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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10. 2024

장자를 달린다 32 :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 32편 <열어구(列禦寇)>

기교가 많은 사람은 수고로울 것이며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걱정이 많은 법이다. [巧者勞而知者憂]

능력이 없는 자는 오히려 추구하는 것이 없을 것이니. [無能者無所求]

배불리 먹고 유유히 노닐다가 [飽食而敖遊]

매어있지 않는 배처럼 두둥실 떠다니고 [汎若不繫之舟]

마음을 텅 비워 무심히 소요하게 될 것이다. [虛而敖遊者也]          


32편의 제목이 <열어구(列禦寇)>라 하여 열자(열어구를 높여 부르는 말)의 이야기가 많을 것 같지만, 사실 열자의 이야기는 처음에만 등장할 뿐, 오히려 공자나 장자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18조각의 단편들이라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체를 통하는 주제의식은 있습니다. 지위나 권력이나 지식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려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낮은 곳에서 떨어지면 크게 다치지 않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위태롭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신을 더욱 괴롭힐 수 있습니다.     

 

우선 열어구(열자) 이야기. 

열자가 제나라로 가다 말고 다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스승인 백혼무인을 만납니다. 스승이 왜 돌아오느냐고 묻자, 제나라로 가는 길에 열 집 정도 주막에 들러 식사를 했는데 돈을 지불하기도 전에 식사를 대접하여 놀라서 돌아왔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묻자, “그것은 저의 속마음의 정성됨이 아직 덜 풀려 외형으로 그것이 드러나 빛을 이룸으로써 밖으로 사람들의 마음의 위압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저보다도 노인은 가볍게 여기게 하고 공경하지 않게 한 것이니, 제 자신의 환난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특히 주막의 주인이란 다만 음식을 팔아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들이며, 그 이익 또한 보잘것없고 권한도 작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그처럼 대했으니 하물며 만승의 군주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의 몸은 나라를 위해 애쓰고 있고, 그의 정신은 정사를 처리하는 데 다 쓰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가면, 그는 제게 나라 일을 맡기어 공을 세우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놀랐다는 것입니다.” 


스승은 열자를 칭찬하며, 그렇게 조심스럽게 처신하면 사람들이 그를 따를 것이라 말합니다. 얼마 후 스승이 열자의 집에 가보니 문밖에 신발이 가득합니다. 스승이 이 모습을 보고 지팡이에 턱을 괸 채 말없이 한참을 있다가 그대로 나왔습니다. 문지기가 이 사실을 열자에게 알렸습니다. 열자는 신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문간까지 뛰어나옵니다. “선생님, 모처럼 오셨는데 그냥 가세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을 열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합니다. “그만두거라. 사람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말했다만, 도리어 사람들은 너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너를 따랐다면 너를 찾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테니. 사람들이 너를 찾아온 것은 네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말인데, 사람에게 감동을 주려면 너의 본성을 뒤흔들어야 할 것이니, 내 가르침이 무의미해졌구나. 너와 어울리는 자들은 쓸모없는 말로 다른 사람을 해칠 것이다. 남을 깨우쳐주지도 못하고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과 어찌 터놓고 사귀겠느냐? 기교가 많은 자는 수고로울 것이며아는 것이 많은 자는 걱정이 많은 법이다능력이 없는 자는 오히려 추구하는 것이 없을 것이니배불리 먹고 유유히 노닐다가 매어있지 않은 배처럼 두둥실 떠다니고 마음을 텅 비워 무심히 소요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잘 감춰서 칭찬을 받더니, 계속 잘 감추지 않고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알리는 어리석은 열자. 그래서 잘 감추라는 말만 배우는 사람들. 스승이 보기에는 도긴개긴이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멀고 먼 열어구!     


다음으로 공자 이야기.

노나라 애공이 안합에게 공자를 대신으로 삼고 싶은데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안합은 반대합니다. 이유인즉, “위태롭고 위험한 일입니다. 공자는 지금 새의 깃으로 장식을 하고도 채색을 더 하는 짓을 하고 있고, 화려한 말을 늘어놓는 일에 종사하고 있으며, 지엽적인 것들로 중심을 삼고 있습니다. 그가 가르치면 백성의 본성을 왜곡하여, 정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이런 자를 어찌 백성 위에 세우겠습니까?”

