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를 달린다 31 : 질주하지 마라
- 31편 <어부(漁父)>
그 자신은 아직도 느리게 뛰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自以爲尙遲]
쉬지 않고 질주하다가 [疾走不休]
결국에는 지쳐 죽고 말았다 합니다. [絶力而死]
그늘 속에 쉬면 그림자가 사라지고, [不知處陰以休影]
고요히 있으면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 [處靜以息迹]
어리석음이 지나쳤던 것입니다. [愚亦甚矣]
30편 <설검>이 한 편의 드라마라면, 31편 <어부>는 대화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양으로 치면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이 있다면, 동양에는 장자의 대화편이 있지요. 이번 대화의 주인공은 69세 먹은 공자와 물고기를 잡는 노인입니다. 일단 대화편의 서막은 상황묘사로 시작됩니다. 공자가 제자들과 소풍을 나왔습니다. 공자는 우거진 숲 속 살구나무가 있는 높은 단에 앉아 쉬고, 제자들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공자가 무료했는지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부르네요. 그때 수염과 눈썹이 새하얗고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한 어부가 강가 둔덕으로 올라와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턱을 괸 채 공자의 노래를 감상합니다. 노래가 끝나자, 공자의 제자인 자공과 자로에게 연주하는 사람은 누구냐고 묻습니다.
자로가 대답합니다. “노나라의 군자입니다.” 어부가 “성씨는 어떻게 되고?”라 묻자, 자로는 “공가입니다.” 다시 노인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고?”라고 묻자, 이번에는 자공이 대답합니다. “우리 선생님은 본성이 충성과 믿음을 지키고 있으며, 몸은 어짊과 의로움을 실행하고, 예의와 음악을 꾸며 놓고, 인륜을 정해 놓았습니다. 위로는 임금께 충성을 다하고, 아래로는 모든 백성을 교화하여 천하를 이롭게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어부가 재차 묻습니다. 영토를 가지고 있는 임금이냐? 아닙니다. 제후나 임금을 보좌하는 사람이냐? 아닙니다. 그러자 어부는 빙긋이 웃으며 중얼거린다. ‘어질기야 하겠지만 그 몸이 화를 면치 못하겠구나.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지치게 하여 자신의 참모습을 위태롭게 하는구나. 아아! 그는 도에서 멀리도 떨어져 있구나!”
제자들 앞에서 선생을 낮게 평가하는 늙은 어부. 제자들은 이 사실을 공자에게 일러 바칩니다. 공자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지금부터 공자와 어부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요. 일단 공자는 거문고를 밀쳐 놓고 일어나 “그는 성인(聖人)이다!”라고 말한 후 어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갑니다. 어부는 막 배를 띄우려는 참이었습니다. 공자는 노인을 보고 두 번 절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지금부터 대화가 시작됩니다.
- 그대는 내게 무슨 볼 일이라도 있습니까?
- 선생님께서 저에게 아직 하시지 못한 말씀이 있는 듯하여, 선생님의 말씀을 더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면 저는 배우겠습니다.
- 허허, 그대는 배우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군요.
공자는 어부에게 다시 두 번 절하고 말합니다.
- 저는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했는데 이제 예순아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지극한 가르침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마음을 비우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기다립니다.
- 같은 종류가 어울리고, 같은 소리끼리 조화를 이루는 것이 천지자연의 도리이지요. 내가 터득한 도는 일단 미루어두고 그대가 하는 일을 이야기 해봅시다. 그대가 하는 것은 사람의 일입니다.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바르게 서면 세상은 잘 다스려지지요. 반대로 제자리에서 벗어나면 큰 혼란이 생깁니다. 자신의 자리에 편안히 머물고, 서로의 자리를 넘보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서민은 서민의 자리에, 대부는 대부의 자리에, 제후는 제후의 자리에, 그리고 천자와 재상들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 자신의 걱정거리를 해결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위로는 임금이나 재상의 권력도 없고, 아래로는 대신이나 관리 같은 벼슬도 없는데도 멋대로 예악을 꾸미고, 인륜을 정하여 백성들을 교화하고 있으니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 너무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 것 아닙니까?
(공자 묵묵히 듣고 있다.)
사람에게는 여덟 가지 악습이 있고, 네 가지 병폐가 있으니 이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일도 아닌데 분수도 모르고 나서서 하는 것,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데 굳이 앞으로 나아가 말하는 것, 상대방의 생각에 맞추어 말하는 것,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아부를 하는 것, 남의 나쁜 점만 말하기 좋아하여 중상모략하는 것, 남의 사귐을 단절하고 친한 사이를 떼어놓는 것, 남을 속이고 거짓으로 칭찬하면서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것,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양쪽 모두를 수용하는 듯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몰래 훔쳐 빼가는 것, 이것이 8가지 악습입니다. 이런 악습을 행하는 사람을 군자들은 벗하지 않고, 명철한 임금은 신하로 삼지 않습니다.
