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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12. 2024

장자를 달린다 : 마치며

나중에 쓰는 서문

벽돌처럼 두꺼운  《장자》를 통째로 읽기는 웬만한 결심이 아니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장자》 내편 7편을 읽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장자의 이야기는 내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외편과 잡편을 포함한 33편 전체에 걸쳐 장자의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흥미진진하고 짜릿하고 아찔하고 박장대소할 장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장자를 달린다》 입니다. 달리는 말을 타고 장자라는 거대한 산을 한 번 달려보는 것입니다. 비록 주마간산(走馬看山)격이지만, 장자 전체를 조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기획한 것을 브런치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 2022년 7월 19일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연재하여 33주, 개월로는 8개월이면 완성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런데 2023년 1월로 연재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2024년 3월에 와서 다시 시작합니다. 이후 하루에 한 편씩 연재했습니다. 그달에 연재를 마쳤습니다.  이렇게 쉽게 끝낼 수 있었는데, 연재와  다시 연재 사이에 1년 넘는 기간이 비어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장자를 달린다》 연재만 멈춘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다짐하며 용을 써도 글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글을 써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마음이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인생 최고의 고비, 슬럼프에 빠진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발생했던 파도가 점점 커져 거대한 해일이 되어 나를 덮친 것입니다. 정성들여 벽돌집을 만든 줄 알았는데, 벽돌집이 아니라 모래성이었습니다. 10년 넘게 운영했던 작은도서관의 문을 닫았습니다. 계약했던 모든 책도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슬럼프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어봐야 소용없었습니다.


닥치고 전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습니다. 상처입은 동물이 동굴을 찾듯, 몸과 마음을 다친 인간은 쉼과 치유가 필요합니다. 이전의 삶을 모두 내려놓고 가파도로 내려왔습니다. 글을 쓰려고 내려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파도 매표소 직원으로 취직했습니다. 일상적인 밥벌이를 마련했습니다. 파도와 바람, 갈매기와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그것들이 나를 쉬게 했습니다. 아주 평범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하루 세 끼 밥 챙겨먹고, 하루 한 시간 이상 걷고, 하루 6시간 이상을 푹 잤습니다. 자전거를 얻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일기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독서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낸 지 3개월, 몸과 마음이 회복되었습니다. 멈췄던 연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봇물처럼 글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슬럼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연재를 끝내고 지난 글들을 다시 천천히 읽기 시작합니다. 나의 과거가 슬라이드처럼 펼쳐집니다. 무엇에 그리 쫒기고 살았는지, 무엇에 그리 얽매여 살았는지, 무엇에 그리 갇혀 살았는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애쓰며 몸부림치는 제가 보입니다. 어두움에서 벗어나려 그림자와 경주를 했던 제 모습이 보입니다. 그림자와의 경주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림자가 바로 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도 저도 쉴 수 있었습니다. 가파도는 저에게 그런 그늘이 되어 주었습니다. 장자의 이야기를 연재하다가 ‘그림자의 비유’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두운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애면글면하던 내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나를 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馬]은 명마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자유롭게 풀을 뜯고 달리고 쉬고 짝짓고 사랑하며 살려고 태어난 것입니다. 천천히 걷기도 하고, 빠르게 질주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을 잡아다가 경주마로 길들입니다. 평생을 질주하는 말로 훈련시킵니다. 경주마는 자신의 운명이 그런 거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 말은 달리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평생을 경주마로 훈련되다 보니 달리기만을 했던 내가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경주 트랙에서 벗어나 광야로 가야겠습니다. 편안히 누워 쉬기도 하고, 천천히 풀 뜯으며 풍경을 즐기기도 하고, 심심하면 빠르게 달려보기도 하고, 주변에 좋은 짝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래도 됩니다.     

 

장자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디에 얽매여 있지도, 남들을 위해 질주하지도, 높은 곳에 오르고자 남들을 짓밟지도 않았습니다. 인생이 불안하여 많은 것을 축적하지도, 남의 것을 빼앗지도 않았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인생을 소풍처럼 즐기며 살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멋진 장자를 소개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여러분도 자유를 즐길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2024. 3월 가파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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