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vs 루소 1 : 시대와 생애

- 인성론의 탐구, 선함이란 무엇인가?

by 김경윤
동서양 철학자를 비교하는 강의를 녹취하여 저장해두었습니다. 이 녹취록을 공개합니다. 맹자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보조선으로 루소를 선택했습니다. 동서양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 1교시 : 맹자와 루소의 시대와 생애


이번 강의는 원론적인 주제, 인성론과 관련해서 동서양의 철학자 두 분을 비교하려고 합니다. 동양에서 성선설과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철학자는 맹자겠죠? 이건 중딩도 알아요, 맹자하면 성선설. 그 다음부터는 몰라요. 서양에서는 장 자크 루소가 성선설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사실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나서 두 사람 사이에 접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으니까 그런 것을 유의하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선 정통적인 방식으로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 그리고 철학자의 삶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동양의 전국시대와 서양의 계몽주의 시대

맹자(孟子, BC 372~BC 289)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맹자는 마찬가지로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03~BC 221) 사람입니다. 한비자보다는 두 세대 선배라고 보면 되지요. 한비자가 순자의 제자라고 알려졌는데 맹자는 순자보다 앞선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전국시대 중기에 활동했던 철학자라고 보면 됩니다. 이 시기의 특성은 패도정치(覇道政治)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패도(覇道)라는 것 자체가 힘과 관련이 있습니다. 패권을 다투다, 무력과 관련이 된 시대이구요, 무력이나 형벌로써 사람들을 다스리고, 그 무력으로 자기네 나라를 지배함과 동시에 그 무력으로 약한 나라를 침략해서 병합하는 시대가 패도정치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패도정치의 시대에는 민초의 삶은 더욱 곤고해지고 살기 어려워집니다. 군주 입장에서 보자면, 강한 힘을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면 세상이 쉽게 다스려질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가령 강력한 경찰이 쭉 경비를 서고 있으면 사람들이 나쁜 짓을 못할 것 아니예요? 요즘엔 곳곳에 CCTV가 있어가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동이 위축되기도 하고. 예전에는 엘리베이터 올라올 때 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나 보기도 했는데, 요즘엔 우선 CCTV가 있나 없나 확인해보기도 하고, 혹시 누가 나를 감시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행동이 위축되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무력이라고 하는 것은 보이는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게 내재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행동을 굉장히 위축시키게 됩니다. 바로 맹자의 시대가 그러한 시대인 것이죠.


또한 이 시대가 전국시대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전쟁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시대입니다. 어저께 있었던 나라가 사라지고, 어저께 내 땅이었는데 오늘은 남의 땅이 된다든지 하는 일들도 자주 일어나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맹자는 패권, 다시 말해 무력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단시간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는 세상을 제패할 수 없다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자기의 사상을 돌아다니면서 선전하고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사상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열심히 자기의 믿음을 따라 살았던 분이었습니다.


