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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04. 2024

장자를 달린다 26 : 말로 사는 자들에게

- 26편 <외물(外物)>

통발은 고기를 잡는 도구지만 [筌者所以在魚]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게 된다. [得魚而忘筌]

올가미는 토끼를 잡는 도구지만 [蹄者所以在兎]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를 잊게 된다. [得兎而忘蹄]

말은 뜻을 표현하는 도구이지만, [言者所以在意]

뜻을 얻으면 말을 잊게 된다. [得意而忘言]


   

현대사회를 성과사회, 스펙사회라고 합니다. 출세하기 위하여 스펙을 쌓고, 출세한 후에도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렇게 높은 곳에 오른다고 할지라도 평안한 삶이 기다리지 않습니다. 끝없이 경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명성을 추구하다 추문이 돌아 패가망신하기도 하고, 유명세 때문에 더욱 큰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머리를 쓰다가 제 꾀에 빠져 수렁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나는 놈을 쏘는 놈이 있기 마련입니다.     


장자는 일찍이 돈이나 명예나 지위나 지식 등 외물(外物)에 빠져 사는 자들의 마음을 관찰했습니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사람들은 마음 편안한 날이 없습니다. 장자는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큰 근심이 있는데 이해(利害)라는 것으로, 두 가지 중 어느 곳에 치우쳐도 그 피해로부터 도망칠 길이 없다. 언제나 두려워함으로써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하게 되며, 그의 마음은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또 고민이 마음에 있어 근심에 잠기게 되며, 이해에 관한 생각이 마찰을 일으켜 불같은 욕망을 낳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의 화기(和氣)를 불태우게 된다. 마음을 달처럼 맑다 해도 불같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모든 것이 무너져 올바른 도리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또 세상에는 지위는 높지만 그 지위를 민중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불평을 늘어놓으면 말만 번지르르하게 말하고, 실행은 하지 않는 정치가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공약(公約)하지만, 결국은 실행은 하지 않는 공약(空約)이 되고 마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경험했습니다. <외물> 편에는 지금 당장 생계를 위해 몇 푼의 돈이 필요한 장자에게 지위 높은 감하후는 감언이설로 눈속임을 할 뿐 돈 한 푼 주지 않는 사례가 등장합니다. 오늘날 선거 때 정치꾼들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이럴 때에는 작은 일이라도 실행하여 민중의 삶에 도움을 주는 진정한 정치가가 빛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공자를 만난 노래자는 충고합니다. “공구여! 그대 몸의 오만함과 그대 얼굴의 지혜로운 듯한 모양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군자가 될 것이다.” 덧붙여 남에 대한 평가나 충고, 칭송이나 비난을 멈추고, “성인과 폭군의 존재를 다 잊어야만 할 것이다. (...) 성인이란 조심하면서 일을 함으로써 언제나 성공을 하는 것이다. 어쩔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미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지나침을 추구하는 성과사회입니다. 영혼을 팔고 뼈를 갈고 피가 마르도록 일을 해도 성공에 도달하기 힘듭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경쟁만이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양보나 기다림은 어리석은 듯 보입니다. 하지만 때와 조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제 철에 맞는 일들이 있습니다. 억지로 한다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쳐 망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장자는 때를 아는 사람, 적절함을 아는 사람, 지나침의 위험성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덕은 명성을 추구하는 데서 잃게 되고, 명성은 자기를 드러내는 데서 망치게 된다. 다급해지니까 책모를 꾸미고, 다투다 보니 지혜를 드러냅니다. 자신을 지켜 삶을 보호하고, 때와 조건을 기다려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봄에 비가 오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풀과 나무들이 무성해지며, 밭 갈고 김매는 일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풀과 나무는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나는데,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행색은 초라해지고, 마음만 급해집니다. 몸은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고, 병을 달고 살아갑니다. 장자 시절에도 안티에이징(anti-aging)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봅니다. 장자는 안티에이징보다 웰에이징(well-aging)하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고요함은 병을 고칠 수 있으며, 눈썹과 머리를 깨끗이 손질을 하면 늙음을 방지할 수가 있고, 편안함은 조급한 마음을 없앨 수 있다.” 얼굴을 뜯어고치고, 좋다는 것들 찾아다니며 먹고, 미용에 힘쓰는 것보다 욕망을 줄이고 고요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좋다는 것 따라 하다가 더욱 곤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남들 따라 주식투자하다가 종잣돈마저 없어지고만 사람들이 많습니다. 몸에 좋다는 것 찾아다니다가 몸을 망치는 사람도 많습니다. 확률상으로도 성공은 드물고 실패는 넘쳐납니다. 남들 따라 하다가 자신만 망치게 됩니다. 그러니 외물에 투자하지 마시고, 내면에 투자하십시오.     

내면에 투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을 줄이는 것입니다. 말을 줄일수록 마음은 비워집니다. 마음을 비울수록 마음이 넓어집니다. 마음이 넓어지면 많은 것들을 판단 없이 담을 수 있습니다.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이렇게 해야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판단이 없어지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사물을 그대로 보는 것이 하늘과 땅을 닮는 것입니다. 천지를 닮으면 안 되는 것도 되는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살다 보면 억지로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루게 됩니다.      


장자는 이 경지를 이렇게 문학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통발은 고기를 잡는 도구이지만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게 된다. 올가미란 토끼를 잡는 기구이지만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를 잊게 된다. 말이란 것은 뜻을 표현하는 도구이지만, 뜻을 표현하고 나면 말을 잊게 된다. 우리는 어찌하면 말을 잊은 사람들과 더불어 얘기를 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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