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지음 (위스덤하우스, 2025)
장자는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설합니다. 이야기가 장자에게는 자신의 철학을 설하는 주된 표현법이면서 또 철학 자체의 특성을 알게 해 줍니다. 그래서 저는 <장자>를 읽을 때 우선 <우연> 편부터 읽습니다.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하고, 또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논변하는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논변하는 사람보다 크고 굵은 사람입니다. 크기와 굵기를 보통 '함량'이라고 합니다. 보통 말하는 '덕'과도 매우 가깝습니다. (121쪽)
이야기하는 사람이 논쟁하는 사람보다 함량이 큽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시를 읊는 사람이 함량이 더 큽니다. 시를 읊는 사람보다 소리를 다루는 사람이 함량이 더 큽니다. 소리를 다루는 사람보다 몸을 다루어서 춤을 추는 사람이 더 함량이 큽니다. 이것이 덕의 크기이고, 함량의 크기이고, 시선의 높이입니다. (123~4쪽)
1.
인문학 강의를 들은 선배가 나에게 충고해 줬다. 동서양 철학 좌판벌이듯 강의하지 말고, 동양철학 빨랫줄 늘리듯 강의하지 말고, 한 두 개의 주제(책)로 집중해 깊이와 두께를 쌓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솔직하게 무엇에 집중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선배 왈, 장자와 노자!
이후로 5년 가까이 장자와 노자에 집중해서 글도 쓰고. 강의도 하고, 책도 썼다. 아직도 읽고 싶고, 쓰고 싶은 것투성이고, 공부하고 하고 싶은 것이 넘쳐난다. 그중 읽고 싶은 책 한 권이 새롭게 출간됐다. 최진석의 신작이다. 최진석 교수도 노자와 장자에 꽂힌 사람이다. 나와 나와바리(^^)가 겹친다. 그래도 나보다 내공이 높기에 기꺼이 머리를 수그리고, 새로 산 책에 밑줄을 그으며 읽는다.
2.
노장 철학 하면 놀고먹는 철학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차라리 유학을 공부할 걸 싶다. 유학은 명료한 이론과 분명한 태도를 취해 공부하기 수월(?)하다. 하지만 노장 철학은 애지간한 내공이 없으면 어리둥절하고 애매모호해 보인다. 그래서 더욱 자세히 공부하고 켜켜이 내공을 쌓아야 한다. 노장 철학이 해석이 분분한 것은 바로 그 내공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최진석이 말하는 '함량'이다.
아무리 공부해도 '함량 미달'을 절감한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그래서 읽고, 생각하고, 쓰고, 또 읽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 꾸는 꿈, 도모하는 일에 맞는 두께를 갖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눈이 높으면, 거기에 맞는 두꺼운 내공을 쌓아야 하죠. 눈은 높은데, 거기에 맞는 내공의 두께를 쌓는 일에 게으른 사람은 신도 구제할 수 없습니다." (228쪽)
3.
노장을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노장을 사는 사람이 있다. 물론 노장에 빠져 공부하다 보면 노장을 닮아가기도 한다. 나는 노장을 공부하고 노장을 닮고 싶다. 생각하는 방식뿐 아니라, 사는 방식도 배우고 싶다. 그래서 좀 더 활력 있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중년 이후 계속 노장을 공부하는 이유이다.
"자신의 시간을 살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비교에 빠지고, 남이 좀만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도 조바심이 나거나,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조금만 앞서는 것처럼 느껴지면 바로 우쭐댑니다. 다 자신의 삶을 어렵게 하거나 망가뜨리는 태도입니다. 그들도 그들의 시간을 살고, 나도 나만의 시간을 살뿐입니다. 집단적으로나 습관적으로 정해진 시간대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그것에 평가받으면 우고 웃을 일이 아닙니다. 자신만의 시간대를 당당하게 살면서 주위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자쾌'와 매우 비숫해 보입니다." (64쪽)
4.
강의를 하기 위해 고양을 오가며 책을 다 읽었다. 멈춰 있을 때는 밑줄을 긋고, 움직일 때는 종이를 접었다. 책을 다 읽으니 꽤 많은 표식이 있다. 다음번 강의가 <맹자>인데, <장자>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겠다. 세상의 버릴 공부 하나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