 내 본모습에 서서히 단골이 되어가고 있다. 설령 조금 부적하더라도 차근차근 나아가면 되니까. 나 스스로에게 단골이 되어가는 일은, 자존감이 높아지는 과정과도 같다. (102쪽)
이모르의 신작 《잘될 일만 남았어》를 읽고 있다. 잘 생기고, 그림 잘 그리고, 말 잘하고, 인터넷에 밝은 다재다능한 후배의 두 번째 에세이다. 첫 번째 에세이는 읽어보질 못했으니, 이번 책이 이모르의 속살을 읽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다. 고양시에서 젊은이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자연스러운 인연으로 이모르가 운영하는 신촌의 스튜디오 '이모랩'에 여러 번 방문하여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한 잔 할 기회가 많았다. 이후에 내가 신촌으로 가거나, 이모르가 고양시로 오면서 친분을 쌓아왔지만, 이모르의 삶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며 이모르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성장과정을 알게 되어 한층 친해진 기분이다.
이모르가 운영하는 신촌의 이모랩. 지하에 들어가면 해방구에 들어온 듯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 공간에서 홀로, 같이 그림 작업을 하며 서로를 나눈다.
이번 책의 미덕은 쉽고, 재미있고, 깊이 있다는 것이다. 이모르는 책을 쓰면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삶에서 경험한 것들을 자양분 삼아 인생의 철학을 담담하게 써놓았을 뿐인데, 글에 흡인력이 있다. 경험과 고민과 성찰의 결과라 그럴 것이다. 위에 인용한 단골집 이야기도 새것만을 추구하던 삶에서 단골을 만드는 삶으로 바뀐 과정을 재밌게 그려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을 자신을 성찰하는 도구로 삼고 있다. 오랜 시간 많은 친구들과 작업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경험이 글들에 입체감을 더하고 진솔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매번 글이 끝날 때마다, 초등학생 시절 그렸을 그림일기체로 삽입된 삽화는 친근감을 더욱 높인다. 유치한 듯 한데, 재밌다.^^
사실 '단골집론'은 내 인생의 모토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집적대지 말고 소중한 것을 더 깊이 있게 여기자고 매번 다짐한다. 넓게 사귀는 사람보다 깊게 사귀는 사람을 더욱 신뢰한다. 정치가나 사업가 같은 경우야 인맥이 넓고 많은 사람의 지지와 응원을 받아야겠지만, 우리 같은 범인들은 그럴 처지도, 이유도, 시간도 없다. 인생은 짧고 삶은 지치고 힘겨운데, 사람들에게 치는 일은 될 수 있으면 안 만드는 게 좋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좀처럼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려 하지 않고 기왕에 친한 사람들과 더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삶의 태도로 인해 불리한 일도 당하겠지만, 그것은 나의 삶의 안녕을 위해 치러야 하는 반대급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이번에 이모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다짐한 것은 '나하고 친하게 지내기'이다. '외부에 단골을 만드는 일이나 친구를 만드는 일에 정성을 들이는 만큼, 나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는가?'하고 질문을 나에게 던져 보았더니 나는 나와 별로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외부의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을 뿐, 나에게 찾아오는 행운이나 불행에 놀라지 않고 '이런 일도 벌어지는군'하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뿐, 그래서 나는 하나의 매개로 사용했을 뿐, 나와 대화를 나누고 나를 단골로 삼는 일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삶에 그런 것을 의식할 정도로 큰 일은 없어서일까? 왜 없었겠냐마는 그런 큰 일을 겪는 나를 깊이 있게 주의 깊게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 이덕무가 '나는 나의 친구'라는 호를 가진 것처럼, 나도 나를 친구 삼아 잘 지내봐야겠다. 가파도는 그런 훈련을 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니까. 오늘도 오전만 근무하고 결항되어 버려 오후가 한가(?)해졌다. 2월은 정상적으로 근무한 시간이 별로 없었다. 월급도 아마 반토막이 날 것이다. 상황이 어려워졌는데 그것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는 나를 나는 좋아한다. 생각해 보니, 가파도 날씨도 그지(?) 같았는데 내 몸이 잘 버텨주고 있다. 예상밖의 상황이라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었는데, 내 마음이 잘 버텨주고 있다. 이렇듯 내 몸과 내 생각이 썩 괜찮은 나의 친구가 되었던 셈. 2월의 마지막날, 나는 나를 격려한다. 그래서 2월도 고생이 많았다. 곧 꽃피는 3월이 되면, 많이 바빠지겠지만 정신줄 놓지 말고 충분히 나를 즐기자. 나는 나의 가장 최측근 친구니까. 으라차차 아자아자! 이모르의 책 제목처럼 주문을 외워보자. "잘될 일만 남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