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에서 들뢰즈로

황산 지음 <글쓰기의 모험> (북바이북, 2020)

by 김경윤

1.

사르트르는 작가는 '드러냄'을 통하여 참여한다고 말한다. 이때 작가가 드러내는 것은 인간 실존의 조건, 세계가 지니는 모순된 상황, 비극적인 참상이다. 이는 작품 속 화자들의 스토리와 대화를 통해 인간의 삶의 있는 그래로의 모습과 사람들이 겪는 감정의 파토스, 즉 그 사랑, 증오, 분노, 노여움, 공포, 기쁨, 분개, 찬양, 희망, 슬픔, 절망 따위를 의도적으로 그리고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유토피아를 그리고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는 "세계의 실상을 드러내는 사람이고, 그 드러냄을 통하여 세계에 변화를 가져오도록"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다. (104~5쪽)


2.

들뢰즈는 글쓰기와 삶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글쓰기는 ‘삶 쓰기’이고, 삶은 ‘일종의 글쓰기’이다. 다시 말해 글쓰기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 글쓰기 자체가 삶인 글쓰기, 글쓰기를 통해 삶을 생성하고, 삶이라는 책을 열어가는 쓰기를 의미한다. “글쓰기는 삶의 사건을 생산하며 삶과 더불어 생성하거나 변화한다.” 여하한 자신의 신체가 던져진 삶의 정황 즉 작가의 삶의 콘텍스트가 글쓰기의 근원적 토양이 된다. 따라서 글을 쓰는 이는 자신의 삶에 주목하여야 하고, 삶의 경험 속에서 글을 길어올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사건들 속에서 내던지기를 마다하지 않고 다양한 현장에서 사람듫과 사물들을 체험하기를 시도해야 한다. 그런 흐름 속에서 그 기운을 자신의 '몸'으로 담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던져 온몸으로 글을 써본 사람은 안다. 자신의 삶이 글이 되고, 글을 쓴다는 것이 자신이 전 존재가 동원되는 작업임을. (151쪽)




1.

시절인연이라는 게 있다. 황산 선생과 내가 그런 경우다. 서로 연령대도 비슷하고, 살아온 경력도 비슷한데, 한 번도 겹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여름 작가 김쾌대의 초청으로 <종로인문학당>의 창립식에 참가하게 되었다. 거기서 황산 선생을 만났다. 김쾌대는 양지에서 일하는 대표였고, 황산은 음지에서 연구하는 대표였다. 그렇게 둘이 작당하여 만든 것이 <종로인문학당>이다. 그날 나는 거기에서 <가파도에서 읽은 노자>라는 제목으로 초청강연을 진행했다.


2.

황산 선생과 나는 그 자리에서 눈인사와 악수, 그저 몇 마디 나눈 것뿐이었으나, 어쩐지 시간이 흐를수록 인연이 깊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저술을 알라딘에서 검색하여 기억한 후, 제주도로 내려와 동네서점에 주문하여 책을 받았다. <철학자들과 함께 떠나는 글쓰기의 모험>이라는 제목의 책은 파스칼, 니체, 블랑쇼, 바르트, 사르트르, 벤야민, 들뢰즈, 데리다의 글쓰기를 소개한다.

파스칼을 읽을 때는 교과서를 읽는 기분이었고, 니체를 읽을 때는 통쾌했고, 블랑쇼를 읽을 때는 아득해졌고, 바르트를 읽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억났다. 사르트르를 읽을 때는 나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고, 벤야민을 읽을 때는 연암 박지원이 떠올랐다. 들뢰즈를 읽을 때는 지금의 모습이 겹쳐졌다. 데리다는? 나에게서 더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3.

그러니까 이 책은 근대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8명의 철학자들의 글쓰기를 간략하고 압축적이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그 어렵다는 철학자들의 글들을 낚아챌 수 있는 낚싯바늘 하나를 얻은 기분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마도 젊은 시절 사르트르의 글쓰기에 매료되었다가, 나이가 들어 들뢰즈식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상상해 본다. 사랑에 대해 쓰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철학책을 많이 썼지만, 어려운 철학적 개념으로 세상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창조하는 것은 머나먼 길이다. 그저 지식중개인으로 쉽고 재미나게 철학을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4.

정리하자. 황산을 만났다. 황산의 책을 읽었다. 황산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다음번 만날 예비작업은 한 셈이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황산 선생이 계획하는 일이 잘 되어, 글쓰기로 세상을 읽고, 자신이 치유되고, 삶이 변화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종로인문학당>의 건강과 번창을 기원한다.


여기 있는 사진들은 같은 행사에 참여했던 정미경 작가의 사진을 옮겨놓은 것이다. 정미경 작가도 오랜만에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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