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부버, <나와 너>
질문 1: 저는 연애 초반에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평소의 제 모습과 다르게 행동할 때가 많아요. 상대방이 좋아하는 스타일에 맞추려고 하고, 싫어하는 행동은 억지로 참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금방 지치고, '이게 진짜 나일까?' 하는 회의감이 들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정말 많은 분들이 공감할 만한 고민입니다. 관계 초반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그것'으로 대하기 쉽습니다. 마르틴 부버의 개념을 빌리자면, 상대방은 내가 '획득해야 할 대상'이 되고, 나는 그 대상에게 어필하기 위한 '전략'을 짜게 되는 것이죠.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좋아하겠지?"라고 계산하는 순간, 당신은 온전한 '나'로서 상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페르소나(가면)'를 통해 상대를 대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진짜 나'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수준이 되면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당신의 가면을 사랑하게 된 것이지, 당신이라는 고유한 존재, '너'를 만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당신 자신도 지치고 공허해질 수밖에 없죠.
상담 Tip: 다음 만남에서는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하기보다,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에 집중해보세요. 그리고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지만 정중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예를 들어, 상대가 좋아하지만 나는 별로인 영화를 억지로 보는 대신, "저는 그 영화도 좋지만, 혹시 이런 스타일의 영화는 어떠세요?"라고 제안해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나-너'의 만남은 완벽한 모습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서로를 마주하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질문 2: 요즘 데이팅 앱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는데, 너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 같아요. 프로필의 조건 몇 개만 보고 판단하고, 조금만 안 맞으면 바로 연락을 끊어버리죠. 이런 만남에 지쳤는데, 이게 요즘 시대의 방식인 것 같기도 해서 혼란스러워요.
답변: 현대 사회의 만남 방식이 주는 피로감과 깊은 관계에 대한 갈증이 느껴지는 질문이네요. 데이팅 앱의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마르틴 부버가 말한 '나-그것'의 관계를 조장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프로필 속에서 '나의 욕망을 채워줄 최적의 대상(그것)'을 고르려고 합니다. 상대방은 고유한 인격체 '너'가 아니라, 직업, 키, 학벌, MBTI 같은 '항목들의 집합체'로 환원되어 버리죠.
이런 '나-그것'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효율적이고 빠릅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진정한 만남이 주는 깊이와 울림이 없습니다. 사람을 '경험'하고 '소비'할 수는 있지만, 온 존재로 관계 맺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지친 감정은, 이러한 비인격적인 만남 방식에 대한 당신 영혼의 자연스러운 거부 반응일 수 있습니다.
상담 Tip: 데이팅 앱 자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프로필의 '스펙'을 보기 전에, 그 사람의 표정이 담긴 사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이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가진 사람일까?"라고 상상해보세요. 메시지를 나눌 때도 단답형으로 효율성만 따지기보다, 조금은 느리고 서툴더라도 진심을 담은 질문을 던져보세요. 그리고 만남이 성사되면,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오직 눈앞의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나-너'의 순간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세요. 단 한 번의 만남이라도, 상대를 '너'로 대하려는 노력이 당신의 만남의 질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질문 3: 연인이 저에게 "너는 나를 통해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라는 말을 자주 해요. 처음엔 좋았는데, 들을수록 부담스럽고 마치 저를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는 것처럼 느껴져요. 부버가 말한 '너를 통해 내가 된다'는 것과 이건 다른 건가요?
답변: 매우 중요한 지점을 짚어주셨습니다. "너를 통해 나는 나'가 된다"는 부버의 말은 자칫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 말은 '너'가 나를 조종하거나 가르쳐서 내가 변화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바꾸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온전한 '나-너'의 만남 속에서 '나' 스스로가 이전에 몰랐던 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연인이 "나 때문에 네가 변했어"라고 말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려 한다면, 그것은 '나-너'의 관계가 아니라, 당신을 '자신의 작품(그것)'으로 만들려는 '나-그것'의 관계로 변질되고 있을 수 있다는 위험 신호입니다. 진정한 '나-너'의 관계에서 성장은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선물'과 같은 것입니다.
상담 Tip: 연인에게 당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덕분에 내가 성장하는 걸 느껴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가끔 '네가 나를 바꿨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너의 기대에 맞춰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껴. 나는 너와 함께하면서 스스로 좋은 방향을 찾아가고 싶어" 와 같이, 감사함과 동시에 당신의 불편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한 관계는 서로를 바꾸려고 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각자의 모습대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기다려주는 관계입니다.
질문 4: 저는 갈등이 생기는 게 두려워서 연인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 해요.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고 항상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그럴수록 제 속은 곪아가는 것 같아요. 이게 정말 사랑일까요?
답변: 갈등을 피하려는 마음,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마르틴 부버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진정한 '나-너'의 관계를 회피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 온전한 '나'로서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상대방과 마주 서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피하기 위해 '너'의 세계에 일방적으로 맞춰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에는 두 명의 동등한 주체인 '나'와 '너'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의 세계와 그 세계에 종속되려는 '나'만 존재할 뿐입니다. 부버는 진정한 관계는 '사이(in-between)'에서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나'와 '너'라는 두 개의 기둥이 각자의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을 때, 그 '사이'의 공간에서 비로소 참된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당신이 계속해서 당신의 자리를 비우고 상대에게로만 다가간다면,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은 사라지고 관계는 질식하게 될 겁니다.
상담 Tip: 작은 것부터 '아니오'라고 말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당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건강한 행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너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라"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물론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갈등을 통해 서로가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확인하고, 그 다름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관계를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진정한 '나-너'의 대화입니다.
질문 5: 저는 연인과 함께 있지 않을 때 너무 불안하고 외로워요. 그래서 계속 연락하고 확인하려고 하죠. 상대방은 가끔 숨 막힌다고 하는데, 저는 그 사람이 없으면 제가 불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답변: 그 불안감의 뿌리에는 '나'라는 존재가 '너'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부버가 말하는 '나-너'의 관계는 서로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융합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나'로서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나-그것'의 세계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고립되어 있고 불안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너'를 통해 이 고독에서 벗어나려 하고, '너'를 나의 일부로 만들어 안정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상대방을 질식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더욱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너'가 사라지면 '나'도 무너지는 위태로운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상담 Tip: 연인에게 집중했던 에너지를 잠시 '나' 자신에게로 돌려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연인과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 당신을 온전히 채울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세요.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만들거나, 당신의 성장을 위한 공부를 하거나,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나'라는 세계가 충만하고 단단해질 때, 비로소 당신은 '너'를 소유하려 하지 않고 온전한 존재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신은 깨닫게 될 겁니다. '나-너'의 만남은 나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충만한 두 세계가 만나 더 큰 우주를 만들어가는 기적과 같은 사건이라는 것을요.