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를 달린다 30 : 천하무적 장자
- 30편 <설검(說劍)>
대개 검술이라는 것은 [夫爲劍者]
상대방에게 이쪽의 허점을 보여줌으로써 [示之以虛]
상대를 유인하고, [開之以利]
상대보다 늦게 칼을 뽑으면서 [後之以發]
상대보다 먼저 공격하는 것입니다. [先之以至]
한번 실제로 이를 시험해 보이고 싶습니다. [願得試之]
《장자》에서 전체가 마치 드라마처럼 연출되는 유일한 곳이 바로 30편 <설검(說劍)>입니다. 제목을 통해서 짐작하겠지만, 드라마의 소재는 검술입니다. 장자와 검술이라? 일찍이 공자는 군자의 싸움으로 활쏘기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만, 검술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편에서 장자는 천하무적 검객으로 등장합니다. 벌써부터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일단 장자가 검객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입니다. 조나라 문왕은 칼싸움 구경을 좋아하여 문하에 삼천 검객이 식객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문왕이 칼싸움을 시키고 구경하니 1년에 칼싸움으로 죽은 검객들이 백 명이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문왕이 이를 멈추지 않고 칼싸움을 계속 시켜서 3년이 지나자 나라가 쇠퇴해지니 다른 나라에서 조나라를 멸망시키려 엿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태자 회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요. 그래서 그는 천금을 상으로 내결고 이 칼싸움을 멈출 자를 찾았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장자를 추천했습니다. 장자에게 천금을 예물로 하여 사자를 보내니, 장자가 태자를 만나러 옵니다. 태자가 장자의 꼴을 보니 검객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태자는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장자와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를 엿들어 보겠습니다.
- 우리 임금은 검객만 좋아합니다.
- 저도 검술을 제법 합니다만.
- 복장이 우리 임금님이 좋아할 스타일이 아닙니다.
- 그럼, 저에게 복장을 갖춰 주십시오.
사흘이 지나 검복으로 갖춰입은 장자와 태자가 문왕을 만나러 갑니다. 문왕을 대단한 검객이 온다는 소식을 미리듣고 칼을 뽑아든 채 장자를 기다라고 있었습니다. 왕을 본 장자는 잰걸음으로 예의를 갖추지도 않고, 절도 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괴씸했지만 최대한 화를 자제하고 장자에게 묻습니다.
-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왔습니까?
- 임금님께서 칼을 좋아하신다 하니 검술을 가르치려 왔습니다.
- 그대는 칼로 몇 사람이나 대적할 수 있소?
- 저의 칼은 열 걸음마다 한 사람씩 베어 천 리를 아무도 가로막지 못합니다.
- 천하무적이로군요!
- 검술이란 상대방에게 허점을 보여주고 유인하여 상대보다 늦게 칼을 뽑아 상대보다 먼저 공격하면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 시범을 보여드릴까요?
문왕의 대단한 검객이 왔다고 생각하여, 아무하고나 대결시키는 것보다 최고의 검객들과 싸우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장자가 결전을 기다리는 7일간, 자신의 검객들을 시합을 시켜 60여명의 사상자를 낸 뒤 베스트 5를 골라 도열시켰습니다. 장자를 불러 득의양양하게 말합니다.
- 이들이야말로 내가 뽑은 최고의 검객들이오. 이들과 시험 삼아 검술을 겨루어 보시겠소?
- 오랫동안 기다려온 바입니다.
- 무슨 칼을 쓰시겠소?
- 저야 아무 칼이나 써도 상관없지만, 제게 칼이 세 자루 있는데 임금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쓰겠습니다.
- 세 자루의 칼이 무엇입니까?
- 천자의 칼이 있고, 제후의 칼이 있고, 서민의 칼이 있습니다.
이렇게 왕의 호기심을 잔뜩 키운 후, 한 자루 한 자루 왕이 묻는 대로 답해줍니다. 이른바 ‘설검(說劍)’, 칼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장자의 썰(^^)은 정말로 물 흐르듯 대단합니다.