한편 서양의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경우에는 계몽주의 시대, 다시 말하면 근대가 막 형성되던 시대였죠. 계몽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재미나는 말이에요. 계몽(啓蒙), 영어로는 이렇게 써요, enlightenment. 라이트(light)는 알죠? 빛이잖아요. 무지의 상태, 암흑의 상태에 이성의 밝은 빛을 비춤으로써 무지와 암흑을 없애고 밝은 상태에 도달하게 하는 것, 무지몽매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계몽의 사전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계몽의 시대에는 뭔가 어둠의 시대를 전제해야지만 계몽을 말할 수 있잖아요? 그 어둠의 시대가 바로 중세예요. 우리가 보통 중세를 암흑기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이성이 억압당하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가 유럽 사회를 지배해서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탄압을 당하고, 마녀사냥이라든지, 철학자들 중에서도 무신론자 같은 경우 화형을 당한다든지 하는 시대가 암흑의 시대이고, 암흑의 시대의 사회적 기반이 봉건제였어요. 봉건제는 주나라의 제도잖아요? 그런데 서양에도 봉건제가 있었어요. 왕을 중심으로 기사가 있고, 아더왕 같은 경우 아시죠? 왕 아래 기사가 있고, 기사가 다스리는 땅 봉토가 있고, 그러니까 기사는 땅을 얻고 충성을 다 하고, 전쟁을 하고. 중세가 바로 그런 시대였습니다.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는 왕을 중심으로 정치적 지배가 이루어지고, 종교적으로는 교황이죠. 기독교 교황을 중심으로 지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람들은 신앙심을 가지고만 평가해 보자면 굉장히 안정적으로 살았어요. 왜냐하면 자기의 믿음이라고 하는 게 굳건하잖아요. 광신이나 맹신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이 세상을 일목요연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만약에 자신에게 불행이 닥쳐온다, 그러면 아, 이 불행은 하나님이 나를 벌하신 거야. 자기에게 행운이 닥쳐온다, 그러면 이 행운은 내가 어떤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상을 주시는 거야, 심지어는 어떤 종교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한테 다가오는 불행에 대해서도 위안을 얻어요. 팔 하나 잘려도 야, 팔 두 개 안 잘린 게 다행이지 뭐야? 하면서. (웃음) 굉장한 자기 위안법이죠. 다리 두 개 날아갔는데 목숨은 건졌네? 뭐 이런다든지. 그런 의미에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사태를 낙관적으로 볼 수가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종교를 가지고 권력으로 휘두르는 사람들이 문제죠. 백성들을 무지몽매한 상태로 떨어뜨려놓고 그들을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바로 봉건적인 사회였던 것이죠. 그래서 중세 말엽에 성직자들이 천국 티켓이나 죄를 없애는 티켓을 판매한다든지, 심지어는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처녀의 초야권을 먼저 영주가 행사하고, 신부가 처녀인지 아닌지 확인한 다음에 시집을 보낸다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자행되었던 시대가 중세였죠. 그러한 무지의 시대에 최고의 이론적 근거가 신이었다고 한다면, 신을 통해 세상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세상을 보려고 했다는 점에서 근대는 중세와는 다른 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근대의 이성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힘, 게다가 르네상스를 통해 인본주의적인 사상도 복원되고,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의 경제력과 사회의 물적 토대가 발전하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루소는 ‘나’를 중심으로 인간이 세상을 마음껏 변화시킬 수 있구나하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강력했던 시대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루소란 사람은 그러한 계몽주의 시대,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박수를 친 게 아니라, 오히려 물음표를 던졌어요. 이것은 당시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거의 유일무이한, 전부 다 이성에 대해 이야기하던 시절에 이성에 대해 의심했던 사상가가 바로 루소라는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맹자는 전국시대, 루소는 근대. 천년 넘게 차이가 나지요. 그런데 이 둘을 인간은 선하다는 성선설에 입각해서 하나로 묶어 본 것입니다. 오늘의 큰 타이틀은 ‘인간은 선한가?’라는 질문입니다.


