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순,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행성B, 2025)
말과 글의 언어만이 아니라 몸의 언어를 통해서도, 우리는 지지와 인정을 나눌 수 있다. 포옹이라는 ‘순간의 경험’일지라도 그 순간의 경험을 부여잡고 척박한 일상에서 한 걸음씩 내딛는 힘과 삶의 에너지를 끄집어내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포옹’이 필요한 존재다. 또한 누군가를 ‘포옹’하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포옹이 상징하는 것은 그 존재를 통째로 받아들이는 ‘인정’, 그리고 당신의 아픔에 함께하고 무엇을 하든 응원하겠다는 ‘지지의 몸짓’이다. 인간만이 자신의 의지를 작동시켜서 다른 존재를 ‘포옹’한다. 이 사실은 포옹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살아감이란 결국 ‘함께 살아감’이다. 포옹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인정하고, 지지하는 함께 살아감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몸짓인지 모른다. (170쪽)
1.
글이 좋아 읽는 작가가 있고, 삶이 좋아 응원하는 작가가 있다. 강남순 교수는 둘 다에 해당한다. 그래도 한쪽으로 몰아보자면 후자에 속하는 경우다. 페미니즘에 대해 강남순의 책을 읽으며 배웠고, 종교에 대해 강남순의 책을 읽으며 통쾌해했다. 그 어렵다던 데리다를 쉽게(?) 배운 것도 강남순을 통해서다. 나 홀로 걸었다면 어려웠을 길을 강남순이 먼저 닦아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미소의 편지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가 나왔다. 갑자기 행복전도사가 된 것일까? 설마? 강남순은 값싼 미소로 행복을 파는 그런 장사꾼이 아니다. 그는 행복에 대하여 하나하나 따져가며 행복 만들기를 제안한다. 그는 췌장암 투병을 하던 자크 데리다의 조사에 나오는 '미소'의 의미를 톺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존재가 '나'를 향해 그리고 유일무이한 개별적 존재인 '너'를 행해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삶의 구성요소를 가꿔야 한다. 관계의 정원을 일구는 용기가 발휘된 행복, 그러한 행복을 나는 인용부호 속에 넣은 "행복"이라 부른다. 물론 이 모든 범주화는 잠정적인 것이다. 자크 데리다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개념, 즉 인용부호가 없는 개념과 인용부호 속의 개념이 있다고 한다. 인용부호가 없는 개념은 매우 '자연적인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투적인 이해다. 반면, 인용부호 속 개념은 그 개념의 의미를 확장하고 심오하게 만들면서 상투적 이해가 지닌 한계를 넘어 재개념화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개념이다.
행복과 "행복", 이 두 축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나만의 고유한 "행복"을 가꾸고 만들어 가야 하는가. 행복을 일굴 의지와 용기를 어떻게 매일 품고 살아갈 수 있는가. 이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7~8쪽)
서문에 실려있는 행복에 대한 이 인용구의 톤 앤 매너만 보다도 앞으로 전개될 철학에세이가 당의정이 섞인 달달한 맛의 행복론은 아닐 것이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2.
이 책은 잘 씹어서 떠먹여 주는 글들이 아니라, 천천히 읽으며 잘 씹으며 음미해야 할 글들이 그득하다. 그리고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마음이 건강해지고 시선이 또렷해짐을 느낄 수 있다. 도처에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을 만나게 되고, 암기하고 싶은 명구들이 넘쳐난다. 이런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기보다는 직접 구매하여 곁에 두고 두고두고 읽을 일이다. 그래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암기하고 픈 몇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쓰기를 끝내자.
"책을 쓴다는 것은 자살을 연기하는 것이다." - 에밀 시오랑
"나는 나에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내가 되고 싶은 존재가 되기 위하여 내가 하는 선택이 바로 나를 규정하는 것이다." - 칼 융
"철학은 고향에 대한 갈망이 주는 아픔, 모든 곳에서 고향을 느끼고자 하는 간절함이다." - 노발리스
"오 나의 친구들이여, 친구란 없다." - 자크 데리다
"내가 나일 때, 나는 너다." - 파울 첼란
"나는 나의 글에서 고향을 발견한다." - 에드워드 사이드
"행복과 부조리한 것은 지구의 두 후손이다. 그 둘은 분리 불가하다." - 카뮈
"장미는 '왜'가 없다; / 장미는 그저 피어야 하기 때문에 피는 것이다." - 안젤루스 질레지우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타자를 사랑할 수 없다." - 한나 아렌트
"종교란 책임성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 자크 데리다
"만약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것은 나의 혁명이 아니다." - 엠마 골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