- 천자의 칼이란 무엇이오?
- “천자의 칼이란 연나라의 계곡과 변방의 석성을 칼끝으로 하고, 제나라의 태산을 칼날로 삼으며, 진과 위나라가 칼등이 되고, 한나라와 위나라가 칼집이 되며, 사방의 오랑캐들로 씌우고, 사계절로 감싸서, 그것을 발해로 두르고, 상산을 띠 삼아 묶고, 오행으로 제어하고, 형벌과 은덕으로 논하며, 음양의 작용으로 발동하고, 봄과 여름의 화기로 유지하고, 가을과 겨울의 위세로 발휘케 합니다. 이 칼을 곧장 내지르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없고, 아래로 내리치면 걸리는 것이 없으며, 휘두르면 사방에 거칠 것이 없습니다. 위로는 구름을 끊고, 아래로는 땅을 지탱하는 큰 줄을 자를 수 있습니다. 이 칼은 한번 쓰기만 하면 제후들의 기강이 바로 서고, 천하가 모두 복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천자의 칼입니다.”
- 제후의 칼이란 무엇이오?
- “제후의 칼은 용기 있는 자로 칼끝을 삼고, 청렴한 사람으로 칼날을 삼으며, 현명하고 어진 사람으로 칼등을 삼고, 충성스러운 이로 칼자루의 테를 삼으며, 호걸로 칼집을 삼습니다. 이 칼 역시 곧장 내지르면 앞에 가로막는 것이 없고, 위로 쳐 올리면 위에 걸리는 것이 없으며, 아래로 내치면 아래에 걸리는 것이 없고, 휘두르면 사방에서 당할 것이 없습니다. 위로는 둥근 하늘을 법도로 삼아 해와 달과 별의 세 가지 빛을 따르고, 아래로는 모가 난 땅을 법도로 삼아 사계절을 따르며, 가운데로는 백성들의 뜻을 헤아리어 사방의 온 나라를 편안하게 합니다. 이 칼을 한번 쓰면 천둥소리가 진동하는 듯하며, 나라 안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게 되어 모두가 임금님의 명령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제후의 칼입니다.”
왕의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서민의 칼은 무엇입니까?
- “서민의 칼은 더벅머리에 살쩍은 비쭉 솟았으며, 낮게 기운 관을 쓰고, 장식이 없는 끈으로 관을 묶었으며, 소매가 짧은 옷을 입고, 부릅뜬 눈에 말을 더디게 하면서 임금님 앞에서 서로 치고받으며 싸웁니다. 위로는 목을 베고, 아래로는 간과 폐를 찌릅니다. 이것이 바로 서민의 칼이며, 싸움닭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일단 목숨을 잃고 나면 이미 나라 일에도 쓸모가 없게 되지요. 지금 임금님께서는 천자와 같은 자리에 계시면서도 서민의 칼을 좋아하십니다. 제가 이 칼을 쓸까요?”
이후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바입니다. 도열한 검객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임금은 상황을 무마하려고 장자의 옷소매를 잡아끌어 진수성찬으로 차려놓은 식탁에 앉히고, 자신은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싸움도 시작하기 전에 말로 싸움이 끝난 것입니다. 장자는 문왕을 말로 된 칼로 선공하여 굴복시킨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글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로부터 석 달 동안 문왕은 궁전을 나가지 않았으며 검객들은 모두가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천하무적 장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지금 나의 마음은 헤피앤딩이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이야기를 쓰고 있는 동안 나는 자꾸 우리나라의 권력자가 떠오릅니다.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는 지금 무슨 칼을 쓰고 있는 걸까요? 그 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렇게 칼을 휘두르면 우리나라는 온전할까요? 설령 장자를 초대하여 권력자 앞에 세운 들, 그 권력자는 아랑곳하기나 할까요? (상상을 멈춰야겠습니다. 자꾸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신세가 비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