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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09. 2024

고양이 : 마당 고양이들

2024. 3. 9.

마당에 고양이 급식소가 2군데 있고, 겨울철 추위를 피하라고 보일러실에 임시로 마련한 급식소가 생겨 우리집에 급식소가 총 3군데가 생겼다. 가파도에서 급식소를 3군데 운영하는 집은 아마도 우리집에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보일러실에는 지난해 여름에 돌봤던 감자와 그 새끼 카레가 아예 입주하여 살고 있다. 밤중에 작은 일을 보려 보일러 실에 들어가면, 반짝이는 눈동자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는데, 이제는 없으면 걱정이 된다. 마당에 사료가 떨어져 새로 채워주면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동네 고양이들이 삼삼오오 마당으로 몰려온다. 가득 채워진 사료가 하루도 채 안 되어 비어지는 날이 많다. 평소에 2푸대를 받아 꽤 오래 급식을 했는데, 고양이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푸대가 금세 홀쭉해진다.

경제가 어려워지니 가파도 고양이들에게도 영향이 미치나 보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고양이들도 원정을 온다. 고양이들은 영역동물이라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고양이들과 영역을 차지하고 있던 고양이들의 싸움이 무섭다. 소리로 위협하고, 사라지지 않으면 결투도 불사한다. 하지만 우리 마당을 지키고 있는 감자는 몸집도 작아서 결투에서 매번 이기는 것은 아니다. 감자가 너무 당하고 있다 싶으면 내가 나서서 다른 고양이들을 쫒아내지만, 매번 싸움에 개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날 집에 가보니, 감자가 창고 위 물통에 올라가 있었다. 다른 고양이를 피해 대피한 것인가? 그 후로는 창고 위 뿐만 아니라 지붕 위로 돌아다닌다. 물론 고양이들은 높은 곳을 좋아한다. 넓은 영역을 감시할 수도 있고,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고양이 타워를 설치하는 이유도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의 습성을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내 마당에 들어오는 고양이들을 웬만하면 내쫒지 않고 방치하는 편이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먼곳에서 원정을 왔을까 싶고, 사료가 떨어졌으면 모르겠지만, 공급할 사료가 아직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에서 크지 못하고 마당이나 거리로 나온 고양이들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짧은 묘생을 사는 동안, 그나마 배곪지 말고 살기를 바란다.


자기 영역이 아닌 곳에 방문하는 고양이들의 습성이 있다. 무리지어 몰려왔어도 한꺼번에 급식소로 와서 사료를 먹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씩 식사하고 다른 고양이들은 주변을 경계한다. 만약에 그 영역을 지키는 고양이가 오면 재빨리 달아나려는 것이다. 내가 다가가면 먹는 것을 중단하고 모든 고양이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래서 이후로 다른 고양이들이 와 있으면 될 수 있는대로 움직임을 자제한다. 가만히 서있거나 의자에 앉아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이러나저러나 사는 일이 쉽지는 않다. 남의 눈치도 봐야하고, 배불리 먹는 것도 여유롭지 않다. 가끔 털도 지저분하고 마른 고양이를 보면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지, 너무 굶은 것은 아닌지 안쓰럽다. 습식사료라도 주고 싶지만, 그나마도 여유롭지 않아 못 줬는데, 이번에 쿠팡으로 200개의 습식 츄르를 시켰다. 아픈 고양이들은 건식사료도 제대로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당 고양이를 맞이할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다. 얘들아, 배고프면 우리 마당으로 오거라. 제발 살아만 있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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