맹자의 생애. 특급 재야 정치인

세부적인 사람의 삶을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전국시대의 맹자부터. 맹자는 중국 산둥성 근처 추(鄒)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추나라라는 나라는 처음 들어보시죠? 얼마나 작았으면 처음 들어보겠습니까. 노(魯)나라는 아십니까? 공자가 태어난 나라가 노나라예요. 노나라 밑의 조그만 나라가 추나라입니다. 거기서 맹자가 태어났어요. 그런데 귀족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잘 나가는 귀족이 아니라 몰락한 귀족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냥 그렇게 살았겠죠. 어쨌든 귀족의 신분으로 태어났습니다. 문제는 뭐냐면 아버지가 일찍 죽었다는 거예요. 공자도 세 살 때 아버지가 죽잖아요. 맹자의 삶은 공자의 삶과 묘하게 일치하는 게 많아요. 여러분이 잘 아시겠지만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아시죠? 맹자 엄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서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인데요, 맹자는 어머니 혼자서 키웠다는 거죠. 공자 엄마도 혼자 고생하며 공자를 키웠는데, 맹자 엄마도 맹자를 혼자서 훈육시킨거죠. 맹자 엄마는 환경결정론자였나 봐요. (웃음) 지금으로 치면 아마 맹자를 강남 8학군으로 이사시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극성스러운 엄마였는데, 맨 처음에는 시장 같은데서 살았나봐요. 그랬더니 어린 맹자가 시장바닥 사람들 구경하면서 골라 골라 싸요~ 이런 걸 따라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안 되겠다, 이렇게 커서는 기껏해야 장사꾼밖에는 안 되겠구나. 그래서 이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장례 치르는 집 옆으로 갔나 봐요. 그랬더니 아이고 아이고~ 하는거야. (웃음) 여기도 물이 안 좋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사 했던 곳이 서당 옆이었다고 해요. 그랬더니 글 읽는 소리 듣고 맹자가 글 읽는 걸 따라 했다고 하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물론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이 이야기를 써놓고 있습니다. <사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중국의 역사서잖아요? 그러나 사마천이 일일이 다 보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자기가 볼 수 있는 건 확인하고, 볼 수 없는 것은 여러 가지 문헌들을 모아가지고 종합하거든요. 그 종합하는 과정에서 사마천이 굉장히 창작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사마천의 역사서를 굉장히 권위 있는 역사서로 평가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마천이 너무 뻥이 심했다라고 평가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으면서 이게 사실로서의 역사라고 보시면 좀 곤란해요. 역사에 소설이 살짝 가미되어 있는, 유학자의 시선으로 쓴 역사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쨌든 맹자 엄마는 아주 극성스럽게 아이를 키웠나봐요. 그런데 어느날 맹자가 공부를 때려 치우고 돌아왔더니 엄마가 천을 짜다가 맹자 보는 데서 천을 칼로 확 잘랐다는 거예요. 맹자가 왜 이러시냐고 했더니 내가 이 천을 짜다가 확 자르면 팔 수가 없는 것처럼, 네가 공부를 하다가 도중에 그만두면 너는 제대로 된 인간이 될 수 없다고 해가지고 맹자를 다시 학원을 보냈다고 하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지죠. (웃음) 맹모단기(孟母斷機)의 고사에요. 이로 미루어볼 때 맹자 엄마 성격이 아주 어마어마한 여자예요. 엄모시하(嚴母侍下)! 엄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맹자가 어떤 성격을 갖게 될지는 참 궁금해요. 만약에 그 당시에도 심리학자가 있었다면 맹자의 심리를 굉장히 재미있게 분석하지 않았을까요? 궁금해요. 흥미진진할 것 같아요. 혹시 심리학 전공하신 분 계시면 사마천의 사기라든지 그런 책 보시면서 심리적으로 이 사람은 이런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걸 써서 책으로 내시면 대박! 저는 열 한권의 책을 냈지만 대박난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웃음) 대박 날 때까지 쓸 거예요. (웃음) 그런데 만약에 이런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심리학과 접목해서 딱, 내가 보기엔 될 것 같아요. 대박 날 것 같아요.


어쨌든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구요, 언제인지는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지만 맹자가 제나라로 유학을 갔어요.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었던 거지요. 맹자의 사상은 혼자 독방에 앉아 공부한 것 보다는 전국을 다니면서 유명한 사상가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무르익어갔다고 보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하고는 달라요. 공자는 노나라에서 쫓겨나서 전국을 돌잖아요? 맹자는 쫓겨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전국을 돕니다. 문제는 공자는 쫓겨났기 때문에 승용차가 한 대 밖에 없어요. 공자시대에 승용차는 마차죠, 수레. 이 마차는 귀족밖에는 탈 수 없는 거예요. 공자가 노나라때 한번 높은 지위에 올라가잖아요. 대사구라고 하는, 지금으로 치면 법무부장관에 해당하는 지위에 올라가거든요. 법무부장관쯤 되면 왕이 자동차 한 대 쯤 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자동차 한 대, 수레를 준 것이죠. 수레를 타고 돌아다니는데 마지막에 노나라에서 쫓겨날 때는 월급도 못 받고 땅도 도로 반납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수레는 반납을 안 해도 되었나봐요. 어쨌든 공자가 이 수레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몰라요. 제자가 죽어 장례를 치루려고 해도 수레를 부수지 못하게 해요. “관을 짜야겠는데 관이 없는데 수레를 부수어서 관을 짜면 어떨까요?” 하니까 “안 된다, 내가 이걸 부수면 어쩌겠느냐, 나의 근거가 사라진다.”고 거부하지요. 심지어는 아들이 죽었어도 수레를 못 부수게 해요. 당시로 치면 수레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지표였던 셈이지요.


