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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11. 2024

장자를 달린다 33 : 마이너리티의 대향연

- 33편 <천하(天下)>

(장자는) 아득한 이론에 [以謬悠之說]

황당무계한 말과 [荒唐之言]

종잡을 데 없는 말로 이를 논했다. [無端崖之辭]

때때로 자기 멋대로 논했지만 치우치는 일이 없었고, [時恣縱而不儻]

한 가지에만 적용된 견해를 가지고 주장하지 않았다. [不以觭見之也]  


<장자를 달린다>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는 글의 마지막입니다. <천하(天下)>라는 제목이 달려있는 33편은 장자 자신을 포함하여 당대 사상가들에 대한 논평모음집입니다. 그런데 당대 사상가 전체를 포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당대에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법가(法家)에 대해서는 한 사람도 언급이 없고요. 유가(儒家) 사상가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원했던 당대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는 친권력형 사상가들은 대거 빠져있구요. 소위 야당이나 제야에 해당하는 사상가들에 대한 논평이 대부분입니다.     


모두를 사랑하라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했던 묵가를 포함하여, 만민평등과 전쟁반대, 무욕과 자족을 주장했던 송견과 윤문, 팽몽, 전병, 신도 등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사상가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자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노담(노자)과 관윤, 그리고 장자 자신에 대해서도 논평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재밌습니다. 그렇게 하고 끝날 법한데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속해 있는 명가(名家, 당대의 논리학자)에 대해서도 정성스럽게 논평하고 있네요. 그래서 우리는 혜시, 환단, 공손룡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 같이 민중지향적이거나 마이너리티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천하>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천하의 맨끝, 시대의 중앙이  아니고 국경지대에서 활약했던 사상가들에 대한 논평입니다.  

   

글의 시작은 창대합니다. 모든 사상은 하나인 도(道)로부터 나왔다고 선언합니다. 우주와 만물의 생성과 변화, 소멸이 모두 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도는 없는 것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도술(道術)이 담겨 있는 책으로 시(詩), 서(書), 예(禮), 악(樂), 역(易), 춘추(春秋)를 꼽습니다. 시에는 뜻이, 서에는 일이, 예에는 행동이, 악에는 조화가, 역에는 음양의 변화가, 춘추에는 명분을 다루고 있지요. 그런데 이 도(道)의 일면만을 터득하고 만족하는 왜곡된 사상가들이 등장하면서 백가(百家)가 등장한다고, 백가의 등장배경을 설명합니다. 이른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지요. 통합적이고 전체적이고 유기적인 도술(道術)이 아니라 한쪽에 치우진 방술(方術)이 퍼저나가면서 세상은 사상적으로 어지러워집니다. 장자는 이들 중에서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논평합니다.


전체를 다 설명할 수는 없으니, 최종적인 논평을 중심으로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묵자와 무리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습

먼저 묵가(墨家)는 차별없이 사랑하라 말했지만, 이러한 요청은 당대 사정에도, 사람의 인정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실행하기도 어렵고 왕이 따르기도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야박하게 끝내기는 아쉬웠는지 이렇게 마지막에 추가하네요. “묵자는 진실로 천하를 사랑하기는 했다. 올바른 도를 구하여 얻지 못한다면 비록 몸이 깡마르게 되는 한이 있다 해도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다. 그가 재사(才士)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음으로는 만민평등과 전쟁반대, 무욕과 자족을 실천했던 송견과 윤문에 대해서는 “서로 친숙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욕을 적게 갖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삼았고, 모욕을 당해도 치욕이라 여기지 않았고, 백성들 사이에 싸움을 없애려고 했다. 공격을 금하고 무기를 없앰으로 세상의 전쟁을 없애려고 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쉬지않고 선전선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남을 위하며, 자신을 위하려는 생각은 아주 적었다.”라고 따뜻한 논평을 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평화, 전쟁반대를 위해 열성적으로 헌신하는 운동가들이 떠오릅니다.


