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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래서 쓴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비트윈, 2023)

by 김경윤

문학은 진실을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진실이 일어나는 공간입니다. 왜 글을 쓰느냐는 질문에 '나는 죽을 목숨이기 때문에 글을 씁니다"라는 대답이 의도한 효과를 확보하고 우리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지려면, 이 말이 행해지는 공간이 먼저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의 본질입니다. 즉 글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가 이야기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10~11)


나는 이처럼 정체성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일치하는 동시에 여전히 임의적이라는 바로 이 점이 예술과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문학은 현실과의 끊임없는 '협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질적이고도 물리적이면서도 끝없이 복잡한 세상과 그로부터 비롯된 정체성 및 문화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교류를 표현합니다. (17)


사고와 감정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어슐리 르 귄의 아동문학 고전을 읽고 처음 경험했듯이 독서에서는 정확히 그 반대 상황이 일어납니다. 이들 둘은 함께 옵니다. 독서는 사고를 하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28)



나는 이 책을 왜 골랐나? 작가의 유명세 때문에? 작가는 <나의 투쟁>을 쓴 노르웨이의 최고 작가이기는 하다. 책을 읽으면서 알라딘에서 찾아본 저자 이력은 이렇다. "이 작가는 노르웨이의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Karl Ove Knausgård)입니다. 그의 데뷔작 《세상 밖(Out of the World)》으로 1998년 ‘노르웨이 비평가 상(The Norwegian Critic’s Prize)’을 받았고, 등단과 동시에 이 상을 받은 최초의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나의 투쟁(My Struggle)》은 총 여섯 권으로 출간되었으며, 첫 권이 2009년에 발표되자마자 노르웨이 문학계의 최고 영예인 ‘브라게 상(Brage Prize)’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출간된 나라들마다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잔혹할 정도로 솔직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크나우스고르의 작품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내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의 독창적인 작업 방식과 솔직한 글쓰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저자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면 책이 얇기 때문에? 95쪽짜리 소책자니 얇기는 얇다. 하지만 얇다고 골랐다면 차라리 시집을 고르리라. 이 책이 얇은 이유는 강연내용을 출간했기 때문이다. "2017년 예일대학교는 문학상인 윈덤캠벨상 Windham-Campbell prize 수상식에서 기조 연설자로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를 초청해서 ‘나는 왜 글을 쓰는가 Why I write’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책은 그 강연을 옮긴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래서 쓴다>라는 제목이 도발적(?)이었다. 요즘처럼 글쓰기에 힘든 시기에 이 책은 나에게 '너는 왜 글을 쓰는가?"라고 질문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딱히 제목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도서관에 가서 무심히 책꽂이 살피다가 문득 책이 보였고, 책에 손이 갔고, 읽어보고 싶었고, 그래서 대출했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운 답이리라.


그렇게 이 얇지만 도발적인 책은 나에게 왔고, 나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 이부자리에 기대어 읽기 시작했다. 이내 일어나 앉았고, 커피를 새로 탔으며, 정신을 차리고 밤늦게까지 찬찬히 읽어나갔다. 저자는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였는데, 책의 내용은 좌절과 절망으로 가득한 글쓰기 시절의 이야기가 넘쳐났고,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른 채로 무작정 글을 써 내려갔던 흑역사가 있었으며, 동료들에 비해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자괴감으로 글쓰기를 수없이 포기했던 경험이 기록되어 있었다. 대작가의 루저시절(?)을 읽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남의 불행을 위로의 재료로 삼는 것만큼 한심스러운 일도 없지 않은가. 이 책은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글쓰기로 유명한 크나우스고르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듯 진솔한 모습으로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 역시 감추지 않은 채 세상에 없던 방법으로 글을 쓰고 있는 자신만의 여정을 파헤쳐 보인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글쓰기를, 방식과 태도를 '그 때문은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부정하면서 이유를 찾아가는 작가의 글쓰기가 정말 매혹적이다.


책(연설) 말미에 그가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 책의 마지막을 보자.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그 무엇보다도 바로 '자유로움'이었습니다. 만일 내가 이 방식을 택한다면, 만일 내가 나 자신의 실명으로 나 스스로가 경험한 일들을 그대로 써 내려가기만 한다면, 문체나 형식, 문학적 의미나 인물을 비롯해서 목소리 톤이며 거리감에 대한 모든 걱정이 마치 단번에 사라지는 듯했고, 불현듯 소설의 문학적인 측면이란 다만 허구에 불과하며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나는 그저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갑작스러운 자유로움만 힘을 발휘한 것은 아니었고, 또한 결코 들어본 적도 없었던 뭔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금단 forbidden'이었습니다.

나는 소설가였고, 소설을 썼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일 나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소설의 일부로 위장되어야만 했습니다. 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소설가로서의 나에게 허용된 가능성 중에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이것을 포기한다면 그 이야기는 더 이상 문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89~90)


새벽에 마침내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그래,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을 만들자. 그리고 현실의 나와는 다른 작가도 만들자. 그래서 그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독후감의 핵심이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많지만 여기서는 생략! 영업비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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