그렇게 공자가 수레 한 대로 돌아다녔다면, 맹자는 장난이 아니예요. 수레가 기본적으로 열 대가 넘어요. 수레가 열 대면 그 뒤에 따라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어요. 엄청 나겠죠? 그러니까 공자의 이동 모습과 맹자의 이동 모습을 상상하시면 굉장히 큰 차이가 나요. 공자는 나라에서 쫓겨나서 초라한 행색으로 헐벗은 제자들이 따라다녔다면, 맹자는 완전히 세팅된, VIP에 가까운, 수레가 열 대 넘고 뒤로 추종자들이 백 명 되는 행렬로 돌아다녔어요. 그렇다면 맹자를 초청한다는 것은 그 수레 열 대와 백 명의 사람들을 먹여 살릴 생각을 하고 초청해야 하는 거예요. 공자는 자기가 찾아다녔지요? 그런데 맹자는 초청하지 않으면 안 갔어요. 맹자는 누가 자기를 불러 줘야지만 갑니다. 불러 줬을 때 혼자 가지 않고 완전히 까만 세단 열 대 딱 몰고 뒤에 경호원 붙여서 좌아악~ 가는 겁니다. 그러면 그 모습만 봐도 와, 이 인간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 지 알게 되는 거죠. 제가 직장생활을 간단히 한 적이 있는데 차가 아주 후진 차였어요. 그랬더니 직장선배가 너 그런 차 몰고 다니면 안 된다, 돈 못 번다, 그러는 거예요. 왜 그래요? 그랬더니, 차는 기본적으로 세단을 몰아야지 어디를 통과하든지 인사를 받는 거야. 실제로 그랬어요. 제가 옛날 차 몰고 다녔더니 가는 곳마다 걸리더라고. 그래서 최고로 괜찮은 차, 지금은 똥차지만 뉴EF 소나타를 뽑아 딱 몰고 갔더니 경례를 딱 하는 거야. 아, 이거로구나. 그런데 맹자는 그런 차가 열 대 이상. (웃음) 그래서 맹자는 자기 돈으로 돌아다닌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초대한 나라에서 떠날 때도 전별금이라고 해가지고 돈 받고 떠났어요. 대단한 인간인 거죠. 공자하고는 돌아다니는 급이 달랐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맹자의 전성기 : 양나라와 제나라

맹자의 전성기 때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 양(梁)나라 혜왕(惠王)입니다. 양 혜왕은 원래 위(魏)나라의 혜왕이예요. 위나라는 전국시대 가장 강력한 나라들 중 하나였거든요. 그런데 전쟁에서 많은 국토를 빼앗기고는 양(梁)이라는 곳으로 도망을 쳐요. 위나라의 국토가 엄청 줄어든 거죠. 그 후로 위 혜왕이 아니라 양 혜왕이라고 부르게 되지요. 맨 처음엔 굉장히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전국시대를 제패했던 패군중의 하나였지만, 이제는 기운이 떨어져버린 사람이 바로 양 혜왕입니다. 거의 죽을 때가 다 된 것이지요. 그렇지만 양 혜왕은 맹자라면 국운을 되살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맹자를 초청합니다. 초빙하면서 물었던 질문이 굉장히 멋있는 질문이에요. 양 혜왕은 당연히 자기네 나라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 맹자가 오면 자기네 나라를 다시 중흥을 시킬 비책을 가지고 올 거라고 생각했겠지요. 초청하면서 그냥 놀러오세요 하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맨 먼저 한 질문이 뭔가 하면, “그대는 먼 곳에서 오셨는데 나에게 무슨 이익을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까?”하고 물어요. 그러면 맹자는 엄청난 돈을 받고 초청 받아 왔으니까 무슨 이익을 줄거라고 이야기를 해야지요. 그런데 맹자는 안 해요. 쌀쌀맞게 굴어요. “저를 여기까지 불러놓고서 이익을 말씀하십니까?”라고 되물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나에게는 인(仁)과 의(義)밖에 없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왕에게 알려드릴 것은 인과 의밖에 없습니다. 인과 의는 요즘 말로 하면 사랑과 정의죠. 사랑과 정의 외에 임금에게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양 혜왕이 굉장히 당황스럽지 않겠어요? 저 자식이 왜 그러나? 싶기도 하겠죠. 함부로 할 수는 없지만. 그랬더니 맹자가 뭐라고 하는가 하면, 임금님께서 이익을 추구하시면 신하들도 이익을 추구할 것이고, 신하가 이익을 추구하면 신하의 부하들도 이익을 추구하고, 그 밑에 사람들도 이익을 추구하고……. 그렇게 모든 백성이 이익을 추구한다면,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은 아무도 안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임금님께서 사랑과 정의를 추구하신다면 그 신하도, 그 신하의 부하도, 쭉 내려가다 보면 모든 백성이 사랑과 정의를 기준으로 해서 삶을 살아갈 것 아니겠습니까? 이익은 단기간에 득이 되지만, 사랑과 정의는 인간의 베이스,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과 정의를 바탕으로 해야지만 나라가 크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정의가 확립된 나라라면 다른 나라에서 아니 올 수 없습니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나라는 곧 망하겠지만,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는 나라는 흥할 것입니다, 라고 자기의 정치철학을 쫙 펼쳐요.

