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마르틴 부버, <나와 너>

by 김경윤

1. ‘스펙’이 아닌 ‘존재’를 만난다는 것

지난 시간, 우리는 플라톤과 함께 내 심장을 뛰게 만든 저 강렬한 ‘끌림’의 정체가 무엇인지 탐색했습니다. 그 끌림은 우리를 마침내 한 사람 앞에 데려다 놓습니다. 소개팅 앱의 프로필을 수없이 넘기고, 어색한 첫 메시지를 주고받고, 고심 끝에 고른 옷을 입고 약속 장소로 나가는 그 모든 설렘의 과정 끝에, 우리는 드디어 한 사람과 마주 앉게 되죠.

자, 바로 그 순간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요? 상대방의 얼굴과 옷차림, 말투를 스캔하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지는 않나요? ‘직업: 안정적인가?’, ‘학벌: 나쁘지 않군’, ‘유머감각: 합격’, ‘외모: 사진보다 괜찮네.’ 우리는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상대방에 대한 1차 평가를 내리고, 이 만남을 계속 이어갈지 말지를 결정하려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낯선 사람을 파악하기 위한 당연하고도 효율적인 과정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그렇게 모든 조건을 확인하고 난 뒤에, 당신의 마음속에 남는 것은 과연 누구입니까? ‘대기업에 다니는 키 큰 남자’ 혹은 ‘상냥한 말투를 쓰는 교사’라는 ‘조건들의 묶음’입니까, 아니면 그 모든 조건을 걷어내고 난 뒤에도 여전히 그곳에 있는, 말로는 명확히 설명하기 힘든 한 사람의 고유한 ‘존재’ 그 자체입니까?

첫 만남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친구에게 상대방에 대해 설명하는 내 모습을 떠올려봅시다. "키는 180이고, 대기업 다닌대. 말도 잘하고 옷도 잘 입더라. 괜찮은 것 같아." 이 문장들 속에 과연 '그 사람'의 영혼은 존재할까요? 아니면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항목들의 집합체'만 남아있을까요?

20세기 독일의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그의 대표작 『나와 너(Ich und Du)』에서, 우리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태도가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 두 가지 태도는 연애의 시작뿐만 아니라, 관계 전체의 질을 결정하고 우리 삶의 의미를 바꾸는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부버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가 타인을 만나는 두 가지 길을 따라가 봅시다.


2. 경험의 세계 ‘나-그것’ vs 관계의 세계 ‘나-너’

부버에 따르면, 인간이 세상과 관계 맺는 근원적인 말(Grundwort)은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나-그것(Ich-Es)’이고, 다른 하나는 ‘나-너(Ich-Du)’입니다.

첫 번째, ‘나-그것’의 세계는 경험하고 이용하는 세계입니다. 이 관계에서 ‘나’는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Subject)이고, 나무, 컴퓨터, 동물, 그리고 심지어 다른 사람까지도 나의 경험과 분석, 사용을 위한 대상(Object), 즉 ‘그것’이 됩니다.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방식입니다. 우리는 나무의 재질을 분석해 책상을 만들고, 상대방의 MBTI를 파악해 그의 행동을 예측하려 합니다.

연애 관계에서 ‘나-그것’의 태도는 아주 흔하게 나타납니다.

상대방을 ‘스펙’의 총합으로 평가하는 것. (직업은? 집안은? 외모는?)

이 사람을 만나면 내게 어떤 이득이 있을지 계산하는 것. (외로움을 해결해 주겠지,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겠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분석하고 다음 수를 계산하는 ‘밀당’과 같은 전략적인 태도.


“나-그것이라는 근원어는 결코 온 존재를 다하여 말해질 수 없다. (…) ‘나-그것’의 ‘나’는 그것을 경험하고 이용하는 개체이다. 그것은 다른 개체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기를 의식할 뿐이다.”

- 마르틴 부버, 『나와 너』 중에서


부버의 말처럼, ‘나-그것’의 관계는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고립되어 있습니다. 상대는 나의 경험을 위한 재료일 뿐, 우리는 결코 만나지 못합니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경험일 뿐, 진정한 ‘관계’는 일어나지 않는 텅 빈 세계입니다.