공자시대에 공자를 따르는 사람만큼이나 공자를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공자는 살면서 대신으로 중용되지 못하고, 계속 세상을 떠돌아야 했지요. 세상을 떠돌다 보니 사람 보는 능력도 생겼나 봅니다. 속 다르고 겉 다른 것이 인간인지라 사람을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요, 공자가 제안하는 사람 판단하는 법 아홉 가지를 소개합니다.    

 

1. 사람을 멀리 놓고 부리면서 그의 충성됨을 살피라

2. 사람을 가까이 놓고 부리면서 그의 공경함을 살피라.

3. 그에게 번거로운 일을 시키고서 그의 능력을 살피라.

4. 갑자기 질문함으로써 그의 지혜를 살피는 것이라.

5. 급작스럽게 그와 약속을 함으로써 그의 신용을 살피라.

6. 재물을 그에게 맡겨봄으로써 그의 어짊을 살피라.

7. 그에게 위태로움을 얘기해 줌으로써 그의 절의를 살피라.

8. 그를 술로 취하게 함으로써 그의 법도를 살피라.

9. 남녀가 섞여 지내게 함으로써 그의 호색함의 정도를 살피라.     


마치 정치가의 자질을 테스트하여 등급을 매기거나 컷오프시킬 수도 있는 리스트 같아 재미납니다.     


마지막으로 장자 이야기.

<열어구> 편에는 장자 주변에 부유함을 자랑하는 사람에게 장자가 어떻게 응수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송나라 조상이 진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받아온 백 채의 수레를 자랑했습니다. 장자는 말합니다. “진나라 임금이 병이 나서 의원을 불렀습니다. 종기를 째고 고름을 짜 주는 자에게는 수레 한 채를 내렸습니다. 고름을 빠는 자에게는 수레 다섯 채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치료하는 방법이 천하면 천할수록 내려지는 수레는 더욱 많았습니다. 당신은 그의 치질을 핥아 고쳐주었습니까? 어찌 그토록 많은 수레를 받았습니까? 그만 가시지요.”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송나라 임금에게 수레 열 채를 받았습니다. 이를 장자에게 자랑하자, 장자가 옛날이야기를 하듯 말합니다. “황하 강가에 아주 가난한 집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집 아들이 깊은 물에 잠수하여 천금의 진주를 얻었습니다. 이를 아버지에게 보여주자, 아버지는 벌쩍 뛰며 진주를 깨뜨려 버리라고 말합니다. 왜냐? 그 진주는 검은 용의 턱 밑에 있는 것인데 용이 잠자고 있는 사이에 아들이 주워온 것이지요. 만약에 검은 용이 잠을 자지 않았다면 아들은 용에게 잡아 먹혀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자랑하던 사람이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 검은 용이 바로 송나라 왕입니다. 왕이 정신을 차리면 당신은 가루가 될 것입니다.” (아, 장자의 유머라니.^^)     


그 외에도 장자가 초빙을 거절한 이야기도 있지만 가장 따르고픈 이야기는 장자의 장례 이야기합니다. 장자가 죽음에 이르자, 제자들은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고자 합니다. 하지만 장자는 이를 만류하고 자신을 매장도 하지 말고 풍장을 요청합니다. 제자들은 까마귀나 솔개가 뜯어먹을까 두렵다고 했더니, 장자 왈 “위쪽에 놓아두면 까마귀와 솔개가 먹을 것이고, 아래쪽에 묻으면 개미들이 먹을 것이다. 너희들의 말은 윗것들이 먹는다고 그것을 빼앗아 아랫것들에게 주라는 것이냐? 어찌하여 그리 편벽되게 생각을 하는 것이냐?”  


죽을 때까지 유머감각을 놓지 않는 이 장자의 경지에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자신의 마음뿐 아니라 몸조차도 비울 수 있도록 장자는 자유롭게 노닐며 텅 빈 상태가 되었습니다. 잘 살다가 잘 돌아갑니다. 나도 그를 따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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