이 말을 끝까지 들었던 사람이 양 혜왕이에요. 하지만 양 혜왕은 이미 너무 늙었어요. 맹자의 말은 좋은데 그것을을 실현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 법은 만들어서 곧장 실현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사랑과 정의는 인간의 인성의 문제잖아요.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죠. 말은 좋은데 실현하기가 힘들어요. 그렇지만 영 혜왕은 맹자가 뛰어난 사람이란 걸 알았기에 붙잡고 늘어집니다. 그러다가 양 혜왕은 죽고 맙니다. 양 혜왕이 죽자 아들이 왕위를 계승합니다. 양왕(襄王)이지요. 맹자가 아들을 싹 봤더니 이 자식이 약간 상태가 안 좋아. 혜왕은 그래도 잘 대접하는 왕이었는데 얘는 대접도 안 해. 그리고 싹수가 노래. 아, 여기 있으면 안 되겠구나, 딱 일어서요. 맹자는 돈을 보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자기의 사상을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나라가 건설되기를 바랐던 사람이지요. 그런데 보니까 싹수가 노란데 거기 있을 일이 없는 거죠. 월급을 천만 원 아니라 일억을 준다고 해도 안 있어요. 그래서 간 나라가 제나라입니다.


전국시대 가장 큰 나라가 세 군데 있어요. 동쪽으로 제(齊)나라, 남쪽으로 초(楚)나라, 서쪽으로 진(秦)나라. 그런데 제나라로 가요. 맹자의 전성기 때 가장 오랜 기간 있었던 나라가 바로 제나라입니다. 그때 맹자가 만났던 왕이 바로 제나라 선왕이에요. 제선왕은 맹자를 아주 잘 대접합니다. 참 재미난 게 맹자는 제선왕의 신하가 된 적이 없어요. 신하가 되면 왕 밑으로 들어가야 되잖아요. 신하가 되면 왕의 말을 들으며 자기 직분을 해야 돼요. 그런데 지금 맹자는 제나라 왕의 신하가 되기 위해서 간 게 아니에요. 뭘로 간 것이냐, 왕의 자문 위원, 왕의 스승이 되기 위해 간 거예요. 그러니까 급이 신하 급이 아닌 거지요. 그래서 맹자는 제나라에 가서 경(卿)의 대접을 받아요. 최고자문위원쯤 되는 거지요. 맹자는 대접을 받은 만큼 전심전력을 다 해서 자신의 인(仁)의 정치를 주창하고 이를 실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요.


그런데 맹자가 만난 제 선왕(宣王)은 아주 독특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여자 좋아하고, 여자와 놀이를 좋아해요. 여자와 놀이를 좋아하는 왕이 좋은 왕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왕인 것 같아요? 솔직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좋은 왕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요. 나 여자 좋아한다. 그런데 이 솔직함을 맹자에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면 맹자를 아주 신뢰했다는 거죠. 내가 여자 좋아하는데 되겠느냐? 그랬더니 맹자도 이제는 오래 살면서 노하우가 생겼는지, 노회한 대화술을 펼칩니다. 이런 방식입니다. 여자 좋아하십니까? 잘 된 일입니다. 잘 되었다는 거야. 왜 그러냐? 임금님이 여자를 좋아하시면 임금님이 다스리는 제나라도 여자 좋아하는 남자들이 많아질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보아하니 제나라는 장가 못 간 놈이 되게 많더라고. 그럼 걔들을 장가 먼저 보낸 다음에 임금님께서 여자 좋아하시면 제나라 총각들이 우리 임금님께서 여자 좋아해 가지고 내가 드디어 장가를 가는구나, 우리 임금이시여 여자를 영원히 좋아하소서, 만세! 이럴 거 아닙니까? 오, 그래? 그럼 원 모어. 한 가지 더. 내가 노는 것을 진짜 좋아해. 괜찮다구요, 예를 들면 호수공원을 만들어. 호수 공원을 만들면 여러 사람의 힘이 동원되어서 만든 것이잖아요. 호수 공원을 만들어서 임금님 혼자 놀지 말고 호수 공원을 개방하는 거야. 그러면 모든 백성이 놀게 만드는 거야. 며칠 안 가서 사람들이 거기 와서 막 놀게 하니까 우리 임금님이 노는 걸 좋아하셔서 우리가 이렇게 좋은 놀이터를 갖게 되었구나하며 좋아하지 않겠어요?