자신의 지적 뿌리에 해당하는 노자와 관윤에 대해서는 이렇게 논평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남의 앞에 서려고 할 때, 그는 홀로 남의 뒤에 서려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실속 있는 것을 추구하는데 그 홀로 텅 빈 것을 추구했다. 그는 저장하는 것이 없으므로 언제나 남음이 있었다. 홀로 자립하여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행동함에 있어서 더디고도 힘을 낭비하지 않게 했다. 무위하면서 사람들의 기교를 비웃었다. 그는 심원함을 근본으로 삼고 간략함을 대강으로 삼았다. (...) 그는 언제나 외물을 너그럽게 포용하였고, 남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그러니 도의 극치에 이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관윤과 노담은 옛날의 위대한 진인(眞人)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 존경과 사랑의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장자의 자평을 인용하기보다는 장자에 대한 나의 평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장자의 자평도 재밌으니 궁금하시면 찾아보시길. 맨처음에 인용한 부분이 자평에 들어있습니다.)     

 

장자의 말에는 유머가 있었습니다. 상대방을 비꼬더라도 마음을 손상시키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우화형식의 말로 비유하여 자신의 생각을 돌려 말했습니다. 장자 읽기의 재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상대방이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툭 치고 넘어갔습니다. 상대방이 작은 틀에 갇혀있을 때 푸른 하늘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어항 속 물고기가 아니라, 새로 변신하여 창공을 날아오르는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이 관점을 뛰어 넘어 하늘의 관점으로 생각해 보려했고,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지우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방법을 탐구했습니다. 비극적 삶의 조건 속에서 희극적 삶의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그는 고대판 찰리 채플린이었습니다.

혜시와 이야기하는 장자

장자는 세상에서 말 잘하는 것이라면 누구도 지지 않을 혜시(혜자)라는 친구를 곁에 두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논쟁하고 서로를 비꼬았지만, 그로 인해 우정이 깨지지 않았습니다. 혜시의 논리를 유머로 넘어섰습니다. 결국 혜시도 털털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장난의 대가 혜시와 유머의 대가 장자는 그렇게 궁합이 맞았습니다.

장자는 혜시나 공손룡으로 대변되는 변사들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상식의 파괴자, 논리의 이단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검은 것과 흰 것을 구분하지 않고 흰 속에 검음이 있고 검음 속에 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 덕분에 고집스런 이원론자들은 당황했고, 그들의 궤변에 사람들은 속아 넘어갔습니다. 권력이 있는 자들은 권력에 공백이 생기고, 논리를 잘하는 자들은 논리에 허점이 드러났습니다. 경직된 세상이 그들로 인해 조금은 숨통이 트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자는 그들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논리로는 가닿을 수 없는 천지의 도(道)를 즐겨 논리의 위태로움에서 벗어났습니다. 말로 상대방을 굴복시켜려 하지 않고 천지의 도로 상대방을 감동시키려 했습니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고, 말만을 앞장 세워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자가 친구 혜시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대목을 인용합니다. “아깝다! 혜시는 그런 재능을 가지고도 방탕하게 행동하여 참된 도를 터득치 못하였고, 만물을 뒤쫓음으로서 자기 본성으로 되돌아갈 줄을 모르고 있다. 이것은 울림이 나오는 곳을 찾으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나, 자기 몸과 그림자를 경주시키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마치 친구에게 “너는 재능은 많았는데, 세상일 쫓아다니고 논평하느라 너무나 바쁘게 살았구나. 마치 그림자를 떼어놓으려고 그림자와 달리기 시합을 한 것처럼 말이야. 그럴 때는 차라리 그늘에 들어가 앉아 쉬었다면 그림자도 없어지고 너도 편했을 텐데.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나 몰라. 안 그래, 친구야?”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나요?


저는 <천하> 편을 우정의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동시대 살았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마이너리티 사상가에 대한 우정 말입니다. 제가 여태까지 쓴 글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에 대한 우정의 글쓰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장자 안에서, 평화와 평안을 누리길 바랍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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