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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05. 2024

장자를 달린다 27 : 말 없는 말

- 27편 <우언(寓言)>

말을 하되 시비를 말하지 않으면 [言無言]

평생토록 말을 해도 [終身言]

말을 한 일이 없는 것이 된다. [未嘗言]

평생토록 말을 하지 않아도 [終身不言]

말을 안 한 일이 없는 것이 된다. [未嘗不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돌려 말하지 않습니다. 시비곡직을 가려 분명히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말에는 힘이 있어, 거짓을 말해도 주변 사람들이 이의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들 옆에 간신배들이 넘쳐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행여나 잘못 말해 자신에게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현란하고 화려하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 말에는 난해함이 있어, 틀린 지식을 말해도 주변 사람들이 분명하게 시비를 가리지 못합니다. 그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우뚱거릴 뿐입니다. 하지만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어렵게 말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행여나 잘난 척하다가 손가락질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욕심 많은 개'의 삽화. 장자도 이와 유사한 우화(원추라는 새 이야기)를 혜시에게 말한 적이 있다.

장자는 쉽게 말하기, 비유적 말하기, 돌려 말하기의 명수입니다. 그는 천상 이야기꾼입니다. 그는 어려운 말을 하지 않고 비유적으로 말했습니다. 이솝이 우화를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처럼 장자 속 많은 이야기가 우화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는 권력이 없기에 상대방에게 강변하거나 윽박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은근히 상대방의 잘못을 비유를 통해 지적함으로써 상대방의 기분을 완전히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직설이 아니라 비유를 사용하는 그의 문체는 이후 수많은 문인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장자는 한쪽으로 치우진 말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고집스럽게 하나의 입장만을 말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안다고 말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세상에는 모르는 것투성이고, 안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변화하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변화에 따라 말을 했지만 시비(是非)를 가리기 위해서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비의 외부, 옳고 그름의 상대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말했습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중간. 변함없는 원리가 아니라 변화하는 사태를 소중히 관찰했습니다. 세상살이에 순응하되 빠져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은둔자가 아니었고, 세상에 영합하는 기회주의자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비를 가르는 편가름이 아니라 세상 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법을 탐구했습니다. 그의 스승은 자연이었습니다. 그는 자연을 관찰하며 삶의 원리를 배워갔습니다. 봄이 여름과 싸우지 않듯, 가을이 겨울을 꺼리지 않듯,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무궁한 변화를 즐겼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비를 말하지 않으면 사물들과 조화되게 된다. 조화와 시비를 말하는 것은 조화되지 않으며, 시비를 말하는 것과 조화도 조화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비를 말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말을 하되 시비를 말하지 않으면 평생토록 말을 해도 말을 한 일이 없는 것이 된다. 평생토록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을 안 한 일이 없는 것이 된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면, 말 없는 말은 세상과 조화를 이룹니다. 상대방을 다치게 하는 말을 하지 않으니 상대방에 마음속에 응어리가 남을 리 없습니다.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았습니다. 한편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을 대하는 그의 행동이 자연스러워, 마치 물속에 있는 물고기처럼, 공중을 나는 새처럼 의식하지도 못한 채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는 말 없는 말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따뜻한 행동이 더욱 강력한 힘을 나타내는 법입니다.      


그는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억지로 애쓰지 않았습니다. 억지(抑止)에는 반드시 강제(强制)가 따르고, 강제에는 반드시 강변(强辯)이 따르고, 강변은 상대방을 억압(抑壓)하는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넌지시 말하고, 비유로 말하고, 말할 수 있을 때만 말하고, 말할 수 없을 때는 입을 닫았습니다. 세상사에는 때와 시가 있고, 그때와 시는 억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는 모든 존재를 동등하게 보았습니다. 만물제동(萬物齊同), 동등하게 보았기에 차별이 없고, 차별이 없기에 조화로웠습니다. 이를 장자는 자연에 조화롭다 하여 ‘천균(天鈞)’이라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옳았다고 끝까지 옳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 가지고 있던 알량한 지식을 버리는 것을 계속 실천했습니다. 계속 버리고 버려 텅 비어 하늘과 귀신을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는 이 자유로움을 즐겼습니다. 재물이나 지위도, 명예와 권력도 “마치 참새나 모기가 그의 앞을 날아 지나가는 것을 보듯” 여겼습니다.      

장자는 권력자들의 초대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누리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정치인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진흙탕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는 거북이가 돼”기를 바랐습니다. 권력은 아침 이슬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권력을 숭앙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기에 권력자들은 장자를 꺼려했지만, 장자 주변에 사람들은 그를 동네 사람처럼 친근하게 대했습니다. 권력자들이 다가가면 슬슬 피하던 사람들도, 장자가 다가가면 자리를 내주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는 권력자의 개가 되기보다 민중의 친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막걸리 한 잔 나눌 수 있는 이야기꾼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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