재미삼아 살짝 풀어서 설명했지만 핵심은 분명합니다. 혼자 좋아하는 여자, 혼자 즐기는 음악, 혼자 즐기는 놀이보다 백성들과 같이 좋아하고 즐기면 된다는 거지요. 이게 맹자의 굉장히 중요한 사상 중 하나입니다. 여민동락(與民同樂)! 혼자 좋아하지 말고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나누어라. 이거 말고도 온갖 에피소드가 있습니다만, 다 소개 하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니까,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맹자가 왕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함께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그게 정치다. 백성과 더불어 하는 정치를 하느냐, 백성을 그저 부리기만 하고 억압하는 정치를 할 것이냐, 이게 맹자의 정치철학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맹자의 사상을 바로 민본(民本)사상이라고 하는데요, 성공을 했겠습니까, 안 했겠습니까? 제선왕은 맹자의 사상을 실현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나 욕심은 그걸 능가한 거죠. 게다가 맹자가 이렇게 제 선왕하고 친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맹자를 질투하겠죠? 제선왕은 지금 맹자의 생각대로라면 인과 의의 정치를 해야 되잖아요?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는 게 가하겠습니까, 불가하겠습니까? 불가하겠죠? 그런데 연 나라에서 난리가 난 거야. 지들끼리 막 싸우기 시작해. 지금 빨대만 꽂으면 연나라는 내 것이 될 것 같아. 그래서 맹자에게 물어보죠. 연나라를 쳐야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연나라가 어려우니까 연나라를 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해요. 그걸 쳐도 된다고 듣고 연나라를 쳐요. 연나라가 혼란 상황에 빠져 있으니까, 그러면 혼란 상황이 해결되면 나머지는 연나라에게 맡기고 철군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제 선왕은 철군하지 않아요. 밍기적밍기적 대지요. 그러자 연나라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에서도 제 선왕에 대해서 수군대기 시작해요.

마치 이런 거야. 미국이 이라크가 독재에 빠져 있으니까 이라크를 구원하겠다고 하면서 미국이 들어가잖아요. 그러면 이라크에 민주 정부가 서면 미국이 나와야 되잖아요? 그런데 계속 주둔하잖아요. 그러면 이라크 사람들이 쟤들은 우리 민주화를 위해서 싸워 준 게 아니라 쟤들은 뭔가 다른 뭔가를 꿈꾸고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미국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요. 그와 똑같이 몇 나라를 어지럽게 된 상황에서 질서를 잡아주었으면 나와 줬어야 해요. 안 나와주고 밍기적거렸던 거야.


이 사건은 맹자와 제선왕의 관계가 틀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요. 맹자는 나와야 된다고 말해요. 당신이 거기에서 있으면 안 된다, 당신이 거기 있으면 폭군이 되는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나 워낙 이 땅이 큰 덩어리거든요. 재선왕은 물러서지 않아요. 그때부터 맹자는 제나라로부터 돈을 받지 않아요. 그리고는 떠나야할 때가 다 되었나보다 생각하고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요. 추나라로.


그 이후로 맹자는 큰 나라에 가지를 못합니다. 추나라 주변에 있는 조그만 나라들을 돌아다니지요. 예를 들면 등(滕)나라 같은 경우에는 작은 나라예요. 전국시대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지요, 아주 작은 나라. 국가에 운명이 오늘 내일 하는 나라입니다. 등나라는 문공(文公)이라는 젊은 왕이 다스리고 있었지요. 등문공은 왕자시절부터 맹자를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왕위에 오르자 맹자를 초청해요. 내가 왕자 때부터 맹자님을 흠모했는데, 우리나라에 와서 정치적 자문을 좀 해 주십사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맹자가 보니까 나라의 사이즈가 자신의 포부를 펼치기에는 작은 거지요. 오히려 국운이 풍전등화인거야. 그럴 때 맹자는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하면 그래도 임금님께서는 선정을 베푸십시오. 인과 의의 정치를 베푸십시오. 그리고 성곽 주위로 해자를 깊게 파고 성을 단단하게 세우십시오.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그렇게 단단하게 하시고 성 안의 백성을 사랑으로 보살펴 주십시오. 그러면 강대국이 쳐들어온다 할지라도 임금님의 사랑을 받은 백성들은 결코 그 성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적이 엄청난 칼과 갑옷을 입고 덤빈다 할지라도 백성들이 몽둥이 하나를 들고서라도 그 갑옷 입은 병사들과 맞서 싸울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이 나라가 살 길입니다. 약소국이기에 감당해야할 굉장히 슬픈 이야기지요.