(공자 말없이 듣고 있다.)
큰일을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여 일상적인 원칙을 바꿔가면서까지 자신만의 공명을 얻으려는 것, 오로지 자신의 지식만을 믿고 제멋대로 일처리하여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고 충고를 들으면 오히려 더욱 심히 못되게 구는 것,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찬성하면 괜찮지만 자기에게 찬성하지 않으면 비록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좋게 여기지 않는 것, 이것이 4가지 병폐입니다. 이 모든 것을 버리고 행하지 않아야 비로소 그대를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 (공자는 탄식하며) 저는 노나라에서 두 번이나 쫓겨나고, 위나라에서도 추방당하고, 송나라에서는 나무를 베어 넘겨 저를 죽이려 하였고,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를 당했었습니다. 저는 제가 잘못한 것을 알지 못하겠는데도 이러한 네 가지 고통을 겪었던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 (어부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대는 정말 깨우칠 줄을 모르시는군요. 어떤 사람이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자기 발자국이 싫어서 이것들을 떠나 달아나려 하였는데, 발을 빨리 놀릴수록 발자국은 더욱 많아졌고,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그림자는 그의 몸을 떠나지 않았다 합니다. 그래도 그 자신은 아직도 느리게 뛰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쉬지 않고 질주하다가 결국에는 힘이 다해 죽고 말았다 합니다. 그는 그늘 속에 쉬면 그림자가 사라지고, 고요히 있으면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리석음이 지나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어짊과 의로움의 뜻을 자세히 알고 있고, 사리가 같고 다른 한계를 잘 살피고 있고, 움직이고 고요히 있는 변화를 잘 관찰하고 있고, 받고 주는 정도를 적절히 할 줄 알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고, 기쁨과 노여움의 절도를 조화시킬 줄 알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화를 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기 몸을 삼가 닦고 그 진실함을 신중히 지켜 명예 같은 외물은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면 아무런 환란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몸을 닦지 않고서 남에게 그 이유를 묻고 있으니 이것은 사실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무엇이 진실함입니까?
- 진실함이라 정성이 지극한 것입니다. 정성스럽지 못하면 남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억지로 곡하면 슬픔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억지로 화내면 위압을 주지 못합니다. 억지로 친한 척하면 친근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진실로 슬픈 사람은 소리를 내지 않아도 슬프게 느껴집니다. 진실로 노한 사람은 성내지 않아도 위압이 느껴집니다. 진실로 친한 사람은 웃지 않아도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진실함이 속마음에 있는 사람은 그 마음으로 밖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진실함이 귀중한 것입니다.
그대가 가르치는 예의라는 것은 세속적인 행동의 기준입니다. 진실함이란 것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것입니다. 타고난 것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늘을 법도로 삼고 진실함을 귀중히 여기며 세속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와 반대입니다. 하늘을 법도로 삼지 못하고 사람의 일에 얽매여 고생을 합니다. 진실함을 귀중히 할 줄 모르고 세상일에 따라서 세속과 함께 변화하기 때문에 언제나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대가 일찍이 인위적인 학문에 빠져 하늘의 위대한 도에 대하여 늦게 듣게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자, 중요한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공자는 그의 제자가 되고자 했으나 어부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더 노력하라는 당부만 남긴 채 배를 띄어 갈대밭으로 사라져 갑니다. 공자는 망연자실하여 그 사라진 곳을 바라볼 뿐입니다.
대화를 들으니 어떻습니까? 말년의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왔지만 그가 나라를 위해서 할 일은 없었습니다. 공자는 고향으로 돌아가 제자들과 자신의 가르침을 정리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보겠다는 소망도,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말년을 지내다가 7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 대화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에 나눈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공자가 진실로 이러한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자는 공자를 사랑하여 이 대화를 남겨놓았습니다.
늙은 어부가 지적한 8가지 악습과 4가지 병폐를 들으며 공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마음 속에 아픔으로 남았을까요? 돌이켜 반성할 과제가 되었을까요?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 악습과 병폐를 없애는 방법으로 어부는 진실함을 말합니다. 세속의 구애받지 않는 진실함을 간직하라고 당부합니다. 억지가 아닌 진실함. 이 진실함을 속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질주하는 삶이 아니라 그늘 밑에서 쉬는 삶이 참으로 간절한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