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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퍼즐

2024. 2. 27.

by 김경윤

드디어 지난여름 내가 돌보던 검은 점 어미 고양이 비비자를 찾았다. 다른 고양이들은 모두 찾아서 사진을 찍어 뒀었는데(2월 5일 자 일기), 마지막 퍼즐인 비비자를 찾은 것이다. 나를 보면 항상 주변을 맴돌면서 몸으로 나에게 비벼댔던 비비자를 찾은 것이다. 검은 점박이 고양이는 많이 찾았지만, 비비자는 아니었다. 비비자는 꼬리가 잘린 고양이다. 왜 잘렸는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가파도에서 꼬리가 거의 완전히 잘린 고양이는 비비자가 유일하다.

작년 여름 내가 돌봤던 고양이 가족. 젖을 물리고 있는 어미 고양이가 비비자다.

고양이에게 꼬리는 그냥 장식물이 아니다.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균형대일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감정선이다. 꼬리를 치켜세우면 경계를 나타내거나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꼬리를 말면 겁을 먹었거나 편안하다는 표현이다. 밥을 먹을 때도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사주경계를 한다. 꼬리로 비비면 친근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게다가 꼬리는 미학적으로도 고양이의 매력을 드러내는 도구이다. 그러니까 비비자는 인간으로 치면 다리가 하나 잘린 것과 같은 처지인 셈이다.

그럼에도 자식을 의젓하게 키우고, 살뜰히 보살피는 비비자에 대해서 나는 적잖이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고양이들은 모두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는데, 비비자만 안 보여 혹시 죽었나 걱정했었다. 그런데 마침내 비비자가 우리 마당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너무도 반가워 팔을 활짝 벌리며 '비비자!'하고 소리쳤다. 그런데 비비자는 나를 보자마자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아이고, 내가 개를 대하듯이 대했구나.) 고양이는 주위를 경계하는 것이 일상사다. 아무리 길들여도 그 야생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비자가 도망간 것은 당연한 반사운동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시 비비자가 찾아왔다. 주변에 식량이 있는 곳은 우리 집밖에 없었나 보다. 이번에는 모른 채 했다. 주변을 맴돌다가 드디어 보급소에 있는 사료를 먹기 시작한다. 나는 아련한 마음으로 비비자를 쳐다봤다. 내가 기척이라도 하면 다시 도망가 버릴까 봐 숨소리도 조심하면서 얼음땡으로 비비자를 바라보았다. 습식 사료라도 먹이고 싶었지만, 움직이면 도망갈까 봐 집안으로도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사진을 찍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사진 모드로 바꾸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비비자를 사진에 남겨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싶었다.


결국 몇 장의 사진을 건졌지만, 비비자는 나는 알아보지 못하고 배를 채우고 쌩하니 달아나 버렸다. 다른 고양이들은 가끔 보이기도 했는데, 비비자는 왜 오지 않았던 걸까? 어디서 지내나? 마치 헤어진 연인을 우연히 길에서 만난 것처럼, 비비자의 일상생활이 궁금해졌다. 다시 오겠지? 다시 만나면 맛있는 참치캔을 까줄 테니까 우리 꼭 보자!

이산가족을 모두 만난 것 같은 뿌듯함이 가슴에 차올랐다. 그래 이제 다 찾았다. 내가 지난여름 돌보던 나의 고양이 가족들. 제발 살아있어라. 힘들면 나에게 오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는 척 좀 해주라.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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