물론 맹자 사후에 등나라는 사라집니다. 어쨌든 큰 나라를 초청 받아 돌아다니면서 인정을 베풀려고 계속 이야기를 했으나 이것을 실행할 나라는 없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리고 맹자 말년에 더 이상 돌아다녀봐야 정치적 효과가 없겠구나 판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자기 고향에서 자기의 책을 쓴 것이지요. <맹자>는 맹자가 정리한 책인 동시에 맹자 문하의 많은 제자들이 맹자와 함께 토론을 하면서 맹자의 책을 정리한 것이고, 그게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맹자의 삶을 보면 맹자가 얼마나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과 싸웠는지 알 수 있어요. 파이터 중에서도 그런 파이터가 없어요.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파이터입니다. 공자님은 파이터가 아니에요. 공자님은 관조하시는 분이세요. 싸움을 하면 어, 이게 아닌데... 저건 좀 위험한데 하는 게 공자님 스타일이라면 맹자님은 일루와 시키야, 일루와~! 아주 초전 박살. 맹자가 휘두르는 혀를 당할 사람이 없어요. 읽다 보면 너무 심하게 맹자 중심으로 쓰여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맹자는 그렇게 인과 의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온 몸을 불살랐던 초특급 재야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굉장히 거대하고 굉장히 화려했지요.


루소의 생애, 광기와 방랑

이번에는 서양으로 넘어갑니다. 루소.

루소 생애의 특징을 저는 ‘광기와 방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소의 광기와 방랑은 어렸을 때부터 이미 운명지워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루소가 태어나면서 어머니는 돌아가십니다. 루소를 낳고 죽은 거죠. 아버지가 키워야 하는데 키울 맘이 없습니다. 자기가 아는 목사에게 루소를 맡기고 제 갈 길을 갑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조실부모(早失父母)하는 느낌 있잖아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 도망가고, 자기는 완전히 천덕꾸러기로 자라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못하는 루소가 올바로 자랐겠습니까? 천덕꾸러기니까 주변에서는 뭔가 문제가 생기면 루소부터 쳐다보겠지요? 사과가 하나 없어져도 저 자식은 엄마 아빠가 없잖아? 뭔가 걸릴 것 같으면 루소야. 항상 의심해요. 그래서 루소는 어렸을 때부터 학대랄 것까지는 없지만 굉장히 불우하게 살았어요. 이러한 불우한 삶은 루소의 청년기에도 영향을 미쳐요. 루소는 직업을 구하지만 오랫동안 일할 직업을 못 구해요. 사회에서 고아를 어떻게 취급하는 지 아시잖아요? 부모님이 있으면 그래도 빽이 있으니까, 부모님이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함부로 못 대하지만 고아라면 막 함부로 대하지요. 때리기도 하고, 굶기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성장하며 온갖 잡일을 하면서 두들겨 맞고 쫓겨나고, 또 다른 곳에 가서 두들겨 맞고 쫓겨나고. 루소가 그나마 오랫동안 한 일이 있다면 악보는 베끼는 일이었어요. 루소는 악보를 기가 막히게 베꼈지요. 악보 필경사. 당시엔 인쇄술이 발달 안 되었으니까 괴발개발 쓰면 깨끗하게 베끼고. 그게 루소가 가졌던 유일한 전문직종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러면서 돌아다니는 거죠. 심지어는 나중에 주인이 얼마나 학대를 했는지 주인이 때릴까봐 못 들어갔다가 문이 닫히니까 잘됐다 하고 튀어버려요.

루소는 한편으로 얼굴이 잘 생겼어요. 이게 무기야. 눈이 호소력이 있어. 똘망똘망하고 우수에 차 있는, 있잖아요, 불행한 데 눈이 촉촉하고 우수에 차 있는 꽃미남이야. 그래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귀부인들이 루소를 좋아해요. 나중에 성장하고 나서 루소에게 방을 빌려주는 사람은 다 귀부인이야. 빌려줄 때는 다 착한 마음으로만 빌려줬겠어요? 아니죠? 이쁘고 잘 생긴 사람 자기 손아귀에서 이렇게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루소는 돈이 워낙 없으니까 그런 귀부인 밑에 들어가서 좀 있다가 귀부인이 본색을 드러내면 또 나오기도 하고. 이러는 거예요. 정말 비참하죠.


