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등문공 하> 9장에 보면 맹자의 제자인 공도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바깥에서 선생님더러 논쟁을 좋아한다고 수군거립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그러자 맹자가 대답하지요. “내가 논쟁을 좋아한다고? 시대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싸운 것이다.”
그러면 맹자와 대결했던 사상가들은 누가 있는지 확인해 볼까요?
1. 양주와 묵적 비판
“양주와 묵적의 주장이 온 세상에 가득 찼다. 온 세상의 주장이 양주에게로 귀결되지 않으면 묵적에게로 귀결되었다. 양주는 ‘나를 위하자!’는 이기주의를 외쳤는데, 그러면 군주를 부정하게 된다. 묵적은 나와 남을 동등하게 사랑하자는 이타주의를 외쳤는데, 그러면 아버지를 부정하게 된다. 아버지와 군주를 부정하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등문공 하> 9)
맹자는 공자의 뒤를 이어 유학을 주장했는데, 유학의 기본은 군주와 아버지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으려면 군주가 있어야 학고, 가정이 있으려면 아버지가 있어야 기본적인 규칙과 제도가 마련된다고 생각한 유학자 맹자의 입장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양주의 입장과 무차별적 사랑을 주장하므로 가족의 질서를 파괴하는 묵적의 입장이 달갑지마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유학을 전파하고자 세상에 나가보니 온 세상이 양주와 묵적의 주장을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최대의 적을 만난 셈이지요. 그래서 맹자는 틈만 나면 그들을 비판했어요. 짐승의 사상이라고요.
2. 농가 비판
맹자가 등나라로 가서 등문공의 정치를 돕자 등문공이 어진 정치를 펼친다는 소문을 듣고 사방에서 많은 무리들이 몰려왔습니다. 그중에는 농사의 신인 신농씨를 따르는 농가사상가 허행과 일행들이 있었지요. 그들은 모든 사람을 농사를 지어야 하고, 자급자족하는 공동체생활을 해야한다고 주장했지요. 문제는 그 모든 사람 안에는 임금이나 신하까지도 포함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지위와 역할을 무시하는 처사였죠. 그러자 맹자는 말합니다.
“국가를 관리하는 일이 농사를 지으면서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냐? 관리가 해야할 일이 있고 백성이 해야할 일이 있다. 한 사람에게는 각종 기술자들이 만든 물건이 모두 필요하다. 만약에 모든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해야 한다면, 이는 사람을 이리저리 이끌어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정신노동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육체노동을 한다. 마음을 쓰는 사람들은 남을 통치하고, 육체를 쓰는 사람은 통치를 받는다. 통치를 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통치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에 의지해 살아간다. 이것은 천하 어떤 곳에서든 공통된 원칙이다.” (<등문공 상> 4)
신분제도를 옹호하고,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맹자에게는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농가의 사상이 마뜩치 않았을 겁니다. 몸을 쓰는 백성과 마음을 쓰는 군주나 지식인들은 다르다고 본 것이지요.
3. 종횡가 비판
외교를 통해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고 본 사상가를 종횡가라고 합니다. 소진과 장의라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맹자》에는 경춘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이 맹자를 만나 공손연과 장의를 예로 들어 이들이야말로 천하의 대장부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맹자가 보기에는 종횡가라는 자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 임금 저 임금 기웃거리면서 임금의 환심을 얻으려는 자들로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한 임금에게 충성해야하는 것이 도리인데, 여러 임금을 한꺼번에 섬겼으니까요. 그것은 바른 길이 아니라고 여겼지요. 맹자는 진짜 대장부를 이런 사람이라고 외칩니다.
“천하라는 넒은 곳에 거하고, 천하의 바른 곳에 서고, 천하의 큰 길을 걸어간다. 뜻을 얻으면 만천하의 백성과 더불어 바른 길을 실천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라도 그 바른 길을 걸어간다. 부귀도 그를 타락시킬 수 없고, 가난도 그를 비굴하게 만들지 못하며, 위력과 무력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대장부다!” (<등문공 하> 2)
4. 성무선악설 비판
맹자가 제나라에 있을 때 여러 사상가들과 토론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고자라는 분과 논쟁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맹자》에서도 아예 <고자>라는 편명을 만들어, 전반부에 이 논쟁을 소개하고 있어요. 이를 본성논쟁이라고 하는데요. 고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성무선악설’을 주장했고요, 맹자는 인간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다는 ‘성선설’을 주장했어요. 논쟁은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졌는데, 가장 유명한 논쟁은 물을 비유로 들어 본성을 논쟁한 부분이지요.
고자는 말합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여울목에 고여있는 물과도 같습니다. 이 물길을 동쪽으로 트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흐르지요. 이로 미루어보자면, 인간의 본성은 본시 선하다 선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맹자는 반박하며 말합니다. “물이 동서를 가리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옳습니다. 하지만 물의 흐름이 상하의 구별이 없을까요? 물은 본래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은 것이 없고, 물의 본성은 아래로 흐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고자 상> 2)
사실 이 논쟁은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성격의 논쟁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이외에도 수많은 논쟁이 가능하니까요. 예를 들면 인간에 본성에는 선함과 악함이 같이 있다고 볼 수도 있고요. 선하게 태어나는 인간이 있는가하면 악하게 태어나는 인간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후대에 맹자를 비판한 또 다른 유학자 순자처럼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왜 맹자는 유독 인간이 본성이 선하다고 말했을까요? 만약에 인간에게 선한 가능성이 없다면 교육도, 수양도, 정치도,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사상도 그 근거를 잃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착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마음을 더욱 확대하여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펼쳤지요.
5. 병가 법가 비판
양주와 묵적이 백성들이 환호하는 사상가들이었다면, 전국시대에 군주들은 강력한 법으로 군주에게 힘을 실어주는 법가와 강한 군대를 양성하여 전쟁에서 승리하자는 병가 사상가들이었지요. 이들은 부국강병론을 주장하면서 패도정치를 주장했어요. 맹자가 만난 강대국의 양혜왕이나 제선왕 역시 맹자의 사상보다는 이들의 사상을 선호했어요. 맹자는 이들을 대역죄인이요, 민적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전쟁을 잘 한다’라고 말하는 자는 큰 죄를 저지른 것이다. 정의로운 전쟁은 많은 군사가 필요치 않다. 바르게 때문이다.” (<진심 하> 4)
“‘나는 군주를 위해 토지를 개간하고 조세를 잘 거둬들이고, 국고를 가득 채울 수 있다.’ 오늘날 소위 좋은 신하란 자들은 옛 성왕의 기준으로 말하면 백성을 등쳐먹는 민적들이다.”(<고자 하> 9)
맹자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나라는 군사력으로 남을 정복하는 나라가 아니라 사랑과 정의의 실천으로 자기 백성들을 풍요롭고 즐겁게 만드는 나라였습니다. 이는 공자로부터 이어져온 유학의 큰 흐름이었지요.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지키고 더욱 발전시키기를 바랐어요. 자신이야말로 공자의 뒤를 잇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