두 번째, ‘나-너’의 세계는 마주 보고 만나는 관계의 세계입니다. 이 관계에서 상대방은 내가 분석하고 이용할 대상이 아니라, 나와 동등하게 마주 서서 말을 건네고 응답하는 인격체, ‘너’가 됩니다. ‘나-너’의 만남이 일어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상대를 평가하거나 계산하지 않습니다. 나는 온 존재를 다해 지금 내 앞에 있는 ‘너’에게 집중하고, ‘너’ 역시 온 존재로 나에게 응답합니다.


“나-너라는 근원어는 온 존재를 다하여 말해질 수 있다. (…) ‘나-너’의 ‘나’는 관계 속에 있는 인격이다. (…) ‘너’와의 관계는 직접적이다. ‘너’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개념의 중재도, 아무런 사전 지식도, 아무런 환상도 끼어들지 않는다.”

- 마르틴 부버, 『나와 너』 중에서


이 만남은 의도하거나 계획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부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은총처럼’ 찾아오는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조건이나 배경을 떠나,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의 고유한 존재에 온전히 집중하는 순간. 계산 없이,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끼는 순간. 꾸며내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상대방의 약점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깊은 대화의 순간. 바로 이 순간에 비로소 진정한 관계가 시작되고, 세상은 의미로 가득 차게 됩니다.


3. “너를 통해 나는 ‘나’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나-그것’의 편리함을 넘어, 이토록 어렵고 예측 불가능한 ‘나-너’의 만남을 추구해야 할까요? 부버 철학의 가장 아름다운 통찰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속에 있습니다.


“인간은 ‘너’를 통해 ‘나’가 된다.”

- 마르틴 부버, 『나와 너』 중에서


‘나-그것’의 세계 속에서 ‘나’는 고립된 개체일 뿐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분석하고 정의 내립니다(“나는 내향적인 사람이야”,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 하지만 이것은 고정된 ‘자아상’일 뿐, 살아있는 온전한 ‘나’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너’를 만났을 때, 나는 비로소 온전한 ‘나’가 됩니다. ‘너’라는 거울에 비친 나를 통해, 나 혼자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너’의 웃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능력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의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너’ 앞에서, 나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너’와 함께 꿈을 이야기하며, 나 혼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미래를 그리게 됩니다.

이처럼 진정한 관계는 단순히 두 사람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를 통해 각자의 고유한 ‘나’를 발견하고 완성해가는 창조적인 과정입니다. 나를 바꾸려는 의도 없이, 그저 온전히 나를 ‘너’로 만나주는 한 사람을 통해, 나는 나도 몰랐던 가장 나다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부버는 이 신비로운 관계가 일어나는 장소를 ‘사이(das Zwischen, in-between)’라고 불렀습니다. 진정한 관계는 ‘나’의 내면에도, ‘너’의 내면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독립적인 실체라는 것입니다. 두 개의 기둥이 각자의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을 때, 그 ‘사이’의 공간에서 비로소 바람이 통하고 햇살이 드는 것과 같습니다.


4. 당신의 만남은 ‘사건’입니까, ‘거래’입니까?

부버의 철학은 연애의 시작점에 선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이 만남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이용)’ 하는가, 아니면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가?"

"나는 상대방을 나의 세계를 채우는 ‘조각(그것)’으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 자체로 온전한 ‘세계(너)’로 마주하고 있는가?"

물론 우리의 모든 순간이 ‘나-너’의 관계로 채워질 수는 없습니다.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나-그것’의 태도를 취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부버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세상이 온통 ‘나-그것’의 관계로만 뒤덮일 때, 인간은 고립되고 황폐해지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이죠.

끌림이라는 마법 같은 순간을 지나 이제 막 한 사람 앞에 섰다면, 잠시 평가와 분석의 눈을 감아보십시오. 그리고 온 존재로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을, 그 사람의 세계를 온전히 느껴보십시오. 그 침묵과 마주 봄 속에서, 당신의 만남은 단순한 ‘거래’를 넘어 당신의 삶을 바꾸는 위대한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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