루소에게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귀부인이 아니라 독서였어요. 루소는 자기의 불우한 나날을 독서를 통해서 버텨냅니다. 그러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옛날에는 논문 같은 거 공모해서 일등하면 상 주고 하는 게 있었어요. 길거리에서 논문 공모한다는 전단을 딱 보고서 어라? 저거 해 볼만 한데? 하고 논문을 순식간에 딱 써서 냈어요. 어떻게 됐게요? 일등으로 뽑힙니다. 일등으로 뽑힌 논문이 바로 <학문 및 예술에 관한 논고>(1750)이지요. 루소가 살았던 시대의 지배적 사조가 계몽주의라고 말했지요. 그러면 일등으로 뽑힌 루소의 논문이 계몽주의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루소는 정반대의 논조로 썼어요. 학문과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자가 자기의 간악한 지배를 미화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모든 학문은 가짜다, 모든 예술은 가짜다! 이렇게요. 정말 도발적이죠? 모든 사람이 계몽의 가치에 찬성을 하는 시기에, 계몽의 가치에 반기를 드는 논문을 쓴 거예요. 이 논문 하나로 루소는 일약 스타가 되지요.


그 다음에 응모한 작품이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에요. 자기가 학문과 예술에 관한 논고를 쓰고 나서 그 논지가 좀 아쉬웠는지, 그 논지를 강화하면서 보다 근본적으로 근대사회를 분석하려고 했던 논문이 바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지요. 그렇다고 하는 것은 지금 루소가 살고 있는 시대가 불평등한 시대라는 거예요. 사실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당시 시대는 중세보다 훨씬 평등하다고 믿었어요. 인간은 자유, 평등, 박애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죠. 그런데 거기에 뜬금없이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빡~! 이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루소 사상의 정수예요. 왜 인간은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가를 논증한 아주 기가 막힌 책입니다. 분량도 적은 책이에요. 우리나라에 번역도 잘 되어 있어요. 이 논문으로 몇 등을 했을까요? 이번에는 당선되지도 않지요. 하지만 루소는 그것을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어요. 루소 자신도 당선을 목표로 쓴 글이 아니니까요. 루소는 담담히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시 정서를 해서 출간을 합니다.


그 이후에 루소는 교육소설 <에밀>이라는 책을 쓰고 <사회 계약론>을 씁니다. <에밀>과 <사회계약론>은 이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사상에 근간을 두고 쓴 거예요. 루소는 계몽주의 사상을 비판하는 아주 위험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루소의 책은 금서로 낙인찍힙니다. 동시에 루소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집니다. 그 때부터 루소는 도망다니기 시작합니다. 도망 중에 도발적인 반항아 루소를 호의로 받아준 사람이 많아요. 대표적으로 영국에서는 경험주의 철학의 대가 흄이 루소를 기꺼이 도와줍니다. 그런데 이 때 이미 루소는 약간 광기에 사로잡힙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미워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를 감시하고, 자기한테 호의를 베푸는 것조차도 혹시 나를 감시하기 위한 하나의 함정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항상 의심하고 항상 성마르게 화내고, 그리고 또 천재성을 발휘하다가도 갑자기 휙 토라지고.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 이후에 다양한 저술을 쓰고, 말년에 가서는 자기의 삶을 성찰하는 글인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같은 책도 씁니다. 그러나 그러한 글조차도 그의 광기를 잠재울 수는 없었었나 봅니다. 1778년 결국 로수는 뇌일혈로 아주 불행하게,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 상태에서 죽고 맙니다.

루소가 결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시중들던 하녀하고 결혼을 했는데요, 그 둘 사이에서 자식을 다섯 명이나 생겼습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다섯 명을 키우지 않고 모두 고아원으로 보내버립니다. 루소가 쓴 교육 소설 중 <에밀>이라는 소설이 있어요. 이 소설은 어찌 보면 고아원에 보내버린 자기 자식을 생각하며 쓴 건지도 모르지만, <에밀>이라는 교육 소설을 쓴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되는 자기 자식을 전부 고아원에 보냈다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 숨가쁘게 왔네요. 찬란한 삶을 살았으나 자기 꿈을 실현하지 못했던 맹자, 찬란한 작품을 썼으나 끝내는 광기에 사로잡혀 죽고 말았던 루소, 이 두 사람이 펼치는 사상의 대향연은